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초교 이야기 4

by 제이킴

등 안마


“아. 대근하다. 대장. 아빠 허리 좀 밟아라.”


아버지는 날이 흐리거나 허리가 뻐근하면 퇴근 후 집에 들어오셔서 나에게 허리를 밟으라고 하셨다.

나는 거의 반자동으로 사뿐하게 아버지 허리로 올라가 두 발로 정성껏 밟아드렸다.


대장은 내가 어릴 적 아버지가 부르던 별명이고 ‘대근하다’는 어른들이 쓰는 피곤하다는 의미의 지방 사투리인데 내가 억지로 풀이를 하자면 大筋하다는 ‘근육이 뭉쳐서 커졌다’로 이해를 했다.

그렇다면 대근한 아버지를 내가 발 안마로 눌러 드려야지 누가 눌러드리겠는가?


나름 사명감을 가지고 눌러 드렸고 나중에는 발 안마의 등 밟는 순서로 강약을 조절하며 정성껏 밟아 드렸다. 밟혀서 아플 텐데 아버지는 뭐가 시원한지 모르겠는데 좋아하셨다.


나중에 중국에서 보니까 여성들이 등위로 올라와서 발로 자근자근 밟아주는데 그리 시원하고 좋았는데 그때 아버지가 시원하다고 하셨던 이유를 어릴적 아버지와 동년배 나이가 되어서야 이해가 되었다.


父子가 나이가 차서 느끼는 몸의 변화와 공감되는 느낌은 좋으나 나도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현실이 아쉽다. 나도 아들에게 허리를 밟아 달라고 해야 하나 생각하면 서글프기도 하다.


지금은 아버지가 연세도 많으시고 등 근육이 감소했지만 내가 살살 밟아드리면 시원하시려나.

격동의 70/80년대 열심히 일하고 대근하셨을 우리들의 가장들은 지금도 건강하실까?


슈샨 보이


나의 공식적인 수입원은 엄마가 주는 정기성 용돈과 외가/친척이 주는 부정기성 용돈 그리고 노력봉사로 받는 알바 용돈 등 3종류로 구분할 수 있었다.


알바 용돈은 주 1-2회 아버지 구두를 손질하는 것인데 손질 방법은 일단 구둣솔과 구두약을 철물점에서 장만한 후 구둣솔로 구두에 있는 진흙이나 이물질을 제거한다. 당시 보행 길은 포장도로가 적어서 비가 오거나 물이 고이면 오랫동안 조심해서 길을 걸어 다녀야 했다.


구두도 예외가 없이 잔뜩 진흙이 묻어 있어서 구두약을 칠하는 과정보다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이 전반전 과정으로 손이 많아 갔다. 이물질이 제거된 구두는 구두약을 골고루 묻혀서 덧칠을 한 후 신발을 번갈아 가면서 광을 내는데 이 후반전 과정에서 솔질을 얼마만큼 빠르게 교차적으로 하는가에 따라서 광의 품질이 결정된다.


초교 어린이에게 얼마나 기술이 필요했을까 싶지만 나름 정해진 순서와 매뉴얼대로 광을 내고 주급으로 용돈을 받을 수 있었다. 금액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나의 노력으로 받은 땀의 대가였다.


무작정 자녀들에게 용돈을 주는 것보다 가족들의 신발을 닦아보게 하는 경험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슈샨 보이를 영어로 풀면 SHOES SHINE BOY일 텐데 영어권 나라에도 이러한 가정식 알바가 있는지 궁금하다.

슈샨 보이여 영원하라.


아맛나


당시 아이스크림이라고 하면 ‘하드’가 대세였고 여름이 아니면 먹을 수 없었다.

여기서 하드라는 아이스크림은 오렌지 맛이 나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파는 딱딱한 빙과류이다.

여름철이 되면 아이스박스를 메고 돌아다니며 ‘아이스께끼’ 소리치며 하드를 팔러 다니는 형들이 있었고 연한 단팥 맛이 났었다. 지금과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공정과 위생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내가 초교 고학년이 되자 아버지는 외할아버지 제재소를 나와서 큰아버지, 작은아버지와 함께 아이스크림 도매 대리점을 하셨다. 여름철 3-4달 장사로 일 년 장사의 80%를 하던 시절 이야기.


