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대학 이야기 1

by 제이킴

중국어 입문


중문학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실력 부족과 막내 외삼촌의 영향이었다.

학력고사(지금의 수능) 성적이 좋지 않아서 선택할 수 있는 학과가 많지 않았고 내신도 신통치 않았다. 12월에 학력고사를 마쳤고 다음 해 1월에 합격자 발표와 대입 전까지 기나긴 선택과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졌다. 중문학과를 응시하고 떨어지면 재수하기로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기에 추운 겨울이 더 춥게 느껴졌다.

다행히도 합격통지를 받고 대학 입학 전 겨울방학 동안 예전 외삼촌이 중국말을 배웠다던 중국집에서 나도 중국말을 배우는 것이 좋겠다는 아버지의 제안에 흔쾌히 따르면서 갑자기 생동감 있는 겨울로 바뀌었다. 덕분에 입학 전 중국어 기초를 다질 수 있었고 배달도 하고 홀써빙도 하면서 좋은 경험을 쌓았다.

주로 수업은 점심과 저녁 사이 시간에 손님이 뜸할 때 식탁에서 중국어 ABC를 배웠는데 내가 아주머니를 따라 하는 운율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아주머니가 A 하면 내가 큰 소리로 따라서 A, 아주머니가 B 하면 내가 따라서 B 하는 순서인데 별다른 음역의 높낮이가 없었지만 내가 무의식적으로 만든 음률이 생겨서 자음과 모음을 읽을 때 높낮이가 생겼고 특유의 리듬감이 유지되곤 했다.

특히 장남이자 첫째인 형하고 함께 당구도 치고 잘 어울려 지냈었는데 당시 한의학을 공부하였으니 아마도 지금은 나이가 지긋한 한의사로 활동하고 계실 것이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건강한 노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나보다 나이가 어렸던 딸들도 나에게 잘 대해 주었는데 다들 시집들은 갔는지 궁금하다. 내가 입대 전 경주로 이사를 가셨는데 기회가 되면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시춘 형님. 훗날 뵙게 되면 게임비 내기 당구 한 번 하시죠?”


중국 음식


중국어 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주방에 들어가 주방 형이 정리하다가 남은 음식을 맛보곤 했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특히 아저씨의 솜씨가 정말 좋으셨는데 ‘달인의 맛’이라고나 할까?

음식 맛의 강약이 절묘했고 특히 짬뽕 국물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좋은 식재료와 장인의 솜씨가 만나서 최상위 경지의 맛을 선사하였고 특히, 갓 뽑은 뜨끈한 면발을 찬물에 적셔 식혀 먹으면 입안에서 탄력이 느껴지고 쫄깃한 식감은 정말 예술이다.

중국 음식은 이름에 재료나 조리방식이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기로 끝나는 음식은 닭고기가 들어가는데 계鷄의 북경어 발음은 ‘지’로 나지만 산둥성 방언인 ‘기’로 발음이 굳어진 영향이다.

어쩌다가 요리를 시킨 손님들 중에는 별로 먹지 않고 남기는 경우가 많아서 주방 형과 퇴근 시점에 고량주로 만찬을 즐기곤 했다. 탕수육은 기본이고 고추잡채, 유린기, 깐풍기, 난자완스, 팔보채, 유산슬, 탕수 도미, 간소 새우…

참으로 미천한 나의 입이 호사를 누리던 시절이다.


韓美학원


입학 전 겨울방학.

중국어에 대한 나의 열망은 식지가 않아서 중국어 학원이 있는지 수소문을 하였더니 시내에 한미 외국어학원이 있었다. 무림에 나서는 검객처럼 나의 중국어 실력을 살피려 강호에 나와야 했다.

중국어는 주음부호注音符號를 사용해서 발음을 하기 때문에 주음부호를 먼저 암기를 해야 했는데 나는 이미 마스터를 했고 기초 회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월 초 외가에 놀러 갔다가 오늘이 2월 강의 신청 마감일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떠 올랐다.

경황없이 할아버지한테 1달분 학원비를 지원하여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할아버지는 바로 학원비를 건네주셨다. 할아버지한테 왜 학원비를 달라고 그랬는지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외가에서 학원에 갈 시간이 다가오자 조급해진 심리상태 가운데 할아버지를 만났고 만난 김에 부탁을 드렸던 것 같은데 할아버지는 흔쾌하게 지원을 해 주셨다.

기쁜 마음에 학원비를 들고 학원에 등록하고 수업을 들으러 수강실로 들어갔다.

