추억 일기 : 延吉 故事 6

by 제이킴

전입 신고


내가 연길에 오는 날 전임자는 다른 지역으로 무심하게 떠났으니 내가 스스로 대리점 사장들에게 전화를 해서 신임 지점장의 전입 신고를 겸한 약속을 시작했다.

우선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대리점은 같은 건물 위층에 있어서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 인사를 하러 갔다. 중년의 여사장인데 고상한 말투로 여유가 있어 보인다.

전임자의 황망한 철수로 각개격파 같은 기분으로 돌아다니는데 도시 분위기가 내가 어릴 적 살았던 고향과 많이 흡사해서 오래전 한 번쯤 왔다 간 것 같은 기시감을 느꼈다. 도심 외곽을 가로지르는 하천도 비슷하고 도심의 크기와 분위기가 많이 비슷하다. 주요 도로의 배치나 건물들의 구성도 그렇게 봐서 그런지 더 비슷해 보인다. 여름에 도착했으니 낮에는 한국의 여름 날씨와 별 차이가 없지만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루에 2곳씩 방문 계획을 짰다. 오전에 한 곳, 오후에 한 곳.

1주일이면 주요 대리점 방문은 마무리가 될 것이고 2주일이면 공항의 주요 부서의 대표자들과 인사를 끝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근거리 대리점부터 원거리 대리점을 섞어서 대리점 방문을 하기 시작했는데 조선족 사장님들 중에는 여자 사장들이 많았고 한족 사장들 중에는 남자 사장들이 많았는데 중국동포들이 사회 각계층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연변의 주인공은 중국동포들이라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앞으로 한중 교류의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일의 물꼬


상가의 간판들은 한/중 양국어를 병용하도록 되어 있다.

중국 중앙정부의 지침으로 소수 민족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배려로 해석된다.

아마도 다른 소수민족 자치주에서도 그 민족의 언어와 중국어를 병기하는 시스템으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 언어도 연변자치주 이므로 조선말과 중국어를 거의 반반 비율로 사용하게 되는데 이마저 다행이고 북한 식당도 있다고 하므로 기회가 되면 북한동포들과 통일조국을 위한 만남이 기대가 되었다.

남남북녀라는데 남쪽에서 온 내가 북쪽에서 온 동포들을 만나면 통일 한국의 물꼬를 트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독일의 경우 통일 이전까지 동/서독 간 민간교류가 지속적으로 유지가 되었지만 남북은 민간교류가 많이 부족하고 이산가족들끼리 생사를 확인하는 작업도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정부들이 합심만 하면 민간 교류에 어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연길에서 있다가 보면 북한 동포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거나 이산가족들을 찾아주는 연결책들이 있었다. 하루는 행동거지가 매우 조심스러워 보이는 일행들이 지점 사무실에 들어와 귀국편 항공기 예약을 하면서 손님들끼리 이야기를 하는 게 들렸다.

눈치가 북한에 있는 친척들을 연길에서 만나려고 남한에서 온 모양이다.

남한에서 온 가족들과 북한에서 온 가족들이 상봉하려는 당사자들과 어떤 인척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남한의 오빠가 북한의 여동생을 찾는다는 연락이 닿아 연길에서 서로 오누이가 되는 증명용 사진과 편지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오빠와 여동생은 고령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자손들이 남에서 북에서 연길로 온 것이다. 여동생이 쓴 손편지를 볼 기회가 있었다. 딱 봐도 종이 품질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또박또박 정성을 다해서 눌러쓴 편지에는 오빠에 대한 그리움과 다른 가족들의 생사와 근황이 적혀 있었고 북한의 어려운 경제현실을 이야기하면서 도움을 청하는 내용으로 마무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동생이 보관해 온 오래전 빛바랜 사진과 여동생의 자손들과 같이 찍은 최근 사진을 동봉해 왔다.

사실 오누이 당사자들이야 절절한 사연과 만남의 기대를 하고 있겠지만 이미 고령이고 자손들이 대신 와서 감정을 이어가는 데 안타까운 사연들이 어디 한 두 개 이겠는가?

부디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들이 자유롭게 편지와 사진 왕래라도 편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판문점에 상시 접대소를 만들어 이산가족들이 사전 약속하고 만나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추진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통일의 물꼬는 어떤 정치 논리보다 우선 해야 한다.


북한 식당


북한에서 출신이 좋은 예술인들을 선발하여 북한 식당에서 외화벌이꾼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홀 한가운데 드럼과 악기들이 준비되어 그룹사운드 형식으로 공연을 하는데 전 인원이 여성 동무들이었다. 식당 총책임자는 북한 남성인데 왜소한 체격에 강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내가 남한에서 온 것을 아는 책임자는 틈틈이 테이블로 와서 세심한 신경과 배려를 해 주었다.

