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구했는지 아니면 엄마가 사 주셨는지 청 자켓을 입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청 바지에 청 자켓을 입었으니 온 몸이 靑청blue인데 마냥 좋았다. 진jean 소재의 옷들은 일단 입으면 웬만해서는 잘 빨지 않아도 그리 띠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좋아했었다.
당시 청바지가 떨어지면 안쪽으로 덧대어 촘촘하게 미싱질을 하면 또 새로운 느낌으로 또 몇 년 더 입기도 하는데 문제는 성장과정에 있던 내가 중학교 시절도 키와 체형이 컸을 테니 오래된 친구 같은 청바지와 이별을 하는 시간이 온다. 허리가 맞으면 반바지로도 변신을 하는데 허리마저 작으면 회복불능의 이별을 하게 된다.
아마도 정든 청바지와 중학교 시절에 1벌, 고교시절 1벌과 아쉬운 이별을 한 것 같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한 5년 잘 입은 청바지가 헤어져 땜빵이 불가한 상황이 되자 부득불 이별을 통보하고 새로운 인연을 맞아들였다.
그런데 청 자켓과 이별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아마도 청바지와는 다른 종류의 인연이었나 보다.
정든 옷과 이별은 고마움과 연민으로 이어진다.
그 청 자켓과 청 바지를 입고 등산을 갔다.
겨울이라서 상당히 추웠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옷도 부실하게 입고 산행을 시작했다.
교회 중등반에서 함께 한 행사라 한 20여 명이 같이 갔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 장난꾸러기 시절의 잊을 수 없는 추운 기억을 남기게 되는데 전후 정황은 이렇다.
산행 길에 저수지가 있었고 저수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삼삼오오 저수지 주변으로 모이는 상황에서 나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불친과 저수지를 기웃거리며 얼음이 어느 정도 얼었나 살피면서 저수지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가 발동한 나의 장난기. 급기야는 장난 삼아 불친을 저수지 얼음 방향으로 밀었다.
밀린 불친이 당황해서 나를 잡고 같이 끌면서 나와 함께 얼음물에 빠지고 말았다.
사람이 급하게 당기면 소도 잡아 끌 수 있는 힘이 나온다는 것을 그때 경험을 했다.
얼음물에 빠지기 전에는 내가 바깥쪽에 있었는데 빠져서 보니 저수지 안쪽에 와 있었다.
불친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위기감 속에서 나를 강하게 잡아당긴 결과였다.
다행하게도 발은 저수지 바닥에 닿았고 슬금슬금 깨진 얼음장들 사이로 빠져나왔다.
얼음물 속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나온 다음이 문제였다.
예전에 다큐멘터리를 보았을 때 얼음물 속에 사는 물고기들이 밖으로 나오면 얼어 죽는다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그 물고기 신세가 되었다. 청 자켓과 청 바지는 이미 얼기 시작하고 나의 젖은 알몸이 그 옷들 속에 있었으니 당연하게 같이 얼어 가는데 수 천 개의 바늘이 온몸을 찌르는 듯한 추위와 고통이 이어진다. 테레비에서 보는 얼음물 수영이나 샤워는 물에서 나와서 바로 더운물로 씻거나 따뜻한 환경에서 몸을 데울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나의 경우는 갈아입을 옷도, 보온되는 장소도 없이 그냥 젖어서 얼기 시작하는 얼음 옷을 입고 산행을 끝내고 나서 집에 올 때까지 약 4시간 이상 생고생을 다했으니 사소한 장난의 후폭풍으로 가혹한 결과를 준다는 교훈을 얻었다.
같이 빠진 불친도 나와 같은 얼음물 샤워를 했으니 춥기는 매 한 가지였을 것이다.
나에게 화를 낼 만도 한데 미안한 추억만 남기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지금도 얼음이 낀 호수나 빙판을 보면 그 당시 장난하다가 물에 빠졌던 그 겨울 산자락이 생각난다.
혹시 ‘체험! 삶의 현장’처럼 나의 경험을 해 보고 싶다면 그대도 한 겨울 얼음물에 빠진 후 얼어 버린 옷을 입고 등산을 해봐야 그 당시의 내 느낌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얼음물에 빠지면 얼마나 춥냐고? 그것을 어떻게 말로 설명을 하겠는가?
이제는 제법 콧수염들이 자라서 나의 검은색 수염들이 면도를 해야 할 시점이 왔음을 알린다.
면도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보면서 면도 기법이나 행동양식을 자동으로 기억하고 있었고 중학교 시절은 추가로 근식이 형이 면도하는 것을 보면서 나름 시각적인 훈련은 되어 있었다.
세면대에 보이는 면도기와 거울을 가지고 충분하게 면도를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면도기는 면도날을 끼워서 사용하는 매우 불안전한 도구로서 지금과 비교가 불가하다.
지금은 5중, 6중 면도날이 안전한 틀에 잘 끼워져 있어서 면도할 때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없는 안전장치로 잘 고정되어 있지만 당시 오리지날 면도날을 교체해서 사용하는 면도기는 면도날로만 1층이었고 부드러운 면도가 아예 불가능하고 심지어 피를 보기도 한다.
