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 인생의 한 과정이 마무리가 되었다.
학생에서 교육생으로 그리고 사회인으로 탄생하는 날이다.
교육생이었던 계란 속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듯한 뿌듯함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보면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우리가 막 그 알을 깨고 나온 것이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석 달의 시간은 참으로 소중했고 아름다운 추억들로 가득하다.
어제까지 수료식 리허설을 잘 마무리했으니 영광스러운 순간의 주인공들인 우리들도 더욱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내빈들이 입장을 하고 우리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은 하나 둘 진행이 되어 갔다.
우리들이 준비하고 보여드린 수료식은 우리들이 더 이상 학생과 교육생이 아닌 정식 cabin crew가 되었음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역사적인 시간인 것이다.
준비한 행사의 종료를 알리는 촛불을 꺼내어 들고 작별의 노래가 나오는데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는 동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괜찮았는데 옆에서 남동기가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의 감정선이 건드려졌다.
저 밑바닥에 쌓여 있는 그동안의 회한과 기억들이 물 밀 듯이 올라왔다.
남동기의 서글픔은 이해를 하겠지만 내가 맘고생을 해도 몇 배는 더 한 것 같은데.
다 큰 남자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면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으나 내 기억으로 15명 남자 동기 중 최소한 10명은 조금이라도 울었던 것으로 안다.
울고 안 울고는 뭐가 중요하겠나 싶지만 당시 무대 위에서 잡고 있던 촛불이 만들어 준 특별한 회개의 분위기와 음악도 왜 그리 종교적인 의미로 들리는지 마치 눈물의 고해성사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공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먼저 눈물을 터트린다면 나머지는 연쇄적으로 눈물을 같이 흘릴 수 밖에 없는 감정의 공감대가 이미 잘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니 왠지 눈물을 흘려야 수료식이 잘 마무리가 될 것 같았던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 와중에 옆에 있던 남동기의 눈물을 보게 된 나도 감정이 올라오더니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눈물이라는 감정은 신기하게도 남이 나에게 또는 내가 남에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감염을 시킬 수 있는 감수성의 전염이 매우 높은 녀석이었다.
그렇게 아름답게 조금은 청승맞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하객들의 박수로 수료식 행사가 마무리가 되었고 촛불도 꺼지고 실내조명이 밝혀지자 다시 정상적인 심상으로 돌아오는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행사 후 만찬에서 옆에 있던 남동기한테 핀잔을 주었다.
“나는 별로 슬프지 않았는데 네가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고 나도 눈물이 나더라. 왜 울었냐?”
“나도 옆에 있는 여동기가 갑자기 훌쩍거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
눈물은 이렇게 대단한 연쇄효과를 불러온다.
한 명의 눈물은 대중의 눈물로 번져갈 수 있는 것처럼 아마도 웃음도 그러하리라.
앞으로는 눈물보다는 웃음으로 인생을 펼쳐 가리라.
어깨를 쭉 펴고 당당하게 살아라. 동기들아.
겨드랑이에 생겨 난 양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 보자꾸나.
나와 선배의 동거는 ‘회사 이야기 7편’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것이고.
드디어 교육을 마친 동기들이 둥지를 튼 곳은 방화동 사거리에서 공항방향 건물로 일명 방화동 건물이다. 우리는 방화동 사무실 기준으로 주변에 거점을 확보하였다.
나와 같이 지방에서 올라온 동기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방화동 주변의 빌라나 아파트 또는 옥탑방 등에 거처를 정했고 시간이 되면 사거리에 있는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나누며 일상의 피로를 풀었다.
이 호프집은 약 1년 반 후 와이프에게 교제의 출발점을 알리는 장소가 되는데 이 추억은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다. 아직 이야기 전개 시점이 무르익지 않았다.
팔도에서 모인 동기들은 방화동 주변에 포진되어 그해 겨울을 기점으로 황금기를 열어 간다.
우선 대표 주자 격인 나와 선배의 2인방을 시작으로 부산 출신 선배와 동기가 있었고 대구에서 온 동기 그리고 다양한 지역에서 모아진 여동기들이 적재적소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 후 몇 개월 간격으로 후배들이 추가로 보강되면서 찬란한 방화동 시대의 꽃을 피운다.
추산하자면 입사 첫 해 겨울 방화동에는 약 50명이 넘는 젊음들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꾸준하게 증가를 했을 테니 최대 인원 시점으로 보자면 100명 이상의 동료들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훗날 가양동 시대가 열리면서 다양한 지역으로 재분포가 이루어졌겠지만 말이다.
