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초교 이야기 3

by 제이킴

피아노와 태권도


우리 집은 그리 상류층은 아니었는데 여동생이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피아노를 잘 친다는 소문이 나자 외가에서 큰 맘을 먹고 1대를 장만해 주셨다.

우리 집에서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는 동생은 참으로 대단했다.

나도 피아노를 배우게 해달라고 엄마한테 지나가는 투정을 부렸더니 나를 태권도장에 보내셨다.

아마도 엄마 기준에 피아노는 여학생용이고 남학생은 태권도를 해야 하는가 보다.

피아노 연습을 열심히 하는 동생 덕분에 피아노 소리는 우리 집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나는 태권도 도장을 나가게 되었다.

집 근처에 있는 도장에 중학교 고등학교 형들이 도복을 어깨에 메고 다니던 모습을 자주 보았던 나는 등록을 하기 위해서 도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벽면에는 관장님의 수련 사진과 관원들의 대련 모습, 선수들 시합 장면들이 액자에 들어 있었다.

명절에 사촌들과 보았던 이소룡 영화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은 사범들도 있었다.

관장님 딸이 있었는데 초교 동창이었고 같은 반이었던 적이 있어서 조금은 쑥스러웠지만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태권도는 흰띠(8-7급)가 초급이고 노란(6-5급)->파랑(4-3급)->빨강(2-1급)->검정(1단) 순으로 등급이 매겨진다.

나는 신입이니까 흰띠인데 이게 좀 폼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수련생은 하얀 백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흰색인 것 같다. 흰띠를 벗어나려면 승급심사를 거쳐 단계 단계를 밟아서 올라가야 한다.

품새를 익혀서 한 달에 한 번하는 승급심사를 2번 통과해야만 노란띠를 맬 수가 있는 것이다.

품새는 태권도에서 공격과 방어의 기본 기술을 연결한 연속 동작으로 절도가 있는 수련활동이다.

기본적으로 정권 지르기, 발차기, 돌려차기 등을 연습하면서 나름대로 자세가 갖추어 갔다.

당시 도장에는 초교생들이 30명, 중/고교생들이 각각 10명씩, 성인반 5명에 사범은 2명 정도가 활동을 하였고 관장님은 직접 수련에는 참가하지 않으시지만 연습하고 있는 우리들을 살피며 자세 교정이나 발차기가 서투른 아이들에게 직접 지도를 해 주셨다.

나중에 결국 나도 검은띠까지 오르게 되는데 이소룡 영화를 보면 영춘권을 사사하며 스승의 마음과 자세를 배우려는 이소룡이 사부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들이 있는데 우리가 관장님이나 사범님에게 태권도를 배우는 자세와 분위기는 영화와 많은 부분이 겹쳐진다.

당시 이소룡의 쌍절곤은 도장을 다니거나 이소룡을 흉내 내던 아이들의 필수품이었다.

쌍절곤 연습한다고 형광등이나 자신의 뒤통수를 쳤던 기억이 없다면 그 사람은 이소룡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이소룡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이었다.

노란색 츄리닝을 입고 쌍절곤을 겨드랑이에 끼고 ‘아비요’로 상징되던 이소룡의 괴성을 지르면 비로소 이소룡표 패션이 완성된다.

혹시 그때 썼던 쌍절곤이 집에 있으면 다시 코를 한 번 훔치고 ‘아비요’를 외쳐보자.

배구와 축구


아버지는 초교를 고향 시골에서 졸업하고 작은 아버지와 도시에 있는 큰 형님 집에서 중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도시에 나와서 기차를 처음 보았다고 하는데 당시의 기차의 웅장함은 지금의 우주선과 비교될 정도로 문화적인 충격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배구를, 작은 아버지는 핸드볼로 체력을 단련하셨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중에 하나가 학교에서 배우는 운동이었고 나름 체력도 단련되고 운동을 잘하면 교내 인기남이 되는 것인데 당시 아버지 시절에는 배구가 9인제였고 ‘레프트 킬러(좌측 공격수)’로 맹활약을 했다.

