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초교 이야기 8

by 제이킴

製材所제재소


어릴 적 내 마음의 고향은 친가보다는 외가였다.

우리 집에서 친할머니가 계셨던 큰 집까지 이동거리가 멀었고 친가에서는 수많은 손자들 사이에 한 명이었지만 외가에서는 장녀의 첫째였으니 탄생부터 큰 관심거리였고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엄마의 입장에서 아무래도 시댁보다는 친정이 정서적으로 편하므로 우리들도 엄마를 따라서 더욱 가까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다.

외할아버지는 그전 어떤 일을 하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 기억의 출발은 제재소였다. 목재의 용도별 크기에 맞게 다시 재목을 만드는 곳이 제재소이다. 목재는 당시 건축재료로 인기가 많아서 장사는 잘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코끼리 만한 큰 목재가 대형트럭에 실려오면 입고되는 과정도 장관이었다. 목재가 크다 보니 지게차로 절단을 위한 장소로 옮겨진다.

나무들을 절단하는 톱날들이 무디어지면 다시 날을 세우는 기계가 있었는데 내 눈에는 최첨단 장비로 보였다. 지금의 자동설비와 차이가 나겠지만 정확한 간격으로 줄칼이 움직이는 자동화 공정은 매우 신기했고 나무들이 절단되면서 나오는 톱밥은 따로 모아서 겨울에 톱밥 난로의 재료로 활용하였다.

나는 지금도 산처럼 쌓인 나무들 위에서 놀던 그 시절이 그립다.


PX아줌마


물자가 귀했던 시절이라서 미군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공공연하게 거래되곤 했다.

PX 아줌마로 불리던 분들이 보따리 방물장수처럼 외가를 출입했는데 영어로 쓰인 속칭 ‘미제’ 사용은 그 시절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식료품은 스팸과 통조림 제품 그리고 땅콩쨈, 초코렛이 생각이 나고 전자제품으로는 카세트 녹음기, 스테레오 전축도 있었다. 지금이야 국산 전자제품들이 세계시장을 호령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제품들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으로 흑백텔레비전 자체 생산도 큰 뉴스가 되던 시절이다.

칼라 테레비를 본다는 미국과 일본이 그렇게 부러웠는데 당시 흑백 테레비를 보면서도 웃고 울고 했지만 언제나 선진국처럼 칼라 테레비를 볼 수 있으려나 멀기만 느껴졌다.

사진도 흑백 시절이었으니 테레비도 당연히 흑백이 대세였다.

어느 날 할머니는 새로 구입한 스팸 몇 조각을 구워서 따뜻한 밥에 얹어서 주셨는데 특이한 미제 소세지의 향기와 촉촉하게 밀려드는 황홀한 식감은 그야말로 미국이라는 매력을 입 속에서부터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는 미국의 힘을 스팸에서 느꼈다. 고기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장기간 보관도 가능하고 맛도 이렇게 황홀하단 말인가?

PX 아줌마가 가져온 토스트 기계에 식빵을 구워서 땅콩쨈을 발라서 먹는데 땅콩에 이런 맛도 있었나 할 정도로 맛의 신천지를 경험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당시 국산 초코렛은 손바닥 만한 크기에 두께도 슬림한 스타일이었는데 미제 초코렛은 두께와 사이즈가 어마어마했고 미국은 위대한 국가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한 사유가 되었다.

결국 음식과 먹거리를 보면 그 나라 취향과 국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스팸과 땅콩쨈을 마트에서 찾아보면 과자만큼 흔한 시절이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나를 방황하게 만들었던 맛에 대한 미제의 추억은 오랫동안 간직될 것이다.


샤프펜슬


외가를 놀러 갔더니 삼촌이 검은색 일제 플라스틱 연필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필심이 무디어지면 연필 깎는 칼로 손질해서 쓰던 시절인데 외삼촌이 사용 중인 연필은 칼로 깎을 필요도 없고 윗부분을 누르면 가느다란 연필심이 밑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연필심을 다 쓰면 윗부분의 뚜껑을 열고 새 심을 넣게 되면 다시 또 새 연필처럼 쓸 수 있는 일제 연필이었다. 당시 일제는 정확하고 견고함을 자랑하는 전자제품들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시기였고 그러한 플라스틱 연필을 ‘샤프펜슬’이라고 한단다.

