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초교 이야기 12

by 제이킴

엿장수


예전에는 공병이나 헌 책, 헌 고무신 등을 주면 엿으로 바꾸어 주는 엿장수 아저씨가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자원 재활용의 첨병이었는데 엿장수가 철컥거리며 가지고 다니는 커다란 엿 치는 가위는 특유의 리듬감을 뽐내며 아이들의 시선을 강탈했다.

당시 집집마다 안 쓰는 공병이나 헌 책들이 정리되면서 어린이들은 자신들의 주전부리를 입에 달고 놀 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폐품수집을 한답시고 헌 책을 수거했는데 엿장수는 엿이라도 주는데 학교에서는 헌 책만 걷어 갔다.

지금이야 분리수거를 하면 멀쩡한 책이나 신문지를 그냥 버리지만 당시에는 물자가 귀해서 인지 신문은 잘라서 화장지로 사용하고 책은 웬만해서는 버리는 경우가 드물었다.

요즘은 철컥거리는 엿가위를 지자체 지역행사에서나 볼 수 있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먹거리가 풍족해서 엿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나 보다.

“호박엿이 왔어요. 철컥철컥. 헌 책이나 헌 병 팔아요. 철컥철컥”


찹쌀떡 메밀묵


늦은 가을밤. 심야가 시작되는 10시경이면 골목을 돌아다니며 ‘찹쌀떡 메밀묵’을 외치는 아저씨가 있었다.

찹쌀떡 앞부분은 고음으로 메밀묵은 저음으로 구성진 가락이 넘치는데 이 외침에 반응을 보이는 대상들은 이른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배가 허전했던 개구쟁이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어린이들 입에는 쌉쌀한 메밀묵보다는 촉촉한 찹쌀떡의 단 맛이 매력적인데 진초록의 잎사귀에 쌓여 있었다. 청미래 잎인데 경남 의령에서는 망개떡으로 불리는 찹쌀떡을 청미래 잎을 쪄서 싸면 잘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기에는 잎사귀에 쌓인 떡이라서 그런지 더욱 사연이 있어 보이고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청미래 뿌리는 토복령으로 불리는 약재로 쓰이며 전분이 많아 흉년에는 구황 음식으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메밀묵은 동치미 육수를 시원하게 부어 먹으면 별미로 쳐주지만 어린 시절 아이들의 입 맛에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는데 텁텁한 뒷 맛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이를 먹게 되면 단 맛의 유혹도 여전히 강렬하지만 어릴 때 잠시 머물다 간 쌉쌀했던 혀의 기억이나 잔잔하게 여운을 주었던 추억의 먹거리들을 찾게 되는데 아마도 인생의 쓴 맛과 단 맛을 경험했기 때문이리라.

"잘 아시잖습니까. 저도 인생의 쓴 맛, 단 맛을 다 맛본 사람입니다."


약장수


볼거리가 적었던 예전에는 큰 북소리와 함께 떠들썩 해지면 약장수가 왔다는 신호였다.

큰 북에 장착된 다양한 악기들을 악사 한 명이 발 한쪽에 끈을 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다른 한쪽에 연결된 북채가 악사 등에 있는 큰 북을 연주하고 다른 한 발은 북 위에 있는

심벌즈나 탬버린과 연결되어서 혼자 하는 공연 치고는 제법 흥이 났었다.

맨 손으로 돌을 깨는 차력사도 있었고 뱀을 들고 다니며 선전을 하는데 약장수 인지 뱀장수 인지 헛갈리게 만들기도 했지만 아이들이야 공짜로 즐기는 눈요기 감으로는 이 만한 것이 없었다.

당시 서커스는 유료였고 약장수 공연은 무료였는데 1차 공연이 끝나면 곧 2부 공연을 준비한다며 약장사를 시작하는데 나도 여러 번 앞자리를 차지하고 눈과 귀를 열어 놓고 있었다.

어린이들의 많으면 구충제, 어른이 많으면 피부병에 좋다는 특효약들이 눈 앞에서 왔다 갔다 한다.

지금도 생각나는 불가사의한 장면은 우리 동네 아이한테 현장에서 즉석 해서 구충제를 먹이고 잠시 후 아이를 들어 엉덩이를 까면 항문으로 회충이 나오는 것을 보여주는 리얼쇼가 하이라이트였다.

상상이 가는가? 어느 아이가 기생충이 있는 줄 알고 약을 먹일 것이며 약을 먹였다고 회충이 다 나오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바꿔서 말하면 그 당시에는 아이들의 기생충 감염률이 높아서 아무 아이나 먹이고 기다리면 실패할 확률이 낮았다는 이야기로 이해하자.