나는 줄곧 축구를 즐겨했고 선수 급은 아니었지만 나름 아마추어 중급 이상의 볼 센스는 있었다.

특히, 점심시간이 되면 학년별 축구팀들이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와서 정신없이 공격과 수비가 어우러지는 떼거리 축구를 했었다. 나중에 선진국 축구 기술로 전방위 압박전술이 유행했는데 일명, ‘벌떼축구’의 원조는 우리들이었다. 그리고 ‘똥볼’ 축구의 원조이기도 하다.

상대편 골문을 향해서 냅다 볼을 차면 우르르 공격진을 형성하여 상대편 진영으로 몰려간다.

수비 축 중심에 똥볼 전문이 있었다. 멀리 우리 공격진이 있을 아니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힘차게 질러 대면 주위에서 축구를 잘한다는 칭찬을 듣곤 했다.

방학 때는 불친들과 핸드볼 구장에서 축구를 했는데 지금의 풋살 크기의 경기장에서 3:3, 4:4 축구를 즐겼다. 당시 학교 운동장에는 놀러 나온 형들이나 또래 아이들이 축구공만 달랑 들고 나와서 각자 놀다가 심심하면 서로 팀을 합치고 선수 숫자를 맞춰서 간이 시합을 했었다.

벌떼 축구와 똥볼은 우리가 원조다.


벤치프레스


우리 집 마당 중앙에 간이식 의자에 누워서 할 수 있는 역기가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운동을 하려고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점점 별로 운동을 안 하신다.

내가 어릴 때 역기 기구에 누워서 두 손으로 들어 보았는데 어린이가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를 초과하여 들게 되면 역기를 든 내 손이 어깨부터 손목까지 후들거려서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원위치에 얹어 놓을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서 사용했을 법한 돌로 만든 역기는 철봉 같은 쇠파이프로 손잡이를 만들었는데 돌구멍 사이에 끼운 틈이 벌어져 있어서 파이프와 양끝 돌들이 고정되지 않고 덜덜거리며 따로 놀았다. 그래서 어린이가 보기에는 위험해 보였고 들다가 균형을 못 맞추면 떨어뜨릴 것 같은 공포가 밀려오곤 했다.

역기를 들었다가 못 올리면 난감한 상황이 생긴다.

역기를 든 두 손이 가슴으로 내려와 가슴뼈 쪽을 압박하게 되는데 간혹 가슴이 눌리면 호흡하기가 불편하다. 다행히 지나가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서 아슬아슬하게 올려놓은 경험도 있다.

나중에 초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들어 보았는데 그 정도면 들만 했다. 나는 성장했고 역기는 예전에 무게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느덧 나도 어린아이에서 남자가 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钢琴和跆拳道