여름철이 되면 우리 집 냉장고에는 형태가 변형되어 판매가 불가능한 아이스크림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당시 대형 냉장고는 아마도 냉동고 온도의 유지가 어려워서 인지 온도 차에서 발생하는 불량품이 다량으로 발생했는데 그 아이스크림들이 우리 집 냉장고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상상을 해보자. 무더운 여름 철이라고 해서 아이스크림을 얼마나 먹을 수 있었겠는가?

결국은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오면 의기양양하게 냉동고에서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던 하드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당시 아이스크림 중 ‘아맛나’라는 하드의 이름이 내 별명이 된 사연이 있다.


하루는 동내에서 이웃으로 살고 있던 사범님이 나에게 우리 집에서 어떤 일을 하시느냐고 묻길래 아이스크림 대리점을 하신다고 했더니 즉석 해서 내 별명을 지어 준 것이 ‘아맛나’.

특히 태권도장에서 동료 사형이나 사제들이 나를 아맛나 하고 부르는데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었다. 아마도 다들 여름이면 냉장고에서 나의 손길을 기다리던 팥맛이 일품인 아맛나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지금도 여름 철이 되면 시중에서 판매되는 이 아이스크림을 보면 어릴 적 내 별명이 생각난다.

아맛나. 아! 맛난 아이스크림 이여.


수레미


외할머니와 마실을 다니던 시장에는 온갖 군것질거리가 있었다.

마른 새우와 건어물들을 할머니가 즐겨 드셔서 외가에 가면 나 또한 건어물을 자주 먹게 되는데 특히 오징어를 당시에 외삼촌들이 ‘수레미’라고 부르며 즐겨 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지역 사투리였다. 왜 오징어가 수레미로 불렸는지 사연은 모르겠다. 당시 할머니 별명이 '수레미 여사'였는데 그만큼 건어물을 좋아하셨다는 말씀이다.


홍합은 말리면 딱딱한 돌처럼 되는데 이것을 입 속에 넣고 침으로 살살 녹여 먹으면 맛이 기가 막혔다. 내륙도시에서 성장을 해서 그런지 해산물과 건어물의 추억이 더욱 강하게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젓갈류도 다양하게 외가에서 대량 구매하여 할머니가 외가와 우리 집, 그리고 이모 집까지 3등분해서 나누어 주셨는데 외가는 그만큼 먹거리가 풍부했다. 특히나 제재소 일꾼들이 상주하던 시절이어서 장정들의 식사 준비를 했으니 그만큼 식재료가 많이 필요했으리라.


나는 지금도 할머니가 입 안에 넣어주던 건홍합이 가끔 꿈속에서도 생각난다

생선이 귀하던 시절 시장만 가면 다양한 생선들이 좌판에서 주인들을 기다린다. 시장 속 생선들은 철마다 싱싱함을 자랑했었는데 지금은 자주 못 보는 준치가 기억이 난다.

‘썩어도 준치’는 생선뼈가 많았고 어릴 적 기준으로는 그다지 대단한 맛은 아니었던 같다.

아버지 좋아하시던 서대, 박대들도 생각이 난다. 오징어, 꽁치, 삼치, 고등어, 병어, 동태, 생태…


시장에 가면 작은 바다가 거기에 있었다.



背部按摩


"啊。 队长,踩一下爸爸的腰。"

父亲说,天阴或者腰酸,下班回家后让我踩腰。

我几乎半自动地爬到父亲的腰上,用双脚给父亲精心踩踏。

队长是我小时候父亲叫的外号,"勤劳"是大人们使用的意为疲惫的地方方言,如果我硬要解释的话,就是"大筋"的"肌肉结块变大了"

那么,我应该用脚按摩一下父亲,谁来按呢?

他带着使命感按压,后来按照脚部按摩背部的顺序调节强弱,精心按压。 被踩了应该很疼,爸爸不知道什么凉快,但是很喜欢。

后来在中国看到,女性们爬到背上用脚轻轻踩着,非常凉爽,很好,但是直到小时候和父亲同辈年龄才理解父亲说凉爽的理由。

父子年纪大了,对身体变化产生共鸣的感觉很好,但是我也越来越老的现实令人遗憾。 我也在想是不是应该让儿子踩着腰,心里很不是滋味。

现在爸爸年纪大了,背部肌肉也减少了,但是如果我轻轻踩的话,会舒服吗?

在动荡的70/80年代努力工作和勤劳的我们的家长们现在还健康吗?


