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덜썩 큰 내가 친척 집에 가서 곱디고운 이부자리에 오줌을 쌌던 기억이 있다. 도심 근교에 살고 계시던 고모 집에 놀러 갔다. 고모부와 고모 그리고 동년배 여자아이와 나이는 같지만 생월이 몇 달이 빨랐다. 그렇다고 누나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어색해서 이름을 부르던 누나가 있었다. 고모부는 늘 풍채 좋은 모습으로 단정하고 온화한 미소로 기억된다.
당시로서는 훤칠한 장정이었는데 농사도 많이 지셨다.
왜 고모 집에 갔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쌍둥이 아버지 형제를 바로 위 누나들이 한 명씩 배정받아 어린 동생들을 보살펴 주었다고 그러는데 아마도 그러한 예전 인연이 이어지지 않았나 싶은데.
어리지만 손님은 손님인지라 거나하게 저녁상을 잘 차려 먹고 잠자리를 들었는데 어린 손님이 추울까봐 군불도 충분하게 지펴 주셨는데 과식의 영향인지 아니면 여행의 피곤함으로 고추에 힘이 풀렸는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랫도리가 축축하다.
나도 생소한 오줌싸개가 되어 손님용 새하얀 이부자리에 지도를 그리고 말았다.
어린 마음에도 참 난감했다. 오줌 지도를 바라보던 고모부와 고모, 그리고 무엇보다 동년배 누나가 나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얼굴은 빨개지고 숨어야 할 쥐구멍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고추가 움찔거린다.
영화 클래식을 보면 손예진과 조우성이 어둑해진 냇물 가에서 반딧불을 잡으며 사랑을 속삭인다.
반딧불의 야간 공연을 본 적이 있는가?
1급수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까칠한 놈들인데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엉덩이 쪽에 불을 밝힌다.
처음 내가 본 반딧불은 꼬리에 연두 빛이 나는 놈이었는데 멀리서 하늘하늘거리며 날아온다.
내가 신기함과 평온함에 도취되어 두 손을 동그랗게 만들어서 내밀자 손 안으로 들어와 잠시 휴식을 취한다. 미물에 지나지 않을 곤충이 사랑을 위하여 꼬리에 빛을 내자니 힘도 들었겠다.
작은 곤충이 엉덩이에 빛을 내며 자기 짝을 찾아 떠나는 구애의 길이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험한 길을 가는 모두가 기쁨과 고난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지쳐버린다.
“나에게도 반딧불 같은 사랑이 있었답니다.
엉덩이에 켜진 불 정도는 그리 뜨겁지 않게 느끼며 자신을 걸었던 사랑이 있었답니다.”
내 인생에 등목의 첫 경험은 아버지와 함께 했다.
어느 어린 여름날. 축축한 습기가 치고 올라와 선풍기 한 대로 여름을 나는 우리 집의 여건상 다른 해결방법이 있어야 했다. 잠자리도 끕끕하고 습기가 스며들어 그냥은 여름밤을 설치기에 딱 좋은 그런 밤. 아버지와 나는 웃통을 벗고 수돗가에 엎드려 등목을 했다.
더할 나위 없이 시원했고 게얀했다.
등목의 성격상 허리춤에서 등과 어깨를 거쳐서 머리까지 찬물의 영역이 정해지지만 자칫 마무리가 덜 된 상황에서 일어나 버리면 허리 하반신이 젖게 되는데 이것은 시원한 등목의 덤이다. 어차피 등목의 목적이 청량감을 받기 위해서라면 조금 젖은 하반신을 시원하게 같이 말려도 뭐 그리 큰 대수가 되겠는가?
등목을 마치면 엄마는 수박을 쪼개어 내오시는데 수박 맛이 안 좋을 수가 없다.
이렇게 우리네 여름은 더위에 지치고 장마에 지쳐도 여름 벌레 소리와 함께 먹는 수박의 힘으로 한 계절을 버틸 수 있었다.
여름방학 중간이 되면 일 년 중 가장 더운 절기로 어린이들은 새로운 탐험의 길에 나선다.
주변 저수지나 개천을 찾아 물놀이를 떠난다.
어릴 적 해마다 친구들과 물놀이를 갔었는데 어디인지 잘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아마도 물놀이에 대한 기억만 강렬하고 장소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지는 내 추억의 한계인가 보다.
물은 고여 있지만 그리 없을 것 같았던 고기를 낚는다고 저수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냥 빈 어망만 탓하기도 했었고 물 위로 지나가는 수초들을 서로의 방향으로 보내려고 물장난을 쳤던 기억도 새롭다.