我家本来不是很上流阶层,但是妹妹上钢琴补习班时钢琴弹得很好的传闻传开后,外婆家下了很大的决心给我买了一台。

在我们家学习好、钢琴弹得好的弟弟真是了不起。

我缠着妈妈让我学钢琴,结果把我送到了跆拳道馆。

也许以妈妈为标准,钢琴是女生用的,男生应该练跆拳道。

多亏了认真练习钢琴的弟弟,钢琴声充满了我们的家。

然后我去了跆拳道场。

我经常看到初中高中哥哥们肩上扛着道服在家附近的印章,为了登记,我进入了印章办公室。

墙面上,馆长的修炼照、馆员们对练、选手比赛等画面都摆在了相框里。

也有教练摆出节日时和堂兄弟们一起看过的李小龙电影般的姿势拍照。

馆长有一个女儿,是小学同学,也是同班同学,所以有点不好意思,但并没有成为大问题。

跆拳道中,白带(8-7级)是初级,黄色(6-5级)->蓝色(4-3级)->红色(2-1级)->黑色(1段)的顺序。

因为我是新来的,所以是白腰带,但是这个有点不雅观。 可能因为实习生是从白色白纸开始的,所以是白色。 要想摆脱白带,必须通过升级审查,分阶段进行。

只有熟悉品势,通过一个月一次的升级审查两次,才能系上黄带。

姿势是跆拳道中连接攻击和防御的基本技术的连续动作,是有节制的修炼活动。

基本上通过练习踢政权、踢腿、旋转踢腿等,具备了各自的姿态。

当时道场有30名小学生、初中/高中生各10名、成人班5名、教练2名左右活动,馆长虽然不亲自参加修炼,但观察着正在练习的我们,亲自指导姿势矫正或踢腿生疏的孩子们。

最后我也登上了黑带,看李小龙电影的话,师从咏春拳,想要学习老师的心和姿势的李小龙听从师父的教导努力练习的样子,我们向馆长或教练学习跆拳道的姿势和氛围与电影有很多重叠。

当时,李小龙的双节棍是上道场或模仿李小龙的孩子们的必需品。

如果没有因为练习双节棍而打日光灯或自己后脑勺的记忆,那个人就是不认识李小龙的人或对李小龙没有礼貌的人。

穿着黄色运动服,腋下夹着双节棍,发出象征"阿飞谣"的李小龙的怪叫,才能完成李小龙牌时尚。

如果当时用过的双节棍在家的话,就再偷一次鼻子,喊一下"阿飞哟"吧。


排球和足球


父亲小学从老家农村毕业,开始在叔叔和城里的大哥家读初中。 据说,来到城市后第一次看到火车,当时的火车的雄伟程度足以与现在的宇宙飞船相提并论,具有文化冲击。

据说,父亲用排球锻炼了体力,叔叔用手球锻炼了体力。

在那个时代,学生们可以享受的特权之一就是在学校学习的运动,如果体力得到锻炼,运动做得好的话,就会成为校内人气男,当时父亲时期排球是9人制,作为"左前锋"非常活跃。

我一直喜欢踢足球,虽然不是选手级,但也有业余中级以上的球感。

特别是一到午餐时间,各年级的足球队就会涌向运动场,疯狂地进行攻击和防守相结合的群足球。 后来作为发达国家的足球技术,流行了全方位的压迫战术,被称为"蜂群足球"的鼻祖就是韩国。 而且还是"粪球"足球的鼻祖。

向对方球门猛踢的话,就会形成攻击线,涌向对方阵营。

防守轴中心有粪球专门店。 他预测我们的进攻阵容不会在远处,只要大声喊叫,周围的人就会称赞我们踢得很好。

放假的时候和朋友们在手球球场踢球,但是在现在室内足球大小的球场享受了3:3、4:4的足球。 当时,来到学校运动场玩的哥哥们和同龄孩子们只拿着足球各自玩耍,无聊时互相合并,根据选手人数进行简易比赛。

蜂群足球和粪球是我们的鼻祖。


仰卧起坐器


我家院子中央有一个可以躺在简易椅子上做的杠铃。

可能是爸爸为了运动才做的,但是渐渐不怎么运动了。

我小时候躺在举重器械上用双手举过,如果超过儿童可以举起的重量,举重器械的我的手从肩膀到手腕都会颤抖,好不容易调整呼吸,重新放回原位。

在古希腊奥运会上用过的石头制作的杠铃是用铁棒一样的铁管制作的手柄,因为夹在石洞之间的缝隙裂开了,所以管子与两端的石头没有固定,而是咯噔咯噔地分开玩。 因此,在儿童看来很危险,如果抬起来无法保持平衡,就会产生掉下去的恐惧。

举重后不能举起来,就会出现难堪的情况。

举着杠铃的双手会下到胸部,压迫胸骨,偶尔胸部被压住,呼吸就会不舒服。 幸运的是,在路过的家人的帮助下,也有惊险地上传的经验。

后来上小学高年级的时候听过,那种程度的话只听过。 我长大了,杠铃以前一直保持着重量。

不知不觉中,我也感觉自己正从小孩子变成男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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