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교 선생님들 중에는 정말 다재다능한 선생님들이 계신다.
그것도 그럴 것이 국어, 수학, 역사, 지리, 과학 등 일반 교과에서부터 미술, 음악, 체육에 이르기까지 종합예술인에 가깝다. 특히 미술이나 체육은 그렇다 치고 음악수업에서 건반을 치며 수업을 하시던 선생님도 계셨다. 이른바 풍금이 그 악기인데 피아노 동생뻘 되는 미니 피아노로 2개의 페달을 밟아 바람을 악기에 불어넣어서 연주를 한다.
대부분 피아노를 배운 학생들이 단골 연주자가 되어 선생님의 음악시간을 보좌하곤 했었다.
風琴을 해석하면 ‘바람으로 소리 내는 거문고’라는 의미인데 표현이 너무 시적이다.
개항 초기 선교사들이 가지고 들어와서 보급된 것으로 확인된다. 반마다 한 대씩 있었고 교회에도 주로 찬송가 연주용으로 사용되었는데 특유의 울림은 신자와 비신자를 구분할 것 없이 장엄한 분위기에 젖게 한다.
풍금이나 피아노를 치려면 두 손을 바지런하게 내밀고 건반 위에서 잘 움직여야 하는데 어릴 적 좋아했던 여친의 그 열개의 손가락이 너무나도 앙증맞고 귀여웠다.
희고 가느다란 손이 하얀색과 검은색 건반 위를 오밀조밀하게 오고 가는 손길에 따라 같이 따라가는 내 눈도 현란하게 피곤해지면 연주자보다 내가 더 기운이 빠졌다.
그때 풍금을 쳤던 아이들이 지금도 풍금을 기억하는지 궁금하다.
내 인생에 내가 스스로 역작을 만들어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던 여친이 있었다.
인근 동네에 살던 5학년 같은 반이었고 얇은 미소가 매력적이던 여학생에게 연모의 정이 꽂혔다.
어린아이가 연모라고 표현하면 이상한가? 사전을 찾아보니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정의된다. 그러니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만들어 보냈지.
당시 손카드는 별로 없었고 오히려 판매되는 카드가 더 예의가 있어 보이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반대로 수제 카드를 보냈다. 내가 솜씨가 좋았냐고? 사실 손재주가 신통치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만든 카드를 주고 싶었다. 내 인생의 유일무이한 handmade 카드를 여친 집 우편함에 넣고 돌아오는데 그때의 설렘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아마도 내 사연을 보게 되면 그 여친은 자신에게 보낸 카드인 줄 알 것이다.
내 진심과 추억이 담긴 카드를 지금도 가지고 있으려나.
초교 시절에는 어른이나 아이들 할 것 없이 연하장과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서 서로 주고받는 풍습이 있었다. 아마도 일제 잔재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일본은 지금도 남아있다고 알고 있다.
희망찬 새해가 오고 있으니 즐거운 성탄절을 맞이하자는 기분 좋은 문안의 의미가 있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일종의 허례虛禮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이야 스마트폰과 메일로 대체되어 연말에 연하장이나 카드를 보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 시절에는 체면을 차리려고 성행한 측면이 강한데 예를 들자면 나는 연하장이나 카드를 보낼 계획이 없었는데 친구나 지인들한테 받은 후 답신을 안 하면 성의가 없거나 무례하게 보일까 봐 나도 보낸다. 그러다가 다른 친한 사람들에게도 보내게 되고 그 사람들도 처음에는 보낼 생각이 없었는데 나에게 받은 보답으로 다시 지인들을 추가해서 보내고. 이런 식으로 많은 연하장과 카드들이 보내졌을 것이다.
결핵협회에서 판매하던 씰은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부의 시책으로 크리스마스 카드 봉투에 붙이려고 구매했었고 비자발적인 자선활동으로 기억된다.
검색을 해보니 120년 전 덴마크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는데 일부 학생들이나 어른들도 지갑에 부적처럼 넣고 다닐 정도로 유행했던 우표 같지만 우표가 아닌 기념품이다.
지금도 온라인에서 판매 중이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좋은 뜻에서 구매해보자.
그 시절 그 사람에게 보냈던 크리스마스 카드와 씰에 담긴 추억이 떠 오를지도 모르니까.
