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제대 후 중국어를 다시 제대로 배우기로 작심을 했다.
내년까지 11개월의 시간 여유가 생겼고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별로 고민이 되지 않았다. 제대 전 이미 해외여행이 자유화가 되어서 중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대만에 가는 것이 로망이었고 나 자신도 시기적으로 좋은 타이밍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 나도 대만에 가자.
제대 후 복학과 대만 중 나는 대만을 선택했다.
당시 우리 학과는 대만에 자매결연 학교가 있어서 일 년에 3명씩 교환학생 자격으로 이미 대만에 와 있는 동문들이 있었다. 소문에 들리기를 중국말도 배우고 생생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군 복무 여부가 걸림돌이 되었던 해외 어학연수는 올림픽 이후 완전 자유화가 되어서 여권도 바로 나온 단다.
제대 후 내가 집에서 허송세월을 할까 걱정하시는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신다. 3월 말 군 제대 후 서둘러서 수강신청을 하면 2년 만에 군 복무를 마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대만행을 결정하자 오히려 준비에 탄력이 생겼다.
4월 한 달 동안 어떻게 하면 대만에 빨리 갈 수 있을까 다각적인 노력 끝에 5월 말 준비를 마치고 외삼촌의 대만 출장기간과 겹치도록 항공권 예약/발권을 마무리하면서 출국일자가 잡혔다.
드디어 김포공항으로 이동을 위해서 집을 나섰다. 별말씀 없으신 어머니도 속으로 걱정을 하셨겠지만 국방의무를 방금 마친 예비역 휴학생에게는 거침없는 행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포공항에서 대만행 항공기 탑승 후 맛있는 기내식을 먹으면서 창 밖을 내려다보니 한반도를 벗어나 서해안을 향해 대만을 향해 서남진하고 있었다.
우하하. 예비역 병장이 이제는 대만을 향한다.
아. 거침없는 이 젊음이여.
외삼촌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겠다고 하는데 내가 굳이 오지 말라고 했다.
내가 혼자 찾아서 갈 수 있으니 주소만 알려 달라고 했다.
비행기에서 대만 입국서류를 작성하고 있는데 곧 착륙한다는 기내방송이 들린다.
창밖을 내려다보니 한국을 떠날 때 보이던 풍경과 새삼 다른 이국적인 자연 모습들은 내가 대만에 온 것을 상기시켜주었고 착륙 후 손님들은 입국 수속을 위하여 기다랗게 대기 줄을 만들었다.
비행기를 벗어나서 입국 수속을 하려고 줄을 섰는데 벌써 남방 아열대의 훈증이 나를 감싼다.
한국은 5월이 봄이지만 대만은 이미 한 여름이다. 목욕탕 열기처럼 아직 옷 벗을 준비가 덜 된 온몸을 습하게 적시기 시작한다.
내 차례가 되어 여권을 내밀자 입국수속 담당공무원이 나에게 입국 목적을 묻는다.
갑자기 정신이 멍멍 해진다. 여권에 입국도장만 찍어서 주는 줄 알고 느긋하게 있었는데 난데없는 입국 면접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 있게 나와야 하는 나의 중국어는 마치 불법입국자가 된 듯하고 자신 없는 목소리는 목 젓 저 아래편에서 웅얼거린다. 순식간에 머리가 하얗게 변하면서 중국어는 안 나오고 안 들리고 윙윙거리는 소음으로만 맴돈다.
뭐라고 했는지 모르게 얼버무려 대답하고 초록색 잉크가 덜 마른 입국도장이 찍힌 여권을 들고 입국장으로 들어서자 다른 손님들은 이미 시야에서 멀어지고 나만 걸어 나오는데 입국장 동선이 잘못되었는지 출구를 못 찾으면서 또 당황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지나가던 공무원이 나의 방황을 눈치채고 제대로 된 이동방향을 일러주었다.
드디어 짧은 시간 동안 한정된 공간을 오랫동안 길게 돌아 나오며 헤매던 나를 저 멀리 외삼촌이 손을 흔들며 나에게 구원의 싸인을 보낸다.
구세주가 따로 없었다. 지금 나에게 구세주는 외삼촌이다.
외삼촌에게 나의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명색이 중어중문학과 예비역이 여기서 주저할 수는 없었기에 애써 웃음을 지으며 삼촌한테 가는 데 처음 보는 아저씨가 삼촌이랑 서 있다. 그냥 삼촌 친구인가 생각하고 삼촌과 재회의 인사를 나누며 대기 중인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잠시 동안 대만식 열기에 노출되었다가 시원한 냉방 차량에 타자 언제 당황스러운 입국신고를 했는지 모르게 유쾌하지 않은 기억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삼촌이 같이 나온 아저씨한테 인사를 드리라고 한다.
