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말하자면 명동에 해당하는 타이베이 구 도심의 중심지이다.
지역 명칭에 町정이 사용되는 것을 보면 일본 식민통치의 흔적이라고 보면 된다.
대만인들에게 일제 식민통치는 어떤 의미를 갖을까?
우리나라가 일본 강점기에 보여준 독립운동이나 저항이 있었을까?
1895년 청일전쟁에 패한 대가로 대만을 일본에 할양하면서 시작된 일제 통치는 1945년 종결되므로 정확하게 50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는다. 일본은 대만을 식량기지와 태평양 진출의 교두보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원래 대만은 명나라 이전 까지만 해도 중국 영토의 개념이 아니었고 1624년 네덜란드가 대만에 첫 진출한 외국이며 청나라 초기인 1661년 명나라 유신 鄭成功정성공이 청나라로부터 대륙 수복을 위한 전초기지로 사용했다. 청나라의 통제는 1683년부터 1895년까지 불과 2백 년간이며 그 이후 일제 식민 통치가 50년간 유지된 것이다.
특히 1930년부터 시작된 황민화 정책으로 일본어를 교육시켰고 일본 성씨로 개명하고 신사 참배도 의무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면서 강제 징용과 징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지만 현재의 반일감정을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니며 오히려 일본문화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아마도 대만 역사를 살펴보면 다양한 이민족들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의 연속성으로 보인다.
일본의 식민통치를 위한 목표 지역은 한국, 중국, 대만을 포함한 동남아 전역까지 포함된다. 다시 생각을 해봐도 일본은 호전적인 민족이며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전쟁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아직도 많은 나라라고 보는 것이 맞는 판단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대만의 역사를 보면서 다시금 생각나는 우리의 다짐.
일본을 기억하라!
만두의 일종인 소룡포는 돼지고기 속과 육즙의 맛이 좋아서 한국인의 선호도가 높은 음식이다.
牛肉麵우육면과 함께 대만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북송시대(960-1127) 王樓왕루라는 음식점에서 만든 山洞梅花砲子산동매화포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깥 주름이 14개 이상이 되면 최고로 인정을 받으며 외형은 범종과 같고 젓가락으로 들면 초롱처럼 늘어트린 모습으로 보여야 한단다.
닭 국물로 돼지껍질을 삶아 만든 고기 껍질을 얼린 다음 돼지고기와 섞어서 만드는데 알다시피
鼎泰豊딘타이펑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당 체인점이다.
나도 좋아하는 만두인데 육즙이 뜨거워서 먹을 때마다 입천장을 데이는 실수가 용서되는 맛의 신천지가 펼쳐진다.
한 개의 소룡포 안에는 작은 시 한 수가 들어 있어서 술안주로도 아주 잘 어울린다.
2차 대전이 끝나자 대륙에서 도망을 나온 장개석 정부가 일본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대만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만인들의 정서를 잘 표현한 글귀가 있다.
“拘去猪來 개가 가니 돼지가 왔네”
대만 원주민들은 일본이 떠난 후 중국 공산당에게 쫒겨온 국민당과 중국인들에 대한 실망감을 느낀다. 대만에 거주하던 중국인들은 本省人본성인으로 불렀고 2차 대전 후 대만으로 건너온 중국인들을 外省人외성인으로 불렀다.
1945년10월25일 대만 주둔 일본군들이 항복하면서 대만은 국민당 정부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외성인들이 본성인들을 차별하는 정책을 시작으로 계엄령을 통하여 본성인들을 억압하고 대만을 대륙 수복을 위한 군사기지로 취급하자 민심이 흉흉해졌고 급기야는 228 사건으로 확대된다.
1947년2월27일 전매국의 밀수담배 단속을 하던 과정에서 좌판상 여인을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에 대한 반정부 시위에 가담한 대만인들에게 경찰이 총격을 가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대만인들을 대상으로 학살이 자행되어 약 2만8천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국민당 군사독재는 1949년-87년까지 계엄령을 유지하며 ‘백색공포’로 알려진 탄압정치가 이어졌고 1997년이 되어서야 과거 정권의 잘못에 대한 정부의 공식사과를 발표하고 228 기념탑과 기념관을 건립했다.
