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까지는 흥미진진한 고교야구를 즐기다가 고2가 되면서 더 흥미진진한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다.
운동 종목에 ‘프로’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같은 경기를 하던 선수들이나 작전들도 왠지 더 세련되고 더 그럴듯하게 보인다. 늘 하던 운동이었는데 ‘프로’라는 접두사가 붙은 효과라고 보인다.
프로니까 더 열심히 훈련해서 더 좋은 경기를 보여 주겠거니 싶은 마음으로 테레비 앞에서 또는 경기장에서 소리 높여 열심히 응원하던 삼촌과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 날의 승부 결과에 따라서 다음날 일진을 정하는 사람들까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말로만 듣던 프로야구의 열기는 그야말로 대단했고 활동 구단의 지역적인 배정으로 향토색이 가미된 상징성도 큰 작용을 했었다. 연중 야구를 즐길 수 있는 확장성은 곧 야구를 좋아하는 팬들의 입장에서도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특히나 평소 이름을 알만한 스타들의 동생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프로야구 선수들의 일상생활이나 훈련과정 및 라이벌 사이의 경쟁들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자료를 검색해보니 출범은 6개 팀으로 MBC 청룡, 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해태 타이거즈, 삼미 슈퍼스타즈 등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급조한 프로팀들이 있어서 선수층이나 구단의 지원이 엉성했던 사정들도 꽤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한 속사정을 알리가 없는 우리들은 라이벌 팀 간의 시합이라도 있게 되면 부지런한 녀석들은 라디오와 이어폰을 준비해 와서 듣곤 했는데 자율학습 시간에 야간경기가 치러지면 자기가 이어폰으로 듣고 있던 경기 실황을 생중계하던 녀석들도 있었을 만큼 프로야구의 인기는 높았다.
고2 같은 반. 형님과 같이 유명했던 친구로 실제로 형의 영향인지 본인의 노력인지 고교 내 친선 야구팀을 만들어서 타 학교와 시합을 주선하는 등 활약이 대단했었다.
당시 코인 야구장에서 베팅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김 선수의 실루엣이 느껴지면서 대단한 타격 솜씨를 자랑하곤 했었다.
친구의 타격하는 모습에서 홈런왕 형님의 모습이 보였고 실제로 타격하는 모습도 많이 흡사했었다.
김 선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 최고의 홈런타자로 한 시대를 풍미한 홈런왕 출신이다.
실업팀에서도 홈런 타자로 명성이 자자 했는데 프로에 와서 원년 홈런왕을 차지하는 등 만개한 기량으로 인기를 한 몸으로 받았다. 원년 홈런왕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작용하여 홈런 하면 김 선수, 김 선수하면 홈런이 연상될 정도로 상징성이 있었다.
실업야구에 3연타석 홈런이 6번 있었는데 김 선수가 3번 세웠다고 한다.
김 선수네 가족은 11남매의 대 가족으로 내 친구는 막내였고 김 선수는 5남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시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야구용품이나 김 선수 싸인 볼을 학교에 가져오면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한 번은 이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문상을 갔었는데 당시 해태의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함께 조문을 와서 테레비에서만 보던 유명선수들을 실물로 볼 수 있었던 행운도 있었다.
특히 이상윤 선수가 해태 에이스로 활약하던 시기였는데 가까이 에서 본 이 선수는 듬직하고 미남자여서 인기가 높았었다.
이 친구는 지금 미국에서 잘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 선수와 매우 닮아서 아마도 미국 내 한인사회에서도 형님인 김 선수와 닮았다는 이유와 함께 유명세에 시달릴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 같이 보게 되면 같이 소주 한 잔 하면서 지난 세월에 대한 회포를 풀어야 하는데 그 기회가 언제쯤 오겠는지 궁금하다. 친구야!
같은 프로 야구 원년 멤버인 김 선수는 실력과 외모도 출중하여 아마도 여성 팬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력을 보니 전주에서 초교를 마친 후 군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설의 군산상고 출신으로 나온다. 당시 군산상고는 고교 야구의 전설로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승부에 대한 집중력과 고교 야구의 인기와 사랑을 듬뿍 받았었다.
프로야구 당시 공포의 김 씨(김봉연, 김종모, 김성한, 김준환, 김일권 등) 타선의 중심으로 절정의 활약과 인기가 많았던 선수로 기록을 찾아보니 1972년 군산상고가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3점 차로 뒤지던 경기를 9회 말 4점을 뽑으면서 역전할 때 김봉연, 김일권 등과 함께 주역으로 활약했던 것으로 나온다. 프로 원년 백인천 선수와 홈런 공동 2위에 오를 정도로 장타력을 자랑했었다.
