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廣州 故事 8

by 제이킴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추억


광조우 생활에서 장인어른장모님의 체류기간은 우리 가족들에게 많은 추억을 남겼다.

하루는 서예가 이자 동양화가인 장인어른이 한 중국화가의 화첩을 보시더니 이 화가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화첩에 있는 전화로 연락을 해서 한국에서 온 장인어른이 한 번 만나고 싶다고 전하자 자기 화실로 오라는 것이다. 너무 순조로운 진행에 나도 와이프도 다행으로 여겼고 무엇보다 장인어른이 제일 기뻐하셨다. 물론 장모님도 남편의 기쁨에 한결같은 웃음으로 화답하셨다.

다음날 화가가 알려준 주소인 광조우에서 그리 멀지 않은 番禺판위에 있는 화실로 택시를 타고 찾아갔다.

예고된 방문이었으나 자칫 실례가 될까 봐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는데 반갑게 맞이하는 남성 화가와 같이 있던 여성 화가의 자태도 훌륭했고 다른 중국인 일행들이 몇 명 더 있었다.

아마도 한국에서 온 방문객이 일부러 찾아온다고 하면서 주변에 있던 중국인 화가와 서예가 지인들을 일부러 불러 들인 모양이었다.

내가 중간에 통역을 하면서 한국에서 온 배경과 당신의 그림이 좋아서 연락을 했다고 하자 외국에서 온 손님이 자기를 알아보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온 것에 대한 감사를 뜻을 표했다.

그렇게 서로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상견례를 마쳤고 잠시 후 지필묵을 준비하더니 명함을 주고받는 것처럼 각자가 서예로 글씨를 써 내려갔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글씨를 마치 기념품을 전달하 듯 건네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세상에는 이렇게 높은 경지에 속하는 만남의 교류가 있음을 처음으로 느꼈었다.

나는 처음 보는 품격에 매료가 되었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방식에 이렇게 고매한 수준이 있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글씨를 써서 교환하는 그 눈빛과 표정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이후에도 반가운 교류가 몇 번 있었고 같이 술자리도 함께 하면서 오래된 친구처럼 흉금이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얼마 후 여 화가가 와이프를 그렸다면서 멋진 그림을 선물로 선사해 주었는데 화가의 눈에 비친 와이프의 그림을 보며 또 다른 감탄이 흘러나왔다.

예술이라는 것이 이렇구나.

무지몽매한 나의 수준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만남과 교류를 통해서 나의 예술적 시각과 이해를 한 단계 올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오후 장인어른이 흡족해 하시던 당신의 표정을 그 이후에도 잊을 수가 없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영준 광조우소연그림.png


儒敎유교


중국은 예로부터 성적인 표현이나 공감대를 형성 수준이 우리나라보다는 개방적인 측면이 있다.

성적 기준으로 폄하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개인적인 느낌이니 개인 차가 있다면 널리 양해하시고 그냥 넘어가시라.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가 더 폐쇄적인 유교 관점으로 여인들의 삶을 남성 위주의 기준으로 올가미를 씌워 놓은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부터 사회문화의 강한 기준이 된 유교 사상의 영향이라고 판단된다.

儒敎유교는 孔子공자 사상을 정리한 중국 대표 사상인데 조선시대가 열리면서 崇儒抑佛숭유억불로 우리나라 근간을 이루는 사상이 되어버린 이후 아직까지도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仁인,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실현 목표로 윤리/정치의 기준으로 수천 년 동안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했다.

지금 중국은 오히려 여성 권리 확대를 통하여 세상의 반을 점유하며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여성인력의 사회 참여 수준은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활발하다.

공산당의 횃불이 꺼질 수도 있었던 위기의 순간에 여성들의 단합된 역량을 보고 감화를 받은 공산당 주축들은 그 후 공산당이 집권한 후 전족이나 축첩제도 등 여성인권 억압의 잔재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여성들이 떳떳하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명분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모택동 주석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모택동 동지는 이래저래 영웅호걸임이 틀림없다.