군사독재 정부가 국민들을 무고하게 탄압하는 과정은 우리나라와 흡사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남산의 부장’의 영화를 보면 유신 말기 釜馬부마사태를 대응하던 청와대 회의에서 당시 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이 캄보디아 사례를 들면서 시위에 가담한 불순분자들을 탱크로 밀어버려야 한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만일 당시 시위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거나 격렬했더라면 어떻게 진압되었을까?
상상하기도 힘들다.
首尔是相当于明洞的台北旧市中心。
从地区名称中使用町町的情况来看,可以看作是日本殖民统治的痕迹。
对台湾人来说,日本殖民统治意味着什么?
韩国在日本强占时期表现出的独立运动或抵抗吗?
以1895年甲午中日战争战败为代价,将台湾割让给日本后开始的日帝统治将于1945年结束,因此将受到日本50年的统治。 日本原计划把台湾作为粮食基地和进军太平洋的桥头堡。 原来,台湾在明朝以前还不是中国领土的概念,1624年荷兰是第一个进驻台湾的外国,清朝初期的1661年,明朝维新郑成功郑成功被清朝用作收复大陆的前哨基地。 清朝的控制从1683年到1895年只有200年,此后日本殖民统治维持了50年。
特别是从1930年开始实施的皇民化政策,对日语进行了教育,改名为日本姓氏,并义务性地参拜神社。 太平洋战争开始后,很多人因强制征用和征兵而饱受痛苦,但与我国相比,目前的反日情绪并不严重,反而日本文化的偏好度较高。
或许,纵观台湾历史,就是曾被不同外族统治的历史延续性。
日本殖民统治的目标地区包括包括韩国、中国和台湾在内的整个东南亚地区。 再想想,日本是好战的民族,也是为了本国的利益而重新发动战争的国家,这是正确的判断。
反过来说,看着台湾的历史,再次想起了我们的决心。
记住日本!
小笼包是一种饺子,猪肉馅和肉汁的味道很好,是韩国人喜爱的食物。
牛肉麵与牛肉面同为台湾代表性美食,据说来源于北宋时期(960-1127)一家名为"樓王楼"的饭店制作的山洞梅花砲子山东梅花孢子。
如果外面的皱纹达到14个以上,就会得到最高的认可,外形要像梵钟一样,用筷子拿着就要像灯笼一样下垂。
用鸡汤把猪皮煮熟的肉皮冷冻后和猪肉混合制成,众所周知。
鼎泰豊鼎泰丰是世界著名的连锁餐厅。
虽然是我喜欢的饺子,但是因为肉汁太烫,每次吃的时候都会原谅烫伤上颚的失误。
一个小笼包里有一首小诗,很适合做下酒菜。
二战结束后,逃离大陆的蒋介石政府开始取代日本统治台湾。
有一句话很好地表现了当时台湾人的情绪。
"拘去猪來 狗走了 猪来了"
台湾原住民对日本离开后一直被中共追赶的国民党和中国人感到失望。 居住在台湾的中国人称其为"本省人"、"本省人",二战后来到台湾的中国人称其为"外省人"、"外省人"。
1945年10月25日,驻台日军投降,台湾被国民党政府控制。
但是与期待相反,从外省人歧视本省人的政策开始,通过戒严令压迫本省人,将台湾视为收复大陆的军事基地后,民心变得混乱,最终扩大到了228事件。
1947年2月27日,在专卖局管制走私香烟的过程中,发生了殴打摊贩女性的事件,警方向参与反政府示威的台湾人开枪,事态进一步恶化。 在此过程中,以无辜的台湾人为对象进行了屠杀,造成了约2万8千名牺牲者。
国民党军事独裁在1949年-1987年维持戒严令,延续了被称为"白色恐怖"的镇压政治,直到1997年政府才对过去政权的错误正式道歉,并建立了228纪念塔和纪念馆。
军事独裁政府无辜镇压国民的过程与我国有着相似之处。
从《南山的部长》的电影来看,在应对维新末期釜釜马事件的青瓦台会议上,当时的警卫室长车智哲举出柬埔寨的事例,说要把参加示威的不纯分子推到坦克上的台词,想想都觉得这不能不说是一种可怕的表述。
如果当时抗议活动蔓延到其他地区或激烈,会如何镇压?
难以想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