“(아. 대만 아저씨이니 중국말로 인사를 하자) 당신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 이런 바보가 있나? 안녕하세요? 하면 될 것을 홍콩 무협영화나 전통사극의 대사도 아니고 영광은 무슨 영광이라고 했을까? 어설픈 나의 인사말은 이내 나를 또다시 긴장모드로 몰아가고 있었고 내가 뱉은 중국말 단어들은 이미 흩어져 떠나 버리자 아저씨가 뭐라고 하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입국 수속할 때는 대만 입국 첫 경험에 대한 긴장이라고 치더라도 지금 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간단한 대화도 못하는 나 자신을 살피면서 지금까지 배운 중국어는 다 어디로 간 걸까? 한국에 놓고 온 걸까? 갑자기 시원한 차 안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군 제대를 하면서 중국어를 함께 반납하고 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한국에서 온 예비역 학생을 묵묵히 바라보던 대만 아저씨는 나와 삼촌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갔다.
아담한 단독주택으로 나중에 알았지만 일반적인 장식과 가구들은 최소한의 심플한 스타일 있었는데 다소 과장된 장식으로 집 안을 꾸미는 한국과는 달리 소박하기까지 했다.
대만은 여성들, 특히 주부들도 직장을 다녀서 인지 당시 한국의 주부들과는 달리 가사를 돌보는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보통 아침은 간단하게 대만식 길거리 음식으로 해결하고 저녁은 집 근처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비중이 높았는데 아마도 외식하는 비용과 자기가 직접 조리해서 먹는 비용이 큰 차이가 나지 않아서 그랬을 것으로 판단된다.
일반 가정식 식당들은 주택가 요소요소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맛도 훌륭해서 마치 집에서 식사를 하지 말라며 가성비 좋은 식당으로 석식족들을 밤마다 유혹한다.
음식을 가리지 않기도 했지만 하루 종일 허세만 높았던 중국어로 시달림을 당한 나는 갑자기 식욕이 당겨서 평소보다 많이 먹었는데 그래서 타이베이의 첫 식사는 과식으로 기억된다.
삼촌을 따라서 삼촌이 묵고 있는 호텔 같은 모텔에 와서 여장을 풀고 임시 캠프로 자리를 잡았다.
사흘 정도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여정의 삼촌은 나와 함께 있는 동안 내 거처와 기본적인 안내를 하려고 사전 준비를 해 놓은 모양이다.
다음 날 대만대학교 정문 근처에 있는 2층 스테이크 전문점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삼촌은 덩치가 우람하고 젠틀맨 스타일의 아저씨에게 나를 잘 부탁한다며 소개를 시켜주었다.
어제 어리숙하게 인사 말을 떠듬거렸던 나는 마음속으로 준비한 인사말이 나오자 중국말에 대한 공포감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래 지금부터 잘하자.
삼촌은 나에게 오전에는 중국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식당에서 알바를 하는 게 좋겠다며 저녁식사도 해결할 겸 직원들과 중국어 복습도 할 수 있다고 적극 권유를 한다. 나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무엇보다 저녁식사를 고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나를 유인했다.
아저씨는 대만에 있는 동안 어려움이나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상의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삼촌은 식당에서 나와 내가 중국어 공부를 하기로 예정된 ‘국어일보 어학원’을 들려서 살펴보게 한 후 학원을 등록하고 예정된 내 숙소로 이동을 했다.
그리 가깝지도 멀지 않은 주택가로 데리고 갔는데 삼촌이 대만에서 유학할 때 알고 지내던 후배가 살고 있는데 빈 방이 있어서 미리 예약을 해 놓았다고 했다.
삼촌의 지인들과 상견례하고 숙소가 정해졌으니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어제 느낀 열기는 다소 누그러졌는지 그사이 적응이 된 것인지 호흡도 한결 부드럽다.