모택동의 과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다양하다. 하지만 등소평의 언급에 다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過과는 있었지만 功공이 더 많다.”

역시 영웅다운 표현이었고 참 영웅영웅을 알아본다.

모택동과 등소평의 전설은 틈틈이 추억의 일기에 올려볼 계획이다.



岳父和岳母的回忆


在广州生活中,岳父岳母的逗留时间给我们家人留下了很多回忆。

一天,书法家、东洋画家岳父看了某中国画家的画册,说想见见这位画家。

用画册上的电话联系了从韩国来的岳父说想见一面后,他让他来自己的画室。 主持得太顺利了,我和妻子都觉得很庆幸,最重要的是岳父大人最开心。 当然岳母也对丈夫的喜悦以一致的笑容回应。

次日,我乘出租车前往距离画家告知的地址广州不远处的番禺板块的画室。

虽然是预告的访问,但担心稍有不慎就会失礼,小心翼翼地走进里面,高兴地迎接的男画家和同行的女画家的姿态也很棒,还有几名其他中国人。

可能是说从韩国来的访客故意找上门来,故意叫来了周围的中国画家和书法家的熟人。

我在中间翻译的时候说,因为喜欢来自韩国的背景和你的画,所以联系了他,对外国客人认出自己并不远万里赶来表示感谢。

就这样,在和气融融的气氛中结束了相见礼,稍后准备了纸笔墨,就像交换名片一样,各自用书法写字,看着把自己的字像传达纪念品一样递给对方的场面,第一次感受到世界上有属于如此高境界的相遇交流。

我第一次见到的品格让我着迷,我才明白彼此相识的方式竟然有如此高尚的水平。

那些写字交换的眼神和表情还历历在目。

之后也有过几次愉快的交流,还一起喝酒,形成了像老朋友一样没有胸怀的氛围。 不久后,女画家说画了妻子,并赠送了漂亮的画作作为礼物,看到画家眼中的妻子的画,又发出了另一种感叹。

原来艺术就是这样啊。

这是对我愚昧无知的水平敲响警钟的事件。

之后通过多次见面和交流,成为了提升我艺术视角和理解的契机。

那天下午岳父满意的你的表情之后也忘不了。

真是美好的回忆。


儒教


中国自古以来在性表现和形成共识的水平上比韩国开放。

不是想以成绩为标准贬低,而是我个人的感觉,如果有个人差异,请多多谅解,就这样放过吧。

事实上,从某种角度来看,韩国以更加封闭的儒教观点,以男性为主的标准给女性生活设上了圈套。

据判断,这是受从朝鲜时代开始成为社会文化强烈标准的儒教思想的影响。

儒教儒教是整理孔子孔子思想的中国代表思想,随着朝鲜时代的到来,成为崇儒抑佛崇儒抑佛形成我国根基的思想后,至今在我们的生活中一直保持着存在感。 以仁人、修身齊家治国平天下、修身齐家治国平天下为目标,以伦理/政治为标准,统治了中国、韩国、日本等东方思想数千年。

现在中国反而通过扩大女性权利,占据着半个世界,积极展开社会活动。

女性人力的社会参与水平是韩国无法比拟的,非常活跃。

在共产党火把有可能熄灭的危机时刻,看到女性团结的力量后受到感动的共产党主轴们,在共产党执政后果断地整理了缠足或庆典制度等压迫女性人权的残余,为女性堂堂正正地走出世界提供了名分和支援。

我觉得毛泽东主席起到了决定性影响。 毛泽东同志这样那样都是英雄好汉。

后世对毛泽东的功过评价不一。 但是邓小平的话似乎都包含在内。

"虽然和過在一起,但功的功劳更大。"

不愧是英雄的表现,真正的英雄能认出陈英雄。

毛泽东和邓小平的传说将一有空就上传到回忆的日记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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