선생님과 학생인 나 포함해서 4명이 있었다. 단출한 분위기에서 수업은 시작되고 서로의 소개를 마쳤다. 그런데 귀여운 여학생 1명이 나와 같은 학번이며 곧 3월이 되면 같은 과에서 배운다는 것이다.

나보다 부지런한 학생이 더 있었구나. 신선한 충격이었고 중국말을 하는데 나보다 체계적인 수준이 느껴졌다. 선생님이 나에게 중국어로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해서 간단한 중국어로 수줍게 했는데 그 여학생은 순서가 되자 당당한 중국어로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심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니 그동안 내가 배운 중국어는 뭐지? 내가 게으른 학생이었나?

잠시 후 교재의 본문을 읽어 가는데 조금 전 소개 시간에서 여학생에게 받은 충격으로 수업이 집중이 되지를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원인을 살폈더니 나는 중국에 대한 삶과 문화를 먼저 접했던 것이고 여학생은 중국말을 먼저 배웠다는 결론이 났다. 나름 합리적인 결론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바람직한 경쟁심이 생겼다. 여학생보다는 잘해 보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예습/복습을 하기 시작했다. 한 보름이 지나자 서로의 내공이 얇아서 그런지 ‘도토리 키 재기’처럼 알콩달콩 중국어 실력이 쌓여 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3월 초 입학.

졸업정원제의 영향으로 학과들은 최대 수용 가능한 인원들로 넘쳐났고 이름의 가나다라 순으로 반을 정하는데 나는 A반, 여학생 B반으로 나뉘면서 현실적인 공간이 분리되자 내가 정한 경쟁심이 무디어 갔다. 그래도 명색이 중국어 중문학과인데 여기서 그만둘 수도 없었고 그만 둘 이유가 없었다.

왜냐구? 중국어가 너무 재미있었다.

나에게 외국어에 대한 첫 경험은 초6 때 ‘What’s your name?’

고1 때 ‘Guten Morgen’

그다음이 ‘你好吗?’

하루하루 배우는 단어와 숙어들이 귀에 들어오고 머리에 입력이 되었다. 1학기가 끝나가는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아! 이 정도면 중국에 가서도 굶지는 않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중국어 구사 수준이 높았던 것이 아니라 당황하지 않고 마음의 경계를 풀 수 있는 심리적인 여유가 생긴 것이다. 외국어의 처음 진입은 ‘원어민에 대한 두려움 깨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자신의 노력과 시대적인 분위기를 잘 만나서 학원의 중국어반은 수강생이 점점 늘어났고 2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전문 중국어 학원인 중산中山 학원을 차리셨다.

개업식을 한다고 갔더니 맥주와 중국 음식들로 잔치가 벌어졌다.

학생에게 병맥주는 호사의 상징이던 시절이었고 중국 음식은 상상도 못 하던 중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중국 음식은 학원 근처에 있던 선생님 본가에서 날아온 요리들인데 맛이 굉장했다. 나름 술에 대한 욕심은 있어 가지고 언제 다시 병맥주와 요리로 배를 채울 수 있겠냐는 심산도 있었지만 이런 날은 하객들이 배불리 먹어줘야 학원이 더욱 번성한다는 장 선생님의 덕담에 귀를 기울여서 병맥주와 고급요리들로 거나하게 취했던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단어장


2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중국어 기초를 잡아 놓자는 계획을 세웠다.

주변에 있던 요약 사전을 집어 들고 나 자신을 위한 단어장을 만들기로 했다.

사전의 페이지 수와 방학 잔여일을 감안해보니 가능성이 있는 도전으로 결론이 났다.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실천으로 들어갔다.

사전은 약 4백 페이지 방학 잔여일은 45일. 하루에 10페이지를 목표로 정진하면 되겠다.

도중에 사정이 있어서 단어 정리를 못하거나 술 마신다고 게으름을 피울 수 있을 일자도 계산해 넣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2시간 걸리는 작업이 1시간 반, 1 시간대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단어만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분류 반, 암기 반 형식으로 유지했다.

잔여 일이 15일 남았는데 목표량 대비 80%를 달성했다.

일정보다 초과 달성한 기쁨과 끝에 다가서는 짜릿함이 공존했다.

이번 작업을 통해서 나도 작심하면 힘든 일도 할 수 있고 최소한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

드디어 방학 종료 5일을 앞두고 단어장 마무리가 끝났다.

내 인생의 큰 보람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큰 성취였다.