到明年爲止的11個月時間。沒有多少時間考慮如何度過這段時間。 退伍前已經實現了海外旅行自由化,學習中文的學生都向往去臺灣,我自己也覺得時機很好。
好吧,我也去臺灣吧。
退伍後的復學和臺灣中,我選擇了臺灣。
當時我們系在臺灣有姊妹學校,每年有3名以交換學生身份來臺灣的校友。 聽說還學了漢語,體驗了鮮活的語言。
海外語言研修曾經是是否服兵役的絆腳石,但奧運會之後完全自由化,護照也馬上出來了。
擔心退伍後我在家裏虛度光陰的父親用擔心的眼神看着我。 3月末退伍後,如果匆忙申請聽課,就能期待2年後結束軍隊服役的效果,但是當決定去臺灣後,反而在準備上有了速度感。
在4月份一個月的時間裏,經過多方努力,終於在5月末準備完畢,結束了與舅舅的臺灣出差時間相重疊的機票預訂/出標,從而確定了出國日期。
終於爲了移動到金浦機場離開了家。 雖然沒說什麼的母親心裏也有些擔心,但是剛剛結束國防義務的預備役休學生正在等待毫無顧忌的步伐。
在金浦機場乘坐飛往臺灣的飛機後,一邊吃着美味的機內餐,一邊往窗外看,離開韓半島,向着西海岸向臺灣西南方前進。
嗚哈哈,預備役士兵現在向着臺灣。
啊。這無拘無束的青春啊。
我告訴他,我可以自己去找他,只告訴我地址。
正在飛機上填寫臺灣入境文件,聽到機內廣播說即將着陸。
俯瞰窗外,離開韓國時看到的風景和異國風情迥異的自然景象讓我回想起來到臺灣,着陸後,客人們爲了辦理入境手續,排起了長隊。
出了飛機排隊要辦理入境手續,已經有了南方亞熱帶的燻蒸纏繞着我。
韓國雖然5月是春天,但是臺灣已經是盛夏了。 就像澡燙的熱氣一樣,還沒準備好脫衣服的全身開始溼溼的。
輪到我的時候遞上護照,負責辦理入境手續的公務員向我詢問入境目的。
頓時精神恍惚。 以爲護照上只蓋了入境印章,所以悠閒地待着,卻突然感覺像是在接受入境面試。 應該自信地說出的我的中文就像非法入境者一樣,沒有自信的聲音在脖子那邊哼哼唧唧喳喳。 瞬間,頭惱變空白了,只能聽到不出現漢語,只聽到的嗡嗡的噪音。
不知說什麼好,回答時含糊其辭,拿着印有綠色墨水未乾入境印章的護照進入入境處,其他客人已經遠離了視線,只有我走了出來,不知道是不是入境處走錯路線,找不到出口,又開始驚慌起來。
幸好路過的公務員了解我的彷徨,指引方向。
終於,在那短短的時間裏,長時間繞着有限的空間徘徊的我,被遠方的舅舅揮手送上了救命的表示。
沒有一位救世主。 現在對我來說救世主是舅舅。
我不想讓舅舅看到我慌張的樣子。
因爲中文系學生不能在這裏猶豫,所以帶着笑容看看第一次見的大叔。 就當作是舅舅的朋友,坐上了等候中的轎車。 短暫的臺灣式熱潮過後,乘坐涼快的冷氣車,不知何時才慌亂地申報入境,不愉快的記憶飛向遠方。
舅舅讓跟一起來的叔叔打招呼。
"(啊,他是臺灣大叔,用中文打招呼吧)能見到你我感到很榮幸。"
啊。有這種傻瓜嗎? 可以說您好? 這又不是香港武俠電影或傳統歷史劇的臺詞,有什麼榮幸呢? 我蹩腳的問候語馬上又把我引向緊張模式,我吐出的漢語單詞已經散去,大叔說什麼都聽不清。
在辦理入境手續時,雖然說是對臺灣入境初次經歷的緊張,但在現在的氛圍下,我連簡單的對話都做不到,那麼,到現在爲止所學的中文都去了哪裏呢? 忘在韓國了嗎? 突然,清涼的車裏開始出汗。
我懷疑退伍時是不是同時把中文還給國家了。
臺灣大叔默默地看着從韓國來的預備役學生,帶着我和舅舅去了他的家。
雖然後來才知道是雅緻的單獨住宅,但是一般的裝飾和傢俱都至少有簡單的風格,但是與用誇張的裝飾屋內的韓國不同,甚至有些樸素。
在臺灣,女性,特別是主婦們都在上班,與當時的韓國主婦們不同,她們的風格有很大不同。 一般來說,早餐簡單地以臺灣式街頭小吃解決,晚餐則選擇家附近的餐廳外餐,但可以判斷,可能是因爲外餐的費用和自己親自料理的花費沒有太大差異。
一般家庭式飯店都坐落在住宅區,而且味道也非常好,所以每天晚上都會以"不要在家裏吃晚飯"的誘惑食客。
雖然我不挑食,但是一整天被虛張聲勢的中文折磨的我突然食慾大增,比平時吃的更多,所以臺北的第一頓飯記得是暴飲暴食。
三天後回韓國的舅舅,好像是爲了和我在一起的時候,給我介紹的住處和基本情況而事先做了準備。
第二天舅舅帶我去臺灣大學正門附近的2樓牛排專賣店。
舅舅給我介紹身材魁梧的大叔、紳士風格的大叔說"我要多多支持你和照顧你"
在我心裏準備好的問候語一出現,對漢語的恐懼感就慢慢消失了。 是的,從現在開始好好幹吧。
舅舅跟我說上午學中文,下午在食堂打工比較好,還積極勸我解決晚飯,可以和職員們一起復習中文。 我也沒有理由拒絕,最重要的是,能夠固定解決晚餐問題,這種想法強烈地吸引了我。
舅舅鼓勵我說,在臺灣期間,如果有困難或問題,隨時都可以商量。
舅舅從食堂出來,讓我去預定好的學習中文的《國語日報語言學院》看看,然後登記學院,然後移動到預定好的宿舍。
帶她去了不遠處的住宅區,她說舅舅在臺灣留學時認識的後輩住在這裏,因爲家裏有空房間,所以提前預約了。
和舅舅的熟人見面後確定了住處,心情變得柔和了許多。
昨天感受到的熱氣多少有些減弱,也許是已經適應了,呼吸也更加順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