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대학 이야기 10

by 제이킴

지리산 등반기


누가 제안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도 사촌 형의 제안으로 알고 있다.

당시 쌍둥이 사촌 형이 장남이고 내가 우리 집에서 장남 그리고 동년배 사촌 조카도 장남이니 각자 집안의 장남들이 지리산에 가자고 의기투합이 되었다.

복잡한 사촌 관계처럼 보이고 나이 차이가 많은 듯 싶지만 나이는 동갑들이었다.

사촌 형은 7살에 초교를 입학하였고 나와 사촌 조카는 8살에 입학하여 1년 선배님과 같은 학년생 구도였다.

일명 ‘장남들’. 왠지 당시 인기 있었던 그룹사운드 이름 같지 않은가?


지리산 언저리는 가 본 적이 있었겠지만 정상까지 가 본 적이 없었고 초교 시절 속리산 등산이 후 처음으로 가는 등산으로 즐거운 기다림과 호기심이 작동을 하였다.

여름방학을 이용한 등산이었으니 2박 3일 동안 자고 먹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할 터.

버스를 타고 백무동 산자락으로 이동한 후 천왕봉 정상에서 텐트로 야영하는 계획이었다.

지리산 1915m은 민족의 어머니와 같은 산으로 한민족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껴안고 있는데 智異山지이산 이라고 쓰지만 지리산으로 부른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지리산은 백두산이 크게 끝난 곳으로 산의 다른 명칭은 頭流山두류산이다. 세간에서는 금강산을 蓬萊山봉래산, 지리산은 方丈山방장산, 한라산을 瀛洲山영주산이라 하는데 소위 三神山삼신산이다."라고 하였다.

백두대간이 크게 끝나는 곳.


훗날 내가 백두산 정상에서 천지를 내려다보며 민족의 기운을 담고 왔는데 그곳이 백두대간의 출발점이고 지리산은 백두산이 크게 끝난 곳이라고 하니 중간단계는 생략되었지만 시작점과 끝자락은 발로 밟고 오른 셈이다.

당시에는 산에서 숙박은 텐트가 99% 시절이었다. 먹고 자는 용품들 일체를 배낭에 짊어지고 다니는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젊음이 좋아서 가능한 이야기로 본다.

현재의 학생들에게 약 20kg 전후의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라고 하면 과연 얼마나 동의할지 의문이지만 당시에는 다 그런 줄 알고 다녔기에 별다른 이유가 필요치 않았다.

평소 운동을 할 리가 없는 내가 무작정 지리산 정상을 오른다고 생각을 해보니 걱정이 살짝 되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누가 가지고 온 손수건 지도를 보면서 등산코스를 살펴보니 백무동이 정상으로 접근하는 코스 중 가장 빠른 선택이었다. 사실 산에서 2박 3일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짧게 또는 길게 느껴질 수 있는 여정이다.

지금 검색을 해 보니 백무동 계곡은 경남 함양군과 산청군 2코스가 있는데 어느 곳으로 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하지만 젊음이라는 것은 가슴 설레는 단어로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미리 두려워하거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분명 젊음의 특권이지 않은가?

서서히 코스 입구에서 등산을 위한 예열을 시작했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면서 느낀 코스에 대한 단상은 단축 코스를 선택해서 그런지 거의 오르막의 연속이었는데 그 시절에는 등산화나 별다른 장비 없이 운동화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이동하는 거리들이 반복되면서 다소 지루한 산행이 되고 있었다.

다만 내가 초교시절 어머니의 권유로 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평소 야영에 대한 부담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장남 친척들과 오래간만에 등산다운 등산을 지리산에서 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학생 시절이 아니면 언제 지리산에서 야영을 하며 정상을 밟아 보겠는가?

한 발 한 발 지리산에 묻혀 있을 전설들을 생각하며 올라갔다.

가며 쉬며 반나절을 올라가니 여기저기 말로만 듣던 이정표가 보인다.


드디어 정상에 다다르자 하얀 운무에 가려 발아래 산들이 보이지를 않았는데 우선 정상에 왔다는 벅찬 기쁨과 안도가 함께 밀려왔다. 저녁을 간단히 차려 먹고 쏟아지는 잠을 청했는데 텐트를 깔고 자던 산기슭에서 산신령의 기운의 느껴졌다. 꿈인가? 환각인가?

산 정상은 평평한 지형이 많아서 텐트를 치는데 어려움은 없었고 생각보다 야영하는 무리들이 꽤 있었다.

이 젊음들은 무슨 사연으로 여기 정상까지 왔을까?

밤하늘의 별들이 많아서 눈을 크게 뜰 수가 없었다. 눈을 크게 뜨면 별들이 눈 속으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인간이 살면서 정상을 오르고 싶어 하는 사회적인 욕망과 갈등들은 산 정상에 오르면 한낱 허욕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허욕이라는 것은 ‘헛된 욕망’이라고 정의하자면 매사에 욕심과 열정으로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며 그 길을 걷고 있지만 지나고 보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내가 너무 집착했음을 반성하게 된다.

산에 왔다고 도인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등산을 하다 보면 자연 앞에선 내가 백 년도 못 살면서 천년의 고민을 안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정상에서의 야영은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은하수계에 외계인이 있다면 한반도에서는 우리가 가장 먼저 간파를 할 것이고 해발 2킬로미터의 상공이니 최상질의 공기를 느끼며 숨을 쉬고 있는 것이고 한반도를 호령하던 수많은 영웅 호걸들의 사자후를 세월로 받아낸 지리산의 품 안에 있으니 무엇이 두렵겠는가?

무엇이 걱정이 되겠는가?