북한 여성 동무들은 한결같이 옅은 화장에 자연미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중국에 파견되어 임기를 채우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 중앙당이 정하는 곳에서 다시 조국을 위하여 봉사를 한다고 한다. 그룹사운드는 기타와 오르간, 드럼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창법은 성악가들이 부르는 발성법을 근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이사항으로는 우리가 방으로 예약하여 식사를 하고 있으면 방으로 들어와 ‘반갑습니다’, ‘휘파람’ 등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데 손님들과 함께 2-3번 가다 보면 안면이 생긴 여성 접대원 동무들과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오래전 아주 미모가 출중한 북한 여성 접대원 동무가 활동을 하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나중에 소문을 들어 보니 한국 남자와 연분이 생겨서 둘이 제3 국으로 애정도피를 했다고 한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고 하지만 정말 북남 커플도 많이 나와야 통일의 물꼬를 제대로 틀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애정도피를 한 두 남남북녀는 어디에서 사랑의 둥지를 틀었을지 궁금하다.

그렇게 그들이 시작한 통일의 물꼬는 연길에서 시작되었다.



迁入申报


我来到延吉的那天,我的前任漫不经心地去了外地,所以我主动给代理店的老板们打电话,开始了新任分店长的调动申报兼约定。

首先,离办公室最近的代理商在同一栋楼的上层,走楼梯上去打招呼。 中年女老板,谈吐高雅,显得游刃有余。

由于前任者慌忙撤离,我怀着各个击破的心情到处走动,城市氛围和我小时候生活的故乡非常相似,感觉就像很久以前来过一次一样。 横穿城市外围的河流也相似,城市中心的大小和氛围也很相似。 可能是因为这样,主要道路的布局和建筑物的构成也更加相似。 因为是夏天到达的,所以白天和韩国的夏天天气没有什么差别,但是早晚吹来凉爽的风。

计划每天访问2个地方。 上午一个地方,下午一个地方。

1周后主要代理店的访问将结束,2周后决定结束与机场主要部门的代表们的问候。

从近距离代理店开始,混合远距离代理店访问代理店,朝鲜族社长中女社长较多,汉族社长中男社长较多,看到中国同胞在社会各阶层活动,再次认识到延边的主人公是中国同胞。

多幸运啊? 今后,韩中交流将起到很好的桥梁作用。


统一的闸门


商业街的招牌同时使用韩中两国语言。

分析认为,这是中国中央政府的方针,旨在最大限度地减少少数民族的不便。

预计其他少数民族自治州也将维持该民族语言和汉语并记的系统。 因为使用语言也是延边自治州,所以朝鲜语和汉语几乎各占一半,幸好还有北韩餐厅,所以有机会的话很期待与朝鲜同胞们为了统一祖国见面。

南男北女,谁知道,如果来自南方的我见到来自北方的同胞,能否打开统一韩国的大门?

德国在统一之前一直维持着东西德之间的民间交流,但是南北的民间交流却非常不足,离散家属之间确认生死的工作也并不容易。

只要政府齐心协力,民间交流有什么困难?

在延吉,可以看到以北韩同胞为对象进行传教活动或寻找离散家属的连接方法。 有一天,听到行动举止非常谨慎的一行人来到分店办公室,预约回国航班时,客人之间正在交谈。

看眼色,好像是从南韩赶来探望在北韩的亲戚。

虽然不知道南韩的家属和北韩的家属要见面的当事人是什么姻亲关系,但是南韩的哥哥联系到找北韩的妹妹,在延吉带来了证明用照片和信件。 哥哥和妹妹因年事已高而无法行动,子孙们从南边从北边来到延吉。 有机会看到妹妹写的手信。 一看纸质就不怎么好。

在认真写的信中,写下了对哥哥的思念和其他家人的生死和近况,最后以讲述北韩艰难的经济现实并请求帮助的内容收尾。

另外,还附上了妹妹保管的很久以前褪色的照片和妹妹子孙们一起拍的最近照片。

事实上,兄妹双方虽然都期待着恳切的故事和相见,但年事已高、子孙代为延续感情的令人惋惜的故事又何止一两个呢?

如果所剩无几的离散家属能够自由地写信和拍照,那该有多好? 或者,在板门店设立常年接待所,让离散家属事先约定好见面,这样的方案在现实中是可以推进的。

打开统一之门要比任何政治理论都要优先。


北韩餐厅


从北韩挑选了一批出身好的艺人,在北韩食堂当起了创汇人。

大厅中间准备了架子鼓和乐器,以组合声音的形式进行演出,全体人员都是女性同志。 餐厅总经理是男性北韩,身材矮小,眼神强烈,令人印象深刻。

知道我来自韩国的负责人抽空来到桌子上,给予了细致的神经和关怀。

北韩的女同志都是淡妆自然美女,被派往中国任满后,又回到北韩,在党中央规定的地方,再为祖国服务。 组合声音由吉他、风琴、架子鼓等组成,唱法是声乐家们演唱的发声法的基础。 特别的是,我们预约到房间吃饭时,会回到房间弹着吉他唱《很高兴见到你》、《口哨》等,和客人一起走2-3次,就会和认识的女招待员同志们亲切地打招呼。

很久以前,一位美貌出众的女招待员北韩在活动过程中失踪,后来听说他与韩国男人有缘,两人逃到了第三国。

虽说爱情不分国界,但只有出现很多北南情侣,才能打开统一的闸门。

不知当时逃避爱情的两位南男北女会在哪里筑起了爱情巢穴。

他们就这样开始了统一之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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