“당신이 이 편지를 받고 7일 이내에 7통의 편지를 써서 친구들에게 보내지 않으면 불행이…”
학창 시절 한 두 번은 받아보았을 ‘행운의 편지’.
이름은 행운의 편지인데 이 편지를 받고 주위 사람들에게 보내지 않으면 사고나 불행해진다는 주술적인 내용으로 도배가 된 정체불명, 국적불명, 행운의 편지가 아닌 불운이 연결될지 모르는 의문의 편지이다.
정말로 한가롭게 7통을 손으로 써서 불운하게 될지도 모르는 편지를 친한 친구들에게 주라고?
처음 출발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부디 인생이 행복하시기를 바라옵니다.
小学老师中真的有很多多才多艺的老师。
而且从国语、数学、历史、地理、科学等一般科目到美术、音乐、体育等,接近于综合艺术人。 尤其是美术和体育,甚至还有老师在音乐课上边弹琴边上课。 所谓的风琴就是那种乐器,用钢琴弟弟辈的迷你钢琴踩2个踏板,将风吹入乐器进行演奏。
大部分学习钢琴的学生都会成为常客,辅佐老师的音乐课。
解释风琴就是"用风发声的琴"的意思,但表达太有诗意了。
经确认,这是开港初期传教士带回并普及的。 每个班级都有一台,教会也主要用于演奏赞颂歌,特有的回响不分信徒和非信徒,沉浸在庄严的气氛中。
如果想弹风琴或钢琴,就要伸出双手,在键盘上好好移动,但是小时候喜欢的女朋友的那十个手指非常可爱。
白色纤细的手在白色和黑色键盘上细致地来回移动,跟着一起走动的我的眼睛也变得绚烂疲惫的话,我比演奏者更泄气。
很好奇当时弹风琴的孩子们是否还记得风琴。
我的人生中有个女朋友自己制作力作并送了圣诞贺卡。
住在附近小区的5年级同班同学,浅浅的微笑让魅力四射的女学生产生了爱慕之情。
小孩子说爱慕奇怪吗? 查字典后发现,它被定义为"恳切思念的心"。 所以亲自制作圣诞贺卡发过去了。
当时没有多少手卡,反而销售的卡看起来更有礼貌,但我反而送去了手工卡。 我手艺好吗? 其实手艺不怎么样。
尽管如此,我还是想给我办的卡。 我把我人生中独一无二的handmade卡片放在女朋友家的邮箱里回来时,当时的激动至今还留在我的心里。
也许如果看到我的故事,就会以为是女朋友寄给自己的卡片。
难道现在还留着饱含我的真心和回忆的卡片吗。
小学时期,无论大人还是孩子,都有制作贺卡和圣诞卡互相交换的习俗。 据我所知,可能是受日本帝国主义残余的影响,但日本至今仍然存在。
虽然充满希望的新年即将到来,迎接愉快的圣诞节的问候具有很好的意义,但从另一个角度来看,也让人觉得这是一种繁文缛节虛礼。
现在被智能手机和邮件代替,年末发送贺年卡的人极少。
在那个年代,为了挽回面子而盛行的一面很强,比如说,我本来不打算发贺年卡或贺卡,但是收到朋友或熟人后不回复的话,怕显得没有诚意或无礼,所以我也发了。 然后也发给了其他亲近的人,刚开始他们也不想发,但是作为回报,又追加了熟人发给了他们。 以这种方式,应该寄出了很多贺年卡。
现在回想起来,结核病协会销售的密封条与自己的意愿无关,是政府的政策,为了贴在圣诞卡信封上而购买的,而且是非自愿的慈善活动。
搜索后发现,120年前从丹麦开始扩散到全世界,部分学生和大人也像护身符一样放在钱包里,虽然像流行的邮票,但不是邮票,而是纪念品。
现在也在网上销售,有兴趣的人可以出于好意购买。
也许会想起当时送给那个人的圣诞卡和封印上的回忆。
"除非你在收到这封信的7天内写了7封信给朋友们,否则就会不幸……”
学生时代收到过一两次的"幸运信"。
名字是幸运的信,但收到这封信后,如果不对周围的人发送,就会发生事故或不幸的咒术性内容,不是被刷屏的身份不明、国籍不明、幸运的信,而是有可能连接不幸的疑问的信。
真的悠闲地用手写了7封可能会倒霉地信,让给亲朋好友吗?
虽然不知道最初的出发是谁,但希望人生幸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