방화동 시대의 서막은 우리 동기들이 중심이 되어 열어 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을 것이다.
향후 틈틈이 방화동 시대의 전설들을 소환하여 보도록 하겠다.
당신은 그 시절 방화동 시대를 경험했는가 아니면 들어는 보았는가?
我人生的一个过程终于结束了。
从学生到教育生再到社会人诞生的日子。
就像曾是教育生的鸡蛋里的小鸡孵蛋一样,让人感到欣慰和自豪。
从赫尔曼黑塞的德米安来看,有"鸟为了从蛋里出来而斗争"的说法,我们刚刚破壳而出。
回首过去的时光,三个月的时光非常珍贵,充满了美好的回忆。
到昨天为止,结业式彩排已经圆满结束,作为光荣瞬间的主人公,我们也同样感到紧张。
来宾们终于入场了,我们准备的节目一个接一个地进行了。
我们准备并展示的结业式是向全世界宣布我们不再是学生和教育生,而是正式成为cabin crew的历史性时间。
拿出宣告准备的活动结束的蜡烛,播放着离别的歌曲,到处开始看到流泪的同期们。 当时我还好好的,但是看到南东基在旁边抹眼泪的瞬间,我的感情线就触动了。
堆积在底层的悔恨和记忆像潮水一样涌上心头。
虽然可以理解南东基的悲伤,但是即使我心里很辛苦,好像也多出了几倍。
如果说已经长大了的男人流下了眼泪,也许有人不相信,但据我所知,15名男同学中至少有10人哭过。
虽然不知道哭不哭有什么重要的,但当时在舞台上点燃的蜡烛营造的特别悔改氛围和音乐为什么听起来如此宗教意义,似乎在制造一种不得不流泪告解圣事的空气。 如果某人先流泪,剩下的只能连环流泪的感情共鸣已经形成得很好。 现在回想起来,感觉只有流泪才能顺利结束结业典礼。
在这种情况下,看到旁边的南东基的眼泪,我的感情也涌上心头,无法控制眼泪。
眼泪这种感情神奇的是,只要别人看到我或我给别人看,就能让人感染的感性传染性非常高的家伙。
就这样美丽地流着凄惨的眼泪,在宾客们的掌声中结业式活动结束了,蜡烛也熄灭了,室内照明点亮后,重新恢复正常的心态并不需要太长的时间。
在活动结束后的晚宴上,他责备了旁边的男同学。
"我不怎么伤心,但看到你抹眼泪,我也流下了眼泪。 为什么哭?"
"我旁边的女同学突然抽泣起来,不由自主地流下了眼泪。"
眼泪会带来如此巨大的连锁效应。
就像一个人的眼泪会变成大众的眼泪一样,也许笑容也是如此。
今后,比起眼泪,更应该用笑容展开人生。
挺起胸膛堂堂正正地活着。 同学们。
就像腋下长出来的羊,展翅飞翔吧。
我和前辈同居,看《公司故事第七篇》就能理解了。
终于结束教育的同期们安营扎寨的地方是傍花洞十字路口往机场方向的建筑,又名傍花洞建筑。 我们以防火洞办公室为准,在周边确保了据点。
和我一样从地方赶来的同学们在傍花洞周边的别墅、公寓、阁楼等地安家落户,有时间就在十字路口的啤酒屋喝扎啤,缓解日常的疲劳。
约1年半后,这家啤酒屋将成为告知妻子交往起点的场所,这段回忆将在下次再谈。 故事展开的时间还不成熟。
从八道聚集的同期们分布在傍花洞周围,以当年冬天为起点开启了黄金期。
首先,从代表候选人我和前辈的2人帮开始,与釜山出身的前辈有动机,还有从大邱来的动机,还有从各地区聚集的女动机,都安排在合适的位置上。
此后,每隔几个月就会有后辈们补充完善,从而绽放出灿烂的傍花洞时代之花。
据推算,入职第一年冬天,傍花洞约有50多名年轻人,之后也会持续增加,从最大人数来看,估计有100名以上的同事。 后来随着加阳洞时代的到来,重新分布到了多个地区。
纵火洞时代的序幕以我们的同期为中心拉开也不为过。
以后我会抽空去召唤芳华洞时代的传说。
你在那个年代经历过防火洞时代还是听说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