고래의 춤


중산 학원 개원 후 중국과 관계 개선을 통한 수교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일반인들도 중국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가을에 들어서자 학원 수강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장張立山 선생님 혼자는 무리였는데 어느 날 여(許美珍) 선생님이 오신 단다.

남학생이라고 여 선생님이 오신다니까 사실 내가 더 기다려졌다.

드디어 여 선생님과 첫 수업을 하는데 어릴 적 인기 있었던 미드 ‘소머즈’ 여 주인공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이 또한 중국어에 더욱 열중하는 계기가 되었고 방학 동안 준비했던 단어장 효과와 여 선생님에 대한 호감이 시너지를 일으켜 나 자신의 중국어가 일취월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허 선생님의 칭찬을 받는 수업시간이 많아지면서 다소 우쭐거렸던 것도 사실이다.

1년간 중국어에 집중을 했다고는 하지만 뭐 얼마나 대단한 실력이었겠는가?

동년 학생들과 비교하기에 그렇다는 차원이지 대단한 일도 아니었고 자기만족의 결과였다.

두 선생님의 격려와 관심 속에서 중국어에 점점 깊게 즐겁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더니 두 분 선생님들은 나를 중국어로 춤을 추게 만드셨다.



汉语入门


选择中文系的契机是实力不足和小舅舅的影响。

由于学历考试(现在的高考)成绩不好,可选择的专业不多,而且内审也不理想。 12月结束了学历考试,到第二年1月发表合格者和高考为止,经历了漫长的选择和等待的时间。 因为向父亲说了报考中文系,如果落榜就复读,所以觉得寒冷的冬天更冷。

幸好接到录取通知后,在大学入学前的寒假里,在以前舅舅学中文的中餐馆里,我也爽快地接受了父亲的建议,突然变成了生动的冬天。 得益于此,在入学前奠定了中文基础,还送外卖、包吃包住,积累了很好的经验。

上课主要是在中午和晚上时间,客人少的时候,在餐桌上学了中文ABC,一想到我模仿阿姨的韵律,就忍不住笑起来。 阿姨说A,我就跟着大声说A,阿姨说B,我就跟着说B,虽然没有什么音域的高低,但是因为有了我无意识制作的音律,读辅音和元音时就会出现高低,维持着特有的节奏感。

特别是和长子兼大哥一起打台球,相处得很好,当时学习了韩医学,现在大概是上了年纪的韩医师。

大叔和大婶也被刻画成健康的晚年模样。 比我年纪小的女儿们也对我很好,很好奇大家是否都嫁人了。 我在入伍前搬到了庆州,如果有机会,我想表示感谢。

"时春大哥。 以后见面的话,我们赌一次台球吧?"


中国菜


一边学习中文,一边抽空进入厨房,品尝厨房哥哥整理剩下的食物,味道真是绝了。 特别是大叔的手艺真的很好,可以说是'达人的味道'吧?

食物味道的强弱非常绝妙,特别是海鲜面的汤非常了不起。 好的食材和匠人的手艺相遇,带来了最高境界,特别是刚抽出来的热腾腾的面条,用凉水浸湿后冷却后食用的话,嘴里会感受到弹性,嚼劲十足的口感真是艺术。

中国菜的名字往往带有配料或烹饪方式的表述。 以" –"结尾的食物有鸡肉,桂鷄的北京话发音为"지",但山东省方言"기"发音变硬的影响。

偶尔点菜的客人中,不怎么吃就剩的情况较多,所以下班时经常和厨房哥哥一起喝高粱酒。 糖醋肉是基础,辣椒杂菜、油淋鸡、干烹鸡、鸡蛋丸、八宝菜、溜三丝、糖醋鲷、肝小虾……

真是卑微的我的嘴享受奢侈的时期。

韩美学院


入学前的寒假。

我对汉语的渴望没有减弱,于是打听了一下有没有汉语补习班,发现市内有韩美外国语补习班。 我就像武林里的剑客一样,为了考察我的汉语水平,不得不来到江湖。

因为中文是用注音符号注音符號发音的,注音符号需要先背诵,我觉得我已经掌握了,可以进行基础会话。

2月初去外婆家玩的时候,突然想到了今天是2月讲课申请的最后一天。

慌慌张张地跟爷爷说希望能资助一个月的补习费,爷爷马上交了补习费。 我不太记得为什么跟爷爷要补习班费。 可能是因为从外婆家去补习班的时间临近,在焦急的心理状态中遇到了爷爷,顺便拜托了爷爷,爷爷爽快地答应了。

喜气洋洋地拿着辅导班费,报了辅导班,走进听课室听课。

老师和学生包括我在内共有4个人。 在轻松的气氛中开始上课,结束了彼此的介绍。 但是,一名可爱的女学生和我同级,马上到3月份就会在同一系学习。

原来还有比我勤奋的学生啊。 这是一次新鲜的冲击,说中文时能感觉到比我更系统的水平。 老师让我用中文做自我介绍,所以用简单的中文害羞地做了自我介绍,那位女生到了顺序后,不是用堂堂正正的中文自信地说出来了吗?

