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집이든 학교든 화장실은 100% 푸세식이었다.
도심에 살던 내가 그럴 정도면 다른 지역은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수세식 화장실을 언제 처음 사용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를 않는데 아마도 초교 시절 대형 병원이나 관공서가 아니었겠나 싶은데. 쭈그리고 용변을 보는 양변기와 의자에 앉는 좌변기의 추억이 각각 다르다.
양변기의 첫 경험은 푸세식과 용변 자세가 비슷하므로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데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시각과 후각의 현장 증명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어제 취식물의 소화 상태나 건강상태를 동의보감의 허준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관찰이 가능하다.
좌변기는 조금 다른 첫 느낌이다.
일단 앉아서 용변을 보는데 항문에서 출발하는 발사각이 왠지 엉덩이 안쪽을 스치고 지나갈 것 같은 노파심이 생겼다. 혹시 모를 참사를 막으려고 엉덩이 중심인 항문을 최대한 확장시킨 후 용변을 봤는데 나중에 보니까 너무 힘을 주어 당겼는지 항문 주위가 얼얼했다.
인류가 발명한 실생활 최대 히트작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내 기준으로는 수세식 화장실과 면도기가 아닐런지?
면도에 대한 추억은 다음 기회에 소개를 하련다.
4학년 때 엄마의 권유로 보이스카우트에 가입을 했다.
성장과정을 돌아보니 6학년 이전은 엄마의 결정으로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였고 6학년부터 내 판단기준이 개입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엄마의 판단과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탓을 하는 것이 아니므로 오해는 하지 마시라.
내가 어릴 적 숫기 없는 성격이 스카우트와 태권도를 하면서 많이 개선되었음을 인정한다.
물론 엄마의 권유를 빙자한 결정이었고 나는 따라서 했을 뿐인데 과정과 결과로 판단을 해보니 엄마의 선택은 옳았다. 덕분에 6학년을 기점으로 장난꾸러기로 변신을 한다. 내향적 성격이 외향적 성격으로 변하는 기반을 제공한 활동이었다.
스카우트 활동 중 중요한 행사로 ‘잼버리jamboree’라는 야영활동이 있으며 스카우트 정신을 말하는 구호 ‘차리고 있다’는 늘 준비된 자세를 말한다.
연혁을 살피다 보니 재미있는 내용이 발견된다.
1922년10월 조선 소년군 경성 제1호대가 발대를 했다고 하는데 일제 강점기 시대에 발족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1924년에는 극동 국제 야영대회에 대표단을 북경으로 파견했었고 1925년에는 소년군 교범이 발간되었다고 한다. 6.25 전쟁 기간인 1952년8월 제1회 한국 잼버리를 부산 일광 해변에서 개최했다고 하는데 놀랍지 않은가? 일제 강점기와 6.25 같은 압제와 전쟁 속에서도 꽃은 피어 있었다.
1978년 유신 말기 제26차 세계 총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세계 명예총재로 추대했다는 기록도 보이고 2023년8월1-12일까지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가 개최된다고 한다.
부디 성공적인 개최를 위하여 나도 늘 차리고 있겠다.
평일 오후 6시가 되면 전국적으로 싸이렌이 울리면서 국기 하강식을 시작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방송되면 가던 길을 멈추고 방송이 들리는 방향으로 자세를 고치고 단정히 서서 엄정한 마음가짐으로 오른손을 왼쪽 가슴 쪽에 경건하게 올린 후 국기에 대한 맹세가 끝날 때까지 부동자세로 유지를 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국기 하강식은 박 대통령 시해 사건을 정점으로 끝났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도대체 이런 발상은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인가? 국민 전체를 휴전상태의 긴장으로 유지시키려는 통치수단이 아닌가?
그렇게 숭고한 이념과 가치가 있는 활동이었다면 박 대통령의 부재와 무슨 연관성이 있다는 말인가? 애국심과 당시 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고 통제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장기 독재에 대한 거부감을 억제하려는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밖에 생각이 안 든다.
충효 사상, 국기에 대한 맹세, 국민교육헌장 등 충성을 강요하는 문구와 선정적인 단어가 사용된 각종 선언문과 금방 통일이라고 될 것 같은 각종 성명서는 중요 선거철이나 반정부 활동의 분위기 쇄신용으로 어김없이 등장했었다.