다음날 아침에 걷힌 운무 속에서 하나 둘 얼굴을 내미는 지리산 정상의 풍치는 장엄하기도 하다.

주변 360도 시야를 돌아봐도 저 멀리 끝까지 산들로 빼곡하게 도열한 모습들이 마치 주봉 천왕봉에게 아침 문안인사를 드리는 무리들로 보였다.

지척으로 보이는 다른 봉우리들과 저 멀리 음영으로만 감지되는 산들까지도 각자 백두대간의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같이 등산을 했던 장남들은 지금도 건강한 심신으로 즐겁게 생활하고 있기에 아마도 당시 지리산 정상에서 산자락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던 산신령님의 보살핌이 아닌가 생각한다.


신령님 이시어. 지금까지 잘 보살펴 주셨듯이 앞으로도 우리를 굽어 살펴 주소서.




智异山攀登


我不太记得是谁提议的,但据我所知,可能是表哥的提议。

当时双胞胎表哥是长子,我在我家是长子,同辈表侄也是长子,所以各自家里的长子们一致同意去智异山。

虽然看起来像是复杂的表亲关系,年龄差异很大,但年龄却都是同龄人。

表哥7岁上小学,我和表侄8岁上小学,和1年级前辈是同年级。

又名"长男们"。 不觉得是当时很有人气的组合名字吗?

虽然去过智异山边缘,但从未到达过山顶,是小学时期俗离山登山后首次登山的登山,因此愉快的等待和好奇心在起作用。

因为是利用暑假登山,所以3天2夜的睡眠和饮食相对来说比较容易。

计划乘坐大巴前往白武洞山脚,在天王峰顶用帐篷露营。

智异山1915米是"民族之母"一样的山,它承载着韩民族的喜悦和悲伤,智虽然写成"异山智异山",但被称为"智异山"。 李重焕在《择里志》中写道:"智异山是白头山大结局的地方,山的另一个名称是头流山头流山。 民间把金刚山称为蓬萊山、蓬莱山,智异山称为方丈山、方丈山,汉拿山称为瀛洲山、荣州山,这就是所谓的三神山、三神山。"

白头大干的大尽头。

后来我从白头山山顶俯瞰天地,承载着民族的气息,据说那里是白头大干的出发点,智异山是白头山大结局的地方,虽然省略了中间阶段,但起点和终点都算是脚踏实地了。

当时99%的帐篷在山上住宿。 把吃住用品都背在背包里,现在想想,因为年轻好,所以这是可能的事情。

如果让现在的学生背着约20公斤左右的背包爬山,不知他们是否同意,但当时大家都知道是这样,所以不需要什么理由。

一想到平时不会运动的我盲目地登上智异山顶峰,就有点担心。

下车后,看着谁带来的手帕地图查看登山路线,发现这是白武洞接近山顶的路线中最快的选择。 事实上,在山上的3天2夜,根据想法不同,会感觉很短或很长。

现在搜索后发现,白武洞溪谷有庆南咸阳郡和山清郡两条路线,但记不清去了哪里。

但是年轻是一个让人心动的词语,无论何时何地,都不用事先害怕和担心,这分明是年轻的特权,不是吗?

慢慢地,在赛道入口处开始了登山预热。

中间休息时感受到的路线的讲台可能是因为选择了缩短路线,几乎都是上坡的延续,但是那个时期没有登山鞋或其他装备,运动鞋背着沉重的背包移动的距离反复出现,多少有些无聊。

只是我在小学时期,在母亲的劝说下进行童子军活动,平时几乎感觉不到野营的负担,觉得和长子的亲戚们久违地在智异山登山。

如果不是学生时代,什么时候还能在智异山野营,攀登山顶呢?

一步一步地想着埋在智异山的传说们上山了。

边休息边爬了半天,到处都能看到传说中的里程碑。

终于到达山顶后,被白色的云雾遮挡,看不到脚下的群山,首先,来到山顶的喜悦和安心涌上心头。 简单准备晚饭后睡了一觉,在铺着帐篷睡觉的山脚下感受到了山神的气息。 是梦还是幻觉?

山顶上平坦的地形很多,搭帐篷没有困难,露营的人群比想象的要多。

这些年轻人为什么会走到山顶呢?

夜空中的星星太多,眼睛睁不开。 睁大眼睛的话,星星们好像要掉进雪里了。

人类在生活中想要登上顶峰的社会欲望和矛盾,一旦登上山顶,就会发现他们执着于虚欲。 如果将虚欲定义为"虚无的欲望",那么我认为每件事都是用欲望和热情走最好的路,虽然走在这条路上,但过去一看,并不是很重要,而且我反省自己过于执着。

不是来到山里模仿道人,而是登山时,在大自然面前回顾自己是不是活不到100年,带着千年的苦恼生活,这是理所当然的道理。

在山顶上野营没有不好。 如果银河系里有外星人,那么在韩半岛我们最先看透,在海拔2公里的上空,感受着最顶级的空气呼吸,在号令韩半岛的无数英雄豪杰们的狮子吼岁月洗礼的智异山怀抱中,还有什么可害怕的呢?

何患无辞?

第二天早晨,智异山山顶的风景在云雾中一一露脸,显得十分庄严。

环顾周围的360度视野,远远望去,群山密密麻麻排成一排的样子,仿佛是给主峰天王峰问好的一群人。

近在咫尺的其他山峰和远处只能用阴影感知到的群山也各自占据了白头大干的位置。

一起登山的长子们现在也以健康的身心愉快地生活着,所以我认为这可能是当时在智异山山顶上守护我们的山神灵的照顾。

神灵啊。 就像您一直以来的照顾一样,以后也请多多关照我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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