内心受到了强烈的冲击。 不是,这段时间我学的中文是什么? 我是懒惰的学生吗?

稍后在读教材的课文时,由于刚才在介绍课上从女学生那里受到的冲击,上课无法集中。 回到家后,我观察了一下原因,得出了"我是先接触到了中国的生活和文化,而女学生是先学了中文"的结论。 也就是说,得出了合理的结论。

然后我产生了理想的竞争心。 比女生做得更好。

谁都没吩咐就预习/复习起来了。 过了半个月,可能是因为彼此的功底太薄,像"半斤八两"一样开始积累汉语实力。

终于在3月初入学。

受毕业定员制的影响,各专业挤满了最大可容纳的人员,按照名字的"甲"那达拉(音)的顺序分班,我分为A班、女生B班,现实空间被分离后,我定的竞争心变得迟钝。 但是名义上是中文系,不能就此罢手,也没有理由罢手。

为什么?中文很有意思。

对我而言,外语方面的第一次经验是小学6年级时的'What's your name?'

高一的时候 'Guten Morgen'

然后是'你好吗?'

一天一天学习的单词和熟语都传到了耳朵里,输入到了脑海里。 第一学期即将结束的暑假开始了,啊! 这种程度的话,产生了即使去中国也不会挨饿的自信感。

并不是说汉语水平高,而是有了不慌不忙地解除心理界限的心理上的从容。 外国语首次进入,我认为"打破对母语者的恐惧"是最重要的。

張老师遇到自己的努力和时代气息,学院汉语班的学员越来越多,在第二学期开始前创办了专门的汉语学院中山学院。

听说要举行开业典礼,结果啤酒和中国食物都举行了宴会。

对于学生来说,瓶装啤酒是奢侈的象征,大部分学生根本想象不到中国饮食。 中餐是从补习班附近的老师老家飞来的料理,味道非常棒。 虽然也有过对酒的欲望,什么时候才能用瓶装啤酒和料理填饱肚子,但是这样的日子里,倾听张老师的祝福,用瓶装啤酒和高级料理来填饱肚子,补习班才能更加繁荣,这是一次难得的经验。


词汇


计划在第二学期开始之前打好汉语基础。

我决定拿起周围的摘要词典,为自己制作单词本。

考虑到词典的页数和假期剩余日,得出了有可能的挑战结论。

毫不犹豫地径直付诸实践。

词典约400页,假期剩余日为45天,每天以10页为目标精进就可以了。

途中因故不能整理单词或因喝酒而偷懒的日期也计算在内。 刚开始一天需要2个小时的工作开始减少到1个半小时、1个多小时。

不是单纯地整理单词,而是维持了分类班、背诵班的形式。

还剩下15天,与目标量相比达到了80%。

超额完成的喜悦和接近尾声的刺激共存。

通过这次工作,我也学到了只要下定决心就能做艰难的事情,至少也能提高到可能的水平。

离放假结束还有5天,单词本终于结束了。

这是我人生的一大成就,将永远铭记在心。


鲸舞


中山学院开院后,通过改善与中国的关系,形成了建交氛围,普通人也对汉语的关注度也增加,进入秋天后,学院学员人数暴增。

张張立山老师一个人太勉强了,有一天許美珍老师要来。

因为是男学生,所以女老师要来,其实我更期待了。

终于和女老师上了第一堂课,散发出小时候人气很高的美剧《Somers》女主人公般的氛围。 这也成为了更加热衷于汉语的契机,假期里准备的单词本效果和对女老师的好感产生了协同效应,可以感受到自己的汉语正在日新月异。

随着受到许老师称赞的授课时间的增加,多少有些得意也是事实。

虽然说1年来一直专注于中文,但那该是多么了不起的实力啊?

只是与同龄学生相比,并不是什么了不起的事情,而是自我满足的结果。

在两位老师的鼓励和关心下,她开始越来越深沉、快乐地迷恋上中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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