학교에서도 암기하라고 검사하고 체벌의 기준으로 활용되는 예전의 현실이 웃슬프다.
민주화 운동을 반정부 활동으로 해석하고 반정부 활동을 반국가 행위로 몰던 시절들이 있었다.
반정부가 반국가는 아니지 않은가? 정치와 통치에도 품격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
无论是小时候的家还是学校,卫生间都是100%的吸尘器。
生活在市中心的我,到了这种程度,其他地区就更不用说了。
但是记不清第一次使用水冲式卫生间是什么时候了,大概是小学时期的大型医院或政府机关吧。 蹲下便便的坐便器和坐在椅子上的坐便器的回忆各不相同。
坐便器的第一手经验是,由于推洗式和便便姿势相似,所以不会出现什么问题,但是对于自己的结果,视觉和嗅觉的现场证明非常生动,有眼力见的人,即使不是东医宝鉴的许准,也可以观察自己昨天进食植物的消化状态或健康状况。
坐便器是稍微不同的第一感觉。
首先坐下来大便,不知为何,从肛门出发的发射角似乎会从臀部内侧掠过,产生了老太婆心。 为了防止发生意外,最大限度地扩张臀部中心的肛门后排便,后来一看,可能是因为用力过猛,肛门周围火辣辣的。
你认为人类发明的现实生活中最热门的作品是什么?
以我的标准,应该是水冲式卫生间和剃须刀吧?
下次有机会再介绍刮胡子的回忆。
4年级时,在妈妈的劝说下加入了童子军。
回顾成长过程,推测6年级以前是妈妈的决定左右了我的人生,从6年级开始我的判断标准开始介入。
不是因为妈妈的判断和决定是错误的,所以不要误会。
我承认我小时候胆小的性格通过童子军和跆拳道得到了很大的改善。
当然,这是以母亲的劝说为借口做出的决定,我只是跟着做的,但是从过程和结果来看,母亲的选择是正确的。 因此以6年级为起点变身为淘气鬼。 这是为内向性格转变为外向性格提供基础的活动。
在童子军活动中,作为重要活动有"jamboree"野营活动,宣传童子军精神的口号"立正"是指时刻准备好的姿势。
观察沿革发现了有趣的内容。
据说1922年10月朝鲜少年军京城第1号队成立,在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成立,令人惊讶。 据悉,1924年向北京派遣代表团参加远东国际野营大会,1925年发行了少年军教范。 听说6.25战争期间的1952年8月,在釜山日光海边举行了第一届韩国Jamberry,不感到惊讶吗? 在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和6.25战争等压迫和战争中,鲜花依然盛开。
1978年维新末期第26届世界总会上,有推举朴正熙总统为世界名誉总裁的记录,据说第25届世界童子军大会活动将持续到2023年8月1-12日。
为了成功举办,我也会经常打扮的。
平日下午6点,全国鸣响警笛,开始降旗仪式。
如果播放对国旗的誓言,就会停下脚步,朝着能听到广播的方向改变姿势,以严肃的心态将右手虔诚地放在左胸前,直到对国旗的誓言结束为止,一直保持不动姿势。
我记得降旗仪式是以朴总统杀害事件为顶点结束的,但是这种想法到底是从哪里出发的呢? 这不是想让全体国民维持停战状态的紧张的统治手段吗?
如果是具有崇高理念和价值的活动,那么与朴总统的不在有什么关联呢? 笔者认为,这是为了强调爱国心和对当时政府的忠诚,并将其用作控制手段,同时抑制对长期独裁的反感。
忠孝思想、对国旗的誓言、国民教育宪章等使用强迫忠诚的语句和煽情词的各种宣言和即将实现统一的各种声明书在重要选举季节或反政府活动时毫无例外地登场。
学校也要求学生背诵检查,并将其活用为体罚的标准,这样的现实令人哭笑不得。
曾有过将民主化运动解释为反政府活动,将反政府活动视为反国家行为的时期。
反政府不是反国家吧? 政治和统治不也有品格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