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초교 이야기 5

by 제이킴

전학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 초가 되었는데 교내 방송에서 전학을 가는 학생들은 운동장으로 모이라고 한다.

전학? 집이 지금 다니던 학교보다 먼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전학을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 집은 그대로인데 전학을 가야만 했다.

이유는 학구가 바뀌어 일부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이사와 관계없이 학교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지만 당시는 어리벙벙하고 이해가 잘 되지를 않았다.

운동장에 나가보니 학년별로 약 50명 이상이 모여 있었고 인솔 선생님의 지도하에 2열 종대로 줄을 지어 인접 학교로 전학을 갔다.

3학년 1학기를 같이 보낸 친구들이 아쉬운 표정을 짓지만 내가 더 아쉬웠다. 여린 마음속으로 당황스럽고 학구 변경이라는 제도가 원망스러웠다.

당시 단체 전학 후 반 배정까지 일사천리였다. 아마도 학교 간 사전 명단과 반 배정을 조율했던 결과 이리라. 교무실에서 반 배정되어 새로운 담임선생님과 한 학기를 다녀야 하는 새로운 반으로 걸어가는데 왜 그리 어색하고 서글프던지.

반에 들어서자 140개의 눈들이 나를 응시한다. 사실 속으로 조금 긴장되었으나 내색은 못하겠고 선생님은 교단에서 내 소개를 마치고 지정된 내 자리로 가려고 준비하는 나에게 갑자기 노래를 한 곡 부르라고 하셨다. 아마도 내 긴장을 풀어주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 나는 오히려 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다행히도 기억나는 노래를 불렀다.

“잠자리 날아다니다. 장다리 꽃에 앉았다. 살금살금 바둑이가 잡다가 놓쳐 버렸다. 짖다가 날려 버렸다.”

오죽했으면 지금도 가사가 기억이 난다.


최길옥 선생님


3학년 2학기 전학생이 어설퍼서 학교 적응을 못할 수도 있었던 시절에 엄마처럼 보살펴 주신 고마운 선생님 이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초교 여 동창 어머니이기도 했다.

당시 초교 선생님이 다니던 학교에 선생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같이 다니던 시절이었고 같은 학년에 다른 반 담임선생님으로도 근무를 하셨다. 심지어는 엄마 선생님과 아이 학생이 같은 반에 배정되어 부랴부랴 다른 반으로 아이 학생을 재배정을 했던 것도 기억난다. 그 시절은 많이 어설펐다.

이전 학교의 우수한 내 성적을 알고 계셨던 선생님은 내가 전학으로 인한 부적응으로 학업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심과 사랑으로 돌봐 주셨다.

하루는 장난을 치다가 입술이 깨졌는데 자신의 침을 내 입술에 발라 주시며 걱정을 하셨다.

지금은 이러한 선생님의 표현방식에 과잉반응을 보일 학생들과 학부모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내 감성은 감사함이다. 선생님의 사랑과 지원 속에 나는 무난하게 적응을 했고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최 선생님 남편도 선생님인데 내가 중학교에 올라가자 수학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계셨다. 참고로 두 분의 장녀와는 초교 4학년 같은 반이었으니 그렇게 고마운 인연들로 얽혀 있었다.

선생님 부부와 큰 딸까지의 인연을 생각하면 이 모두가 다 내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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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


4학년이 되자 내 성적이 상위권에서 중상위권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원인은 내 학습의지의 하락과 당시 담임선생님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그때부터 내 생활기록부를 보면 ‘해찰을 많이 한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해찰의 뜻을 찾아보니 ‘쓸데없이 다른 짓을 많이 한다’라고 정의가 되어 있다.

담임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학교에 결근하거나 조퇴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수업 시간에 수업을 안 하니 해찰을 할 수밖에. 성적 하락의 원인을 찾고 찾은 변명거리 중 하나다. 해찰이 많은 아이가 되면서 반대로 친구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해찰을 해서 얻어진 우정이 아닌가 싶은데 이것은 내가 만든 위안거리로 이해하시라.

그렇게 해찰 많은 아이는 점점 친구가 늘어가고 성적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여학생에 대한 관심은 높아갔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맞는 표현이겠다.

다행히도 우리 학교는 6학년까지 남녀 합반 교육이었는데 나는 이 정책이 맞다고 본다. 괜히 남녀를 성별로 분반해서 구분하면 실체는 별 것이 없는데 상상 속으로 그려지는 불편한 이성관이 당시 시대 상황이었다.

그리고 짝꿍도 좋아하는 여학생이면 좋겠고 짝이 안되었으면 하는 여학생도 생기기 마련이다.

어린아이도 보는 눈이나 취향이 있기 때문이다.

초교생들도 다양한 감성을 갖춘 인격체 랍니다.


짝사랑


짝사랑과 첫사랑은 조금 다르다.

짝사랑은 상대방이 모르게 지나갈 수 있지만 첫사랑은 상대방이 모를 수가 없다.

왜냐면 내가 짝사랑을 한다면 상대에게 들키지 않아도 되지만 첫사랑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야만 첫사랑이 완성된다. 상대방에게 알게 한다는 의미는 나의 언행이나 애정의 흔적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4학년 때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당시는 나이도 어렸고 이러한 기분이 좋아하는 감정인 줄을 모른 채 시간이 흘러갔지만 돌이켜 보니 나에게는 처음으로 다가온 짝사랑의 감정이었다.

