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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일기 : 회사 이야기 18

by 제이킴

초년병 타짜들


아무래도 지방에서 올라온 총각들의 일상생활은 다소 건조하다.

가족들 없이 혼자 또는 둘이서 지내다 보면 주변 동료들과 여가나 음주를 같이 하게 된다.

여가라는 개념은 퇴근 후 남는 시간에 모여서 무엇을 같이 한다는 것인데 그 시절로 돌아가려면 몇몇의 선배와 같이 어울리던 동기들이 먼저 등장해야 이야기가 돌아간다.

입사 후 교육을 마치자 늦여름이 왔고 가을이 되었다.

근무하기 딱 좋았던 그 시절. 아니 뭐를 해도 싱그러웠을 푸른 젊음들.


일단 스케줄 근무의 특성상 중간중간에 비는 시간들은 개인 취미활동을 하거나 이웃에 사는 동료들과 어울리게 되는데 같이 동거하던 선배도 음주가무에 흥미가 없어서인지 고스톱을 즐기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고스톱은 어릴 적 불친들과 어울려서 함께 했던 심심풀이 킬링타임용이었지만 사회인이 되어서는 작은 판돈이 걸리기 마련이다.

때로는 식전에 때로는 날을 새기도 했고 삼삼오오 같이 모여서 딴 돈으로 중국음식을 시켜 먹던 재미가 솔솔했다.


당시 같이 어울렸던 대표적인 2인실 동료로는 나와 김 선배, 그리고 다른 동기와 황 선배가 있었다.

물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간만 맞으면 주변에 같이 할 선수들이 많아서 인력풀이 작동하던 시절 이야기다.

옥탑방에 살던 대구 사나이, 누나랑 같이 살던 부산 사나이가 생각이 나고 서울이 집이지만 곧잘 함께 어울렸던 여러 동기들은 이모저모로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음주계 쪽으로 탐닉하던 동기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같이 어울리던 선배들이 주류 쪽으로는 강점이 없었던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체대 출신 ROTC 동기들도 자주 어울렸고 근무투입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전직을 한 동기있었지만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았다.

시간이 되면 같이 교외로 바람을 쐬러 가기도 했다. 당시 자가용이 있었던 몇몇 동기들과 같이 움직이곤 했는데 우리들 사이에는 마치 대학생들처럼 신선함이 공존했다.


해가 바뀌고 입사 2년 차가 되자 다들 제법 노련함이 묻어나기 시작했고 후배들이 등장했다. 숙소 주변에 인력층이 두텁게 변하기 시작하면서 선후배 연결 원정 고스톱으로 더욱 활기를 찾았고 참가종목도 고스톱에서 카드로 다양한 선택의 변화가 있었다.

그때 활약하던 아마추어 타짜들은 지금은 어디서 손 맛을 보고 있으려나.



국내선 Lay-over


회사는 초창기 성격이 강해서 국제선은 일본 노선이 일부 운항을 시작하였고 신참인 우리들은 국내선 위주의 비행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부산과 제주에 막 비행기로 갔다가 조조 운항 편으로 첫 비행근무를 하게 되면 현지에서 1박 하는 근무 형태가 발생하였는데 이 또한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부산과 제주는 각각 체류 호텔의 특색이 있었다.

부산은 코모도, 제주는 그랜드. 코모도는 한식과 일식이 섞인 느낌이라면 그랜드는 신축된 건물로 양식의 분위기가 강했다.

부산에 가면 늦은 뷔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시간도 다소 늦어서 손님들도 없는 데다가 다양한 먹거리로 과식을 하곤 했다.

먹성 좋은 젊은 시절에 코모도의 다양한 뷔페는 식탐의 길로 나를 제대로 유혹했다.


제주는 옥돔 정식이 생각난다. 지금도 흔하지 않은 생선이지만 당시에는 먹어 보지 못했던 생선으로 노릇하게 구워진 게 별미였다.

운좋게 동기들과 같은 날 투숙하게 되면 서로 연락해서 근처 산책을 가거나 가벼운 음주 활동도 하게 되는데 그 시절 다양한 선후배의 근무형태 조합으로 동기들끼리 같은 호텔에 투숙하기는 그리 높은 확률은 아니었다.


밤길을 싸복싸복 걷던 그 호젓함은 참으로 좋았다.




新兵赌徒们


从外地来的单身汉们的日常生活多少有些枯燥。

没有家人,独自一人或两人生活,就会和周围的同事一起度过闲暇时光或喝酒。

所谓闲暇的概念,就是下班后剩余的时间聚在一起做些什么,要回到那个时代,必须先有几位前辈和一起玩的同期出场,故事才能展开。

入职后培训结束,晚夏来临,秋天到了。

那个正适合工作的时代。不,无论做什么都清新的青春岁月。

首先,由于轮班工作的特性,中间空闲的时间会进行个人爱好活动或与住在附近的同事们聚在一起,可能是因为一起同居的前辈对饮酒歌舞没有兴趣,我们开始玩起了花牌(韩国传统纸牌游戏)。

就我个人而言,花牌是小时候和朋友们一起玩的消遣娱乐,但成为社会人之后,难免会有小额赌注。

有时在饭前,有时通宵达旦,三三两两聚在一起,用赢来的钱叫中餐吃,那种乐趣悠然而生。

当时一起玩的代表性双人房同事有我和金前辈,以及另一位同期和黄前辈。

当然,不分先后,只要时间合适,周围有很多一起玩的选手,那是人力资源池运转的时代的故事。

想起了住在阁楼的大邱男子、和姐姐一起住的釜山男子,虽然家在首尔但经常一起玩的几位同期们,从各方面成为了可靠的战友。

现在想来,好像没有沉迷于饮酒的同期,可能最大的原因是一起玩的前辈们在酒方面没有强项。

体育大学出身的ROTC同期们也经常聚在一起,虽然有投入工作后不久就转职的同期,但从一开始就很合拍。

有时间就一起去郊外透气。当时和几位有私家车的同期一起活动,我们之间像大学生一样充满了新鲜感。

年份更替,入职第二年,大家都开始显得相当老练,后辈们登场了。随着宿舍周边人力层变厚,通过前后辈连接的远征花牌更加活跃,参加项目也从花牌变成了扑克牌等多样的选择。

当时活跃的业余赌徒们,现在在哪里感受着手感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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