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이 11살까지 결핵약을 먹으며 1년에 1-2차례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도 받고 투병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비활동성 결핵으로 판단되는데 만약 활동성이었다면 나와 다른 가족들도 함께 걸렸을 것이 아닌가?
어머니 자신도 같이 투병생활을 하는 마음으로 딸의 무사함을 기원하며 옆에서 지켜보았을 것인데 그 과정이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여동생은 국민학교에 입학한 후 예전에 살던 한옥 집 건너편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와 피아노를 모두 잘하는 아이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당시 어머니의 삶 속에는 딸의 기나긴 투병생활과 아버지 친구들의 잦은 방문에 많이 지쳐 있을 법도 한데 슬기롭게 대처하신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여인은 약할 수 있지만 어머니는 자식들 앞에서 그 누구보다 더 강할 수 있는 것이리라.
여동생은 어머니의 정성대로 학업과 피아노에 큰 자랑거리가 되었고 오랫동안 집안을 대표하는 모범생으로 부모님에게 많은 기쁨과 행복을 드렸다.
효도는 다양한 방법으로 부모님에게 기억될 수 있다.
반드시 공부가 모든 것은 상징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효도의 덕목으로 들어간다.
공부를 잘하는 자식을 원망하는 부모는 지금까지 보지를 못했으니 말이다.
우리 아이들도 잘 커주었는데 이 또한 큰 기쁨이고 나에게는작지 않은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잘 컸다는 표현 안에는 아름다운 의미가 모두 녹아져 들어있는데 참으로 잘 커 주었다.
결국 어머니 입장에서는 양념 딸이 잘 커 준 것이었다.
어머니가 살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여동생을 잘 건사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자식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은 허튼 말이 아닐 진데.
나는 중1 시절 크리스마스를 병원에서 지냈던 기억이 있다.
전날까지 멀쩡하던 내가 다음 날 학교에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자체 판단으로 담임선생님께 말하고 조퇴한 적이 있었다.
병원에 갔더니 급성 간염이라고 해서 5일 정도 입원해 있었는데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평생의 교훈을 얻었던 경험이다.
체육시간에 축구를 하던 전 날 까지만 해도 전혀 증상이 없다가 다음날 갑자기 호흡곤란과 비상식적인 피로감으로 교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사람은 그렇게 예기치 못한 파도가 뜸하게 한 번씩 올 때가 있는데 당황스러움을 줄이고 슬기롭게 기다리며 대처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고 보니 남동생은 입원이나 투병의 경험이 없었던 것 같다.
다행히 한 명은 건강하게 성장하여 학창 시절을 농구선수로 활약하면서 부모님에겐건강한 유전자의 상징으로 남았다.
내 아이들도 윗대의 우수한 유전자와 처가의 튼튼한 유전자까지 합쳐져서 지금까지 별다른 이상신호 없이 잘 커가고 있으니 이 또한 행운이고 복인 것이다.
인생에 건강만큼 중요한 덕목이 어디 있겠는가?
첫째는 입대 전 1박 2일 속리산 등반을 통하여 확인된 건실한 청년의 모습은 아비의 입장에서듬직함으로 남아있으며 둘째와 3년 전부터 시작한 호수공원 주말 달리기는 평생의 좋은 추억으로이어가고 있다. 이처럼행복한 기운들이 내 주변에 모여 있으니 자랑스럽고 아이들의 앞날에 좋은 자양분과 기억으로 남아서 자기 속한 사회 영역의 건강한 인력으로 자라나 주기를 기원한다.
또한 나는 작은 소원이 하나 있다.
내 아이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는 것을 보고 싶다.
너무 과한 욕심이라고 여겨지는가? 요즘 장수하는 추세를 보면 그리 힘들어 보이지도 않는다.
내가 60살 전후로 할아버지가 된다면 그다음엔 90살전후로 내 아이들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될 수 있으니말이다. 내가 90살 시절이 되면 의료기술의 발달로 그리 장수한 측에 못 낄지도 모른다.
내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내 아이들이 한 5년 안에 누군가는 결혼해서 손주를 볼 수도 있으니 결국두 분의 입장에서는 자식인 내가 할아버지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인데 정말 불가능한 바램이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