샤프는 날카로운, 펜슬은 연필이라는 의미이니 늘 새 것처럼 날카로운 연필이라는 뜻이었다.

사실 나는 속으로 내가 갖고 싶다고 얘기하고 싶었으나 아무리 형 같은 삼촌이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는 ‘갖고 싶다’고 계속 머릿속에서는 외치고 있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오래된 일제 선풍기가 있었는데 지금도 튼튼하게 고장 없이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일제 제품은 오랫동안 쓸 수 있고 가성비도 좋은 1등급 제품을 만드는 나라로 내게 인식되었다. 우리나라를 36년 동안 식민지배를 하며 미국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던 섬나라 일본의 국민성과 저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입증되고 있었는데 이제는 처음 보는 플라스틱 연필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제에 대한 로망을 심어 준 샤프펜슬은 훗날 국산 제품도 생산되면서 아주 흔한 국민 필기구가 되었다. 그 후 연필 깎는 기계도 나왔는데 힘들게 연필을 깎지 않고 기계에 연필을 꽂고 회전 손잡이를 돌리면 깨끗하게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 연필을 깎아 낸다.

연필 깎기 칼에 대한 사용이 서투른 학생들과 어린아이들은 칼에 베일 위험성이 있었는데 이 기계를 사용하면서 연필을 어설프게 깎던 아이들에게 편리함을 선사했다.

국민 연필 샤프펜슬은 연필깎이와 함께 여전히 인기 필수품 들이다.


핫도그와 호떡


학교 근처에는 핫도그와 호떡 가게들이 있었다.

둘 다 밀가루 음식이지만 굳이 구별하자면 핫도그는 서양식, 호떡은 동양식 음식이다.

일단 핫도그는 말만 핫도그였지 핫도그의 상징인 소세지는 엄지 손가락 만한 것이 들어가 있었고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밀가루 덧옷은 비정상적인 비율로 북채처럼 웅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름에 넣고 적당히 부풀려 만들어지면 토마토 케찹을 발라서 먹는데 이게 내 입 맛에는 별미였다. 아마도 기름에 튀겨진 음식이 많지 않았고 기름진 음식은 명절이나 특별한 행사 때 먹을 수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특히 케찹도 핫도그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소스로서 충분한 역할을 했다. 개인적으로 케찹을 좋아해서 그런지 다른 아이들보다 케찹을 잔뜩 발라서 먹을라치면 케찹의 과잉사용이 고까웠던 주인의 냉랭한 시선을 감수해야 했다.

고기도 귀하던 시절 식용유로 튀겨진 핫도그는 대표적인 밀가루 음식으로 큰 환영을 받았다.

호떡은 제작 과정 측면에서 보면 튀김보다는 구워지는 스타일의 중국식 빵인데 팥소는 황설탕을 주로 사용했고 하얀 밀가루와 갈색 황설탕은 보기 좋은 색감을 만들어 내면서 식용유의 고소함과 설탕의 단 맛이 조화를 이루어 든든한 간식이 되어 주었다.

호떡 반죽에 황설탕을 넣고 동그랗게 만든 후 구이판에 얹어서 동그란 주걱 같은 눌림판으로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면서 굽는데 여기저기 밀가루 반죽 사이로 황설탕이 꿀물처럼 새어 나와도 오히려 더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날이 선선 해지는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우리들의 입 맛을 사로잡았던 호떡은 믿음직한 우리들의 대표 먹거리였다.

핫도그와 호떡 중 당신의 선택은?



製材所材料厂


小时候我心中的故乡不是娘家,而是外婆家。

从我家到亲奶奶所在的大家,移动距离很远,在亲家是众多孙子中的一员,但在外婆家是长女的第一位,因此从诞生开始就备受关注,受到了很多人的喜爱。 而且从妈妈的立场来看,比起婆家,娘家在情绪上更舒服,所以我们也跟着妈妈产生更亲近的心,这应该是人之常情。

虽然不知道外公以前做过什么工作,但我记忆中的出发点就是木材加工厂。 根据木材用途的大小重新制作木材的地方就是木材制造所。 记得当时木材作为建筑材料很受欢迎,所以生意很好。

只有在电影中才能看到的大象大小的木材被运送到大型卡车后入库的过程也非常壮观。 因为木材大,所以用叉车搬运到切割场所。

切断树木的锯片变钝后,有重新开刃的机器,在我眼里这是最尖端的装备。 虽然与现在的自动设备存在差异,但是以正确的间隔移动锉刀的自动化工程非常神奇,树木被切断后产生的锯末单独收集起来,在冬天用作锯末炉子的材料。