擦鞋男侍者


我的正式收入来源可以分为妈妈给的定期性零用钱和外婆家/亲戚给的不定期零用钱和通过努力服务得到的打工零用钱等3种。

打工零花钱是每周1-2次给父亲修皮鞋,修皮方法是先在五金店购买皮鞋刷和皮鞋药,然后用皮鞋刷去除皮鞋上的泥土或异物。 当时步行路铺路较少,遇到下雨或积水,要长时间小心行走。

皮鞋也无一例外地沾满了泥土,比起涂鞋油的过程,去除异物是上半场过程,因此顾客越来越多。 去除异物的皮鞋均匀地沾上皮鞋膏,再涂上皮鞋后,轮流擦鞋,这后半场过程中刷子的速度有多快,决定了光泽的质量。

虽然不知道小学儿童需要多少技术,但按照自己规定的顺序和手册,可以发光并领取周薪零用钱。 虽然记不清金额,但这是我通过努力得到的汗水代价。

比起盲目地给子女零花钱,让家人擦鞋的经验是不是更有意义呢? 如果用英语解释"Shoosan Boy"的话,应该是"SHOES SHINE BOY",很好奇英语圈国家也有这样的家庭式兼职吗?

舒尚男孩,永永远远。


可口呐


当时说到冰淇淋,"硬"是大势所趋,如果不是夏天就无法吃到。

这里的冰激凌有橙子的味道,是小区小卖部出售的硬邦邦的冰果类。

一到夏天,就有哥哥们背着冰盒到处走动,一边喊着"冰咯咯"一边卖硬盘,味道很淡。 在生产工艺和卫生方面存在很大的差异,与现在无法相比。

当我上小学高年级时,父亲走出外公锯木厂,和伯父、伯父一起做冰淇淋批发代理。 这是夏季3-4个月生意占一年生意80%的时期。

一到夏季,我家的冰箱里就装满了变形的无法销售的冰淇淋。 当时大冰箱可能是因为冰柜温度难以保持,导致认知温差产生大量次品,那些冰淇淋就进了我们家的冰箱。

想象一下吧。 炎热的夏天能吃多少冰淇淋呢?

结果,如果朋友们来家里玩,就可以得意洋洋地看到在冰箱里等待主人的硬盘们。 当时冰淇淋中有一个叫"啊,好吃"的硬盘的名字成为了我的绰号。

有一天,在村子里作为邻居生活的教练问我,在我家做什么工作,我说要开冰淇淋代理店,结果当场就给我起了外号,我说'啊,好吃'。

特别是在跆拳道场,同事师兄和师弟们叫我"真好吃"时,我的心情并不坏。 也许大家都会想念一到夏天就在冰箱里等待我出手的红豆味一流的美味。

所以现在一到夏季,看到市面上销售的这个冰淇淋,就会想起我小时候的外号。

啊。好吃的冰淇淋啊。


墨鱼


和外婆逛马棚的市场里有各种零食。

因为奶奶喜欢吃干虾和干鱼,所以去外婆家的话,我也经常吃干鱼,特别是鱿鱼,当时舅舅们叫"车米",喜欢吃,后来才知道是当地方言。 不知道鱿鱼为什么被称为"车米"。 当时奶奶的外号是"车米女士",也就是说她非常喜欢干鱼。

贻贝晒干后会变成坚硬的石头,如果把它放进嘴里,用唾液轻轻融化,味道就绝了。 也许是因为在内陆城市成长,海鲜和干鱼的回忆更加深刻。

鱼虾酱类也是从外婆家大量购买,奶奶把外婆家、我家和姨妈家分成三等分,外婆家的食物非常丰富。 特别是当时是木材厂工作人员常驻的时期,所以准备了壮丁们的饭菜,所以需要很多食材。

我现在也偶尔在梦里想起奶奶给我吃的干红蛤

在鱼类稀少的时期,只要去市场,各种鱼类就会在摊位上等待主人。 市场里的鱼每个季节都很新鲜,但现在想起了很少见的鲥鱼。

"烂了也是鲥鱼"有很多鱼骨,以小时候为基准,味道好像不是很了不起。

也想起了父亲喜欢的西大、朴大们。 鱿鱼、秋刀鱼、鲅鱼、鲳鱼、明太鱼、生态…

去市场的话,那里有小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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