여름방학 동안 그 여학생의 모습과 안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왜 그리 그 해 여름방학은 유달리 무덥고 길었던 것일까?

물론 그 후에도 짝사랑은 많이 해 보았지만 첫 경험은 늘 아련하고 강렬하다.

그 여학생이 내가 좋아하던 눈치나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몸짓을 기억할 리가 없었다.

내가 속으로 누리는 애달픔인데 그 아이는 알 수가 없었을 것이고 짝사랑의 시작과 끝을 오롯하게 혼자 감당하며 외로운 감정의 무게로 긴 시간을 이겨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 해 여름방학은 그 아이를 그리워하다가 지쳐서 가을을 맞이했다.



转学


三年级第一学期结束后到了第二学期初,校内广播中转学的学生们聚集到运动场。

转学?是不是只有把家搬到比现在读的学校更远的地方才能转学?

但是我们家还是老样子,只能转学。

理由是,由于学区改变,居住在部分地区的学生与搬家无关,必须换学校。

现在回想起来,可能会那样,但当时很傻,而且无法理解。

到运动场一看,各年级约有50人以上聚集在一起,在带队老师的指导下,排成2列纵队,转学到附近学校。

虽然一起度过3年级1学期的朋友们露出遗憾的表情,但我更感到遗憾。 在脆弱的心灵中感到惊慌,并埋怨改变学区的制度。

当时,团体转学后分配班级也一泻千里。 可能是因为学校之间事先协调好名单和班级分配的结果。 从教务室分班,走到要和新班主任上一个学期的新班,怎么那么别扭,那么惆怅。

一进班就有140只眼睛盯着我。 其实心里有点紧张,但无法表露出来,老师突然让我在讲台上做完自我介绍准备去我指定的座位的我唱一首歌。 你可能想让我放松一下,但我却在更紧张的气氛中幸运地唱了一首歌.

"蜻蜓在飞。 坐在长腿花上。 悄悄地让围棋抓跑了。 叫着叫着就飞走了。"

难怪现在还记得歌词。


崔吉玉老师


在3年级第2学期转学生因生疏而无法适应学校生活的时期,她像妈妈一样照顾我,是一位值得感谢的老师。 后来才知道,原来是小学女同学的母亲。

当时是小学老师上学的学校,老师的孩子们自然地一起上学的时期,在同一年级还担任了其他班的班主任。 甚至还记得,妈妈老师和孩子的学生被分到同一个班级,匆匆忙忙地将孩子的学生重新分配到另一个班级。 那些日子很不自然。

老师知道我之前学校优秀的成绩,为了不让我因转学不适应而影响学业,老师用关心和爱照顾了我。

有一天,在玩耍时嘴唇破裂,他把自己的口水涂在我的嘴唇上,非常担心。

虽然现在可能会有学生和家长对老师的这种表现方式反应过度,但当时我的感性还是很感谢的。 在老师的爱和支持下,我适应得还不错,成绩也保持在前几名。 崔老师的丈夫也是老师,我上初中后,他就担任数学老师。 作为参考,因为和两位的长女是小学4年级的同班同学,所以结下了感激的缘分。

想到老师夫妇和大女儿的缘分,这都是我的福分。


打闹


到了四年级,我的成绩开始从上到中上下降。

具体原因可能是我的学习意志下降和当时班主任的影响。

从那时起,看我的生活记录簿就会出现"经常打闹"的说法。 找了一下打闹的意思,被定义为"做很多没用的事情"

班主任因个人原因经常缺勤或早退。

上课不上课,只好打闹了。 这是寻找成绩下降的原因后找到的借口之一。 随着成为爱打闹的孩子,相反的朋友开始多了起来。

也许是通过打探获得的友情,但这是我所做的安慰。

那么爱打闹的孩子,朋友逐渐增多,成绩开始下降。

与此同时,对女学生的关心也越来越高。 对异性的好奇心是正确的表现。

幸运的是,我们学校直到6年级都是男女合班教育,我认为这个政策是正确的。 如果将男女按性别分班区分的话,实体没有什么特别的,但是想象中描绘的不舒服的李成宽是当时的时代状况。

而且也会出现希望同桌也是喜欢的女生,不希望成为同桌的女生。

因为孩子也有眼光和爱好。

小学生也是具有多种感性的人格体。


单相思


单恋和初恋有点不一样。

单恋可能会在对方不知情的情况下过去,但初恋不可能不知道。

因为如果我单恋的话,可以不被对方发现,但是初恋要向对方表达自己的感情才能完成初恋。 让对方知道的意思就是把我的言行或爱情的痕迹传达给对方。

4年级的时候有喜欢的女生。 当时年纪还小,不知道这种心情是喜欢的感情,时间流逝,但回想起来,这对我来说是第一次单恋的感情。

非常好奇暑假期间那个女学生的样子和问候。 为什么那年的暑假特别闷热漫长?

当然之后也暗恋过很多次,但是第一次经历总是很朦胧,很强烈。

那个女生不可能记得我喜欢的眼神或瞬间露出的动作。

这是我内心享受的悲伤,但那个孩子是无法知道的,也许只有一个人独自承担单恋的开始和结束,用孤独的感情重量克服很长时间才有意义。

就这样,那年暑假,想念那个孩子,累坏了,迎来了秋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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