내가 나를 보면 수영을 못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물이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지만 깊은 곳에는 쉽게 들어가지 못했다. 물이 나를 집어삼켜버릴 까 봐 겁이 나기도 했고 굳이 발이 안 닿는 곳까지 가서 고생할 필요가 없겠다 싶었던 핑곗거리도 있었다.
여름과 물놀이는 여러모로 친하게 지내야 맑고 건강한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얘들아. 이번 여름에 물놀이 가자."
我记得我以为已经长大了,但突然大起来的我去了亲戚家,尿在了漂亮的被褥上。 去住在市中心近郊的姑姑家玩了。 姑父、姑姑和同龄女孩年龄相同,但出生月早了几个月。 但是,有一位姐姐叫姐姐的话,因为太尴尬了,所以叫了名字。 姑父总是以风度翩翩的样子和蔼可亲的微笑留在人们的记忆中。
当时是个修长的壮汉,种了很多庄稼。
我记不清为什么去了姑姑家。 听说双胞胎父亲兄弟都是姐姐们一个一个分配的,照顾了年幼的弟弟们,大概是以前那种缘分延续下来的吧。
虽然年纪小,但客人还是客人,所以晚饭吃得津津有味,睡觉时,小客人怕冷,还给烧了足够的炕火,不知是受到暴饮暴食的影响,还是因为旅行的疲劳,辣椒没有力气,早上起来一看,下身湿漉漉的。
我也成了陌生的尿床精,在客人用的白色被子上画了地图。
幼小的心灵也非常难堪。 看着尿布地图的姑父和姑姑,还有同龄姐姐以寒心的表情看着我。
脸变红了,藏起来的老鼠洞也在不远的地方。
现在想起那个时候,辣椒还在颤动。
看电影古典音乐的话,孙艺珍和赵宇成在昏暗的小溪边抓住萤火虫,窃窃私语。
你看过萤火虫的夜场吗?
一级水,只生活在清澈的水中的刻薄的家伙们,为了表现爱情,在屁股上点亮了灯。
我第一次看到的萤火虫是尾巴上浅绿色的家伙,从远处飘来飘去。
我陶醉在神奇和平静中,双手圆圆地伸出来,就进到手里休息了一会儿。 昆虫只不过是废物,为了爱情尾巴发光,应该很辛苦吧。
因为无论是小昆虫在屁股上发光,寻找自己的伴侣的求爱之路,还是为了见到心爱的人而走险路的所有人都伴随着喜悦和苦难。 所以很容易疲惫。
"我也有萤火虫般的爱情。
屁股上亮着的灯,感觉不是很火热,有那种把自己挂在身上的爱情。"
我人生中攀爬的第一个经验是和爸爸一起的。
某个幼小的夏天。 潮湿的湿气袭来,用一台电风扇度过夏天的我们家的条件需要其他解决方法。 睡觉的地方又湿又潮,正好适合睡夏天的夜晚。 爸爸和我赤着上身趴在自来水边爬树。
再凉爽不过了。
从背部的性质来看,从腰部到背部和肩膀,再到头部都定下了冷水区域,但稍有不慎,在还没有结束的情况下站起来,下半身就会湿透,这是凉爽的背部的饶头。 反正登木的目的是为了获得清凉感,那么把湿漉漉的下半身一起晾干又有什么大不了的?
爬完树后,妈妈会把西瓜切开,西瓜的味道不可能不好。
就这样,我们的夏天即使酷暑和梅雨季节都疲惫不堪,但凭借着和夏虫声一起吃的西瓜的力量,我们也能坚持一个季节。
一到暑假,一年中最热的节气,孩子们就会踏上新的探险之路。
去周边的水库或小溪玩水。
小时候每年都和朋友们去玩水,但记不清在哪里了。
这可能是我对玩水的记忆强烈,对场所的认知度下降的回忆的界限。
虽然有积水,但为了钓到看似没有的鱼,在水库里垂下鱼竿等待的过程中,因疲惫而只责怪了空渔网,为了把经过水面的水草送到彼此的方向而戏水,这些记忆令人记忆犹新。
我看自己好像不会游泳。 虽然并不害怕水,但也不能轻易进入深处。 担心水会吞噬我,也有没必要非得走到脚够不到的地方受苦的借口。
夏天和玩水要多方面亲密相处,才能留下明朗健康的回忆。
"孩子们,今年夏天去玩水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