면도를 하기 전에 충분히 피부에 대한 보습/보온 유지가 안되면 수염들이 깎여지는 것이 아니라 뜯겨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얼마나 아프고 불편할지 상상이 안 갈 것이다.
그러다가 꼼꼼하게 한다고 구석구석 두세 번 면도를 했더니 화끈거린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좋았는데 아버지 쓰시던 애프터 쉐이브 로션을 바르는 순간.
‘나 홀로 집에’ 영화를 보면 남자 주인공 케빈이 혼자 놀기를 하다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고통에 찬 외침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딱 그런 기분이라고 이해하시라.
不知道是在哪里买的还是妈妈买的,有一段时间穿着牛仔夹克。
穿着牛仔裤和牛仔夹克,全身都是青青蓝色,非常开心。 琼脂材质的衣服一旦穿上,即使不怎么洗也不会太显眼。 所以更喜欢。
当时牛仔裤掉下来的话,往里边再密密麻麻地缝纫的话,又会有新的感觉,多穿几年,问题是处于成长过程的我在中学时期身高和体型也很大,所以到了与像老朋友一样的牛仔裤离别的时间。 如果腰合得来,可以变身短裤,如果腰也小,就会面临无法恢复的离别。
也许是因为与深情的牛仔裤和中学时期一件、高中时期一件的遗憾离别。
后来长大后有过类似的经历,但是穿了5年的好牛仔裤分手了,无法弥补,所以不得不通报分手,迎来了新的缘分。
但是想不起来和牛仔夹克的离别了。
可能是因为与牛仔裤有着不一样的缘分吧。
深情的衣服和离别会带来感激和怜悯。
穿着那件牛仔夹克和牛仔裤去登山了。
因为是冬天,所以相当冷,不知道在想什么,连衣服都穿得不结实,开始爬山了。
因为是在教会中等班一起参加的活动,所以记得有20多人一起去过。
我留下了调皮鬼时期难忘的寒冷记忆,前后情况是这样的。
在登山路上有水库,为了以水库为背景拍照,三三两两聚集在水库周围的情况下,我的调皮劲爆发了。
我和佛父在水库边探头探脑,在水库周围徘徊,直到冰面结到什么程度,才开始的我的调皮劲儿。 最终,他开玩笑地将不亲推到了水库的冰面上。
堆积如山的佛父惊慌失措,抓着我一起拉,和我一起掉进了冰水里。
当时的经验是,如果人急急忙忙地拉拽,牛也会产生牵牛的力量。
掉进冰水里之前,我在外面,掉进去一看,在水库里面。
这是佛父在感受到生命威胁的危机感中强烈地拽住我的结果。
幸运的是,他的脚碰到了水库的地面,悄悄地从破碎的冰块中逃了出来。
在冰水里的时候不太清楚,出来之后才是问题所在。
以前看纪录片时,可以理解生活在冰水中的鱼一旦出来就会冻死的意思。 我成了那条鱼。 牛仔夹克和牛仔裤已经开始结冰,我湿漉漉的裸体在那件衣服里,当然地冻在一起,数千根针扎在全身的寒冷和痛苦接连不断。 在电视上看到的冰水游泳或淋浴,从水里出来后马上用热水洗,或者在温暖的环境中加热身体,真是万幸,但是我的情况是没有换洗的衣服,也没有保温的场所,就穿着湿开始结冰的冰衣,从爬山到回家,大概经历了4个小时以上的辛苦,这是小小的恶作剧的后续风暴,带来了残酷的结果。
一起落水的不亲也和我洗了同样的冰水澡,所以冷是一样的。
本来可以对我发火的,但是只留下对不起的回忆就翻到了下一页。
现在看到结冰的湖面或冰面,还是会想起当年嬉戏落水的那座冬天的山脚。
如果想要像"体验生活现场"一样体验一下我的经历,那么你也应该穿着冬天掉进冰水里后冻僵的衣服登山,才能理解当时的感受。
你说掉进冰水里多冷啊? 岂可言说?
现在小胡子长大了,告诉大家我的黑色胡须该刮胡子了。
剃须从小看着父亲自动记得剃须的手法和行动方式,中学时期还看着根植哥刮胡子,进行了视觉上的训练。
他们认为,用洗脸池上的剃须刀和镜子完全可以刮胡子。
当时剃须刀是夹着剃须刀刃使用的非常安全的工具,与现在无法相比。
虽然现在5重、6重剃须刀片很好地固定在安全的框架上,剃须时脸上不会留下伤痕的安全装置,但当时更换原版剃须刀片使用的剃须刀只有剃须刀片才1层,根本不可能进行柔软的剃须,甚至会流血。
如果在剃须之前不能充分保持皮肤的保湿/保温,胡须不是被刮掉,而是被刮掉的感觉,很难想象会有多疼和不舒服。
后来为了细心,每个角落都刮了两三次胡子,结果火辣辣的。
到那里还好,但是抹爸爸用过的须后乳的瞬间。
看《小鬼当家》电影的话,男主人公Kevin在独自玩耍的过程中,会经历和我相似的经历,并记住充满痛苦的呐喊场面。
就理解成那种心情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