화려한 선수생활을 마치고 쌍방울 레이더스 타격코치와 감독대행을 역임했고 SK 와이번스 수석코치를 경험한 후 원광대학교 감독으로 오랫동안 역임을 했다.
김 선수 동생이 우리 학교 후배로 있어서 더욱 관심이 가져졌던 해태의 간판타자 중 한 명이다.
到高一为止,一直享受着有趣的高中棒球,到了高二,开始了更加有趣的职业棒球。
如果运动项目被冠以"职业"的头衔,同场竞技的选手和作战也会显得更加干练和像模像样。 这是经常做的运动,但似乎带有"专业"前缀的效果。
有些叔叔和大叔抱着"因为是职业选手,所以会更加努力训练,展现更好的比赛"的心情,在电视机前或赛场上大声助威。
甚至有人说,有些人会根据当天的胜负结果决定第二天的比赛结果。
传说中的职业棒球的热情非常高涨,活动球队的地区性分配也增加了乡土色彩的象征性也起到了很大的作用。 全年都能享受棒球的扩张性,对于喜欢棒球的球迷来说也是值得举双手欢迎的事情。
特别是,平时知名的明星弟弟们都在同一所学校上学,因此可以生动地听到职业棒球选手们的日常生活、训练过程及竞争对手之间的竞争。
搜索资料后发现,MBC青龙队、三星狮子队、OB熊队、乐天巨人队、海泰老虎队、三美超级明星队等6支球队成立,但后来才知道,由于有紧急组建的职业队,所以选手层或球队的支援有些松懈。
我们不可能知道这种内情,只要对手之间有一场比赛,勤奋的家伙们就会准备广播和耳机来听,但在自律学习时间进行夜间比赛时,也有一些家伙会现场直播自己用耳机听的比赛实况,因此职业棒球的人气很高。
高二同班。 作为和哥哥一样有名的朋友,不知道是受到哥哥的影响还是本人的努力,在高中内组成了友好棒球队,安排了其他学校比赛等,表现非常活跃。
当时看到在投币棒球场练习投注的样子,不知为何能感受到金选手的轮廓,经常炫耀自己的击球手艺。
从朋友击球的样子中看到了本垒打王大哥的样子,实际击球的样子也很多相似。
金选手是公认的当代最佳本垒打者,是风靡一时的本垒打王。
在实业队也以本垒打击球手名声大振,但来到职业联赛后,以元年本垒打王等盛开的技术获得了很高的人气。 元年本垒打王的印象起到了很大的作用,一提到本垒打就会联想到金选手,一提到金选手就会联想到本垒打,具有象征性。
据说,在实业棒球赛上曾出现过6次3连击本垒打,但金选手却击出了3次本垒打。
金选手一家是11兄妹的大家庭,我的朋友是老幺,金选手是5儿子,如果把当时市面上看不到的棒球用品或金选手签名球带到学校,不仅在学生之间,在老师之间也很受欢迎。
有一次,这位朋友的母亲去世后去吊唁,当时海太队的奇罗星等选手们一起前来吊唁,幸运地看到了只在电视上看到的著名选手们。
特别是在李尚允选手作为海太王牌活跃的时期,近距离看到的李选手因为是稳重而美男子,所以人气很高。
据我所知,这位朋友现在在美国生活得很好,但是因为长得像金选手,也许在美国国内的韩人社会也会因为长得像哥哥金选手而备受名气折磨。
什么时候一起见面的话,要一起喝杯烧酒来消除对过去岁月的遗憾,很好奇那个机会什么时候会到来。
朋友啊!
同为职业棒球元年成员的金选手实力和外貌也出众,估计有很多女性粉丝。 从履历来看,他在全州读完小学后,在群山中学毕业,是传说中的群山商业高中出身。 当时群山商业高中作为高中棒球的传说,被称为"逆转好手",对胜负的集中力和高中棒球的人气和喜爱。
职业棒球当时,以恐怖的金氏(金凤延、金钟模、金圣翰、金俊焕、金日权等)击球阵容为中心,作为最佳活跃和人气较高的选手,查阅记录发现,1972年群山商业高中在黄金狮子旗决赛中落后3分的比赛中,在第9回合末得到4分,逆转时与金凤延、金日权等一起担任主角。 他曾与职业棒球元年选手白仁天并列本垒打第2位,长打能力非常突出。
结束华丽的选手生活后,历任双铃激光雷达击球教练和代理教练,在担任SK飞龙首席教练后,长期担任圆光大学教练。
因为金选手的弟弟是我们学校的后辈,所以更加关注海泰队的招牌击球手之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