我现在也怀念在堆积如山的树木上玩耍的那段时光。


PX阿姨


因为当时物资稀缺,所以美军使用的物品经常公然进行交易。

被称为"PX大婶"的人们像小商贩一样出入外婆家,用英语写的俗称"美帝国主义"的使用也是当时财富的象征。

食品让人想起午餐肉、罐头产品、花生酱、巧克力,电子产品还有盒式录音机、立体声唱机。 虽然现在国产电子产品号令世界市场,但当时我国产品刚刚起步,黑白电视机的自身生产也成为了大新闻。

当时非常羡慕观看彩色电视的美国和日本,当时看着黑白电视也笑又哭,但不知何时才能像发达国家一样观看彩色电视。

照片也是黑白时期,电视当然也是黑白占主流。

有一天,奶奶烤了几片新买的午餐肉,放在热乎乎的饭上,独特的美制香肠的香味和湿润的口感,让人在嘴里充分感受到了美国的魅力。 我从垃圾邮件中感受到了美国的力量。 到底对肉做了什么,能长期保存,味道也这么迷人?

在PX阿姨带来的吐司机器上烤面包,抹上花生酱吃,让人不禁想起花生还有这种味道的新天地。

当时,国产巧克力只有手掌那么大,厚度也很薄,但美国产巧克力的厚度和尺寸非常大,足以得出美国是伟大国家的结论。

我认为,最终从食物和食物中可以感受到那个国家的喜好和国力。

现在在超市寻找午餐肉和花生酱的话,已经成为了像饼干一样常见的时期。

但是让我彷徨的美帝对味道的回忆将会长久珍藏。


活心铅笔


去外婆家玩,叔叔正在用黑色塑料铅笔学习。

但是,如果铅笔芯变钝,就会用削铅笔刀修整后使用,舅舅正在使用的铅笔不用用刀削,只要按上部,纤细的铅笔芯就会从下面出来。

铅笔芯用完后,打开上部的盖子放入新笔芯,就可以再次像新铅笔一样使用。 当时是日本帝国主义以准确、坚固而自豪的电子产品在全世界流行的时期,这种塑料铅笔被称为"自动铅笔"

夏普是锋利的笔,铅笔是铅笔的意思,意思是像新的一样锋利的铅笔。

其实,我心里一直想说我想要,但再怎么像哥哥一样的叔叔,怎么也说不出口。 只是心里一直喊着"想要"。

当时,我家里有古老的日产电风扇,现在也牢固地无故障地使用,日产产品可以长时间使用,而且性价比也高,被我认定为是生产一级产品的国家。 曾对韩国进行36年殖民统治,与美国发动太平洋战争的岛国日本的国民性和潜力在各个方面得到了证明,但现在用第一次见到的塑料铅笔抓住了我的心。

给日本帝国主义留下幻想的自动铅笔,后来随着国产产品的生产,成了很常见的国民书写工具。 之后还出现了削笔机,不用费力削铅笔,只要在机器上插上铅笔,转动旋钮,就能干净地每隔一段时间削一次木头铅笔。

对削铅笔刀不熟练的学生和孩子们有被刀割伤的危险,但是使用该机器时,给削铅笔不熟练的孩子们带来了便利。

国民铅笔自动铅笔和削笔刀一样,依然是人气必需品。


热狗和糖饼


学校附近有热狗和糖饼店。

虽然两者都是面食,但如果一定要区分的话,热狗是西式,糖饼是东式。

首先,热狗虽然只是嘴上说热狗,但象征热狗的香肠里有拇指大小的东西,围绕外部的面粉罩衣以不正常的比例像鼓槌一样雄伟。

放入油中适当膨胀后,抹上番茄酱吃,这对我的口味来说别有一番风味。 可能是因为油炸的食物不多,油腻的食物可以在节日或特别活动时吃。 特别是番茄酱作为消除热狗油腻感的调料也起到了充分的作用。 可能是因为我个人比较喜欢番茄酱,所以比其他孩子涂满番茄酱吃的话,主人会觉得番茄酱过度使用很麻烦,所以不得不忍受这种冷漠的视线。

在肉也珍贵的时期,用食用油炸的热狗作为代表性的面食受到了很大的欢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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