내 눈 앞에서 보이는데 무슨 속임수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학교에서도 기생충 박멸 목적의 계몽영화를 만들어서 1년에 1-2회씩 강당에서 보여주곤 했었다.

봄, 가을에 한 번씩 전 가족이 구충제를 함께 복용할 일이다.


대변 검사


사실 똥이라는 것이 좀 그렇다. 내가 먹고 내가 싸는데 냄새가 구려서 내용물도 구리게 보이는데 소중한 내 몸을 지탱하려고 먹은 음식 가운데 쓸모 있는 영양분을 섭취하고 남았거나 쓸모가 없어진 잡동사니들을 밖으로 배출하는 작업이 아니던가. 결국 고마운 삶의 흔적이란 말이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매년 정기적으로 대변검사를 한다고 자신의 똥을 떠다가 채변봉투에 넣어서 학교에 제출하면 얼마 후 검사 결과를 가지고 구충제를 나누어 주던 정기행사가 있었다.

엉뚱한 놈들은 다른 놈의 똥이나 개똥을 넣어서 제출했다가 사람한테는 없는 기생충이 발견되어 담임선생님이나 양호선생님한테 혼나는 녀석들이 꼭 있었다.

푸세식 화장실의 대소변들은 농사에는 필요한 거름이 되어 주었는데 봄철 똥장군을 지고 밭에 거름을 주게 되면 주변 반경 5킬로 정도를 고약한 냄새가 한 달 정도 맴돌았다.

여학교 주변에 밭이 많았다면 여학생들이 그 시절에는 코를 막고 등하교를 하는 모습은 매우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오직 했으면 서양의 하이힐이 거리에 나뒹구는 똥덩이들을 밟지 않기 위해서 높은 굽의 신발이 필요했던 것이고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정에는 화장실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높으신 나리들은 밖에 정원이나 한국식 요강으로 용변을 처리했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용변을 해결하는 문제는 신분이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다 해결방법이 있었다.

예전에는 화장실이 모두 푸세식 스타일이라서 분뇨차가 화장실에 모아 놓은 똥오줌을 수거해 갔다. 똥오줌도 시골에서 중요한 집안의 자산이라서 밖에서 똥이나 오줌을 참았다가 집에 와서 해결하라는 할마씨들이 있었다.

“야. 이 놈아. 귀한 거름을 왜 남의 뒷간에 뿌리고 다녀. 꼭 집에 와서 보그라.”



糖贩子


以前有位卖糖的大叔,只要给工兵、旧书、旧胶鞋等,就会换成麦芽糖。

用现在的话来说,是资源再利用的尖兵,但麦芽糖贩啪啪啪地随身携带的大麦芽糖剪刀展现了特有的节奏感,抢夺了孩子们的视线。

当时,随着家家户户整理不用的工兵或旧书,孩子们可以把自己的零食挂在嘴边玩。

现在回想起来,学校说要定期收集废品,回收了旧书,但是麦芽糖贩子给麦芽糖,学校却只收走了旧书。

现在如果进行分类回收,就会直接扔掉正常的书或报纸,但当时可能是因为物资稀缺,报纸被剪下来用作卫生纸,书一般情况下很少扔掉。

最近,在地方自治团体地区活动中才能看到咔嚓咔嚓的麦芽糖,但是现在的孩子们因为食物丰富,好像感受不到麦芽糖的魅力。

"南瓜饴糖来了。 啪嗒啪嗒。 卖旧书或者旧瓶。 啪嗒啪嗒"


荞麦凉粉


深秋的夜晚。 深夜开始的10点左右,有个叔叔在胡同里走来走去,高喊"糯米糕、荞麦凉粉"

糯米糕的前半部分用高音和荞麦凉粉的低音充满了婉转的曲调,对这一呼声做出反应的对象们,对于吃完晚饭后肚子很空荡荡的淘气鬼来说,这是不可避免的诱惑。

比起苦涩的荞麦凉粉,湿润的糯米糕的甜味更有魅力,堆积在深绿色的叶子中。 据说,在庆南宜宁被称为"菝葜糕"的糯米糕蒸熟后包上清未来的叶子,不容易变质。 可能是因为叶子上的糕点,所以看起来更有故事感,看起来更有食欲。 据说,清未来根被用作被称为土茯苓的药材,富含淀粉,在灾年起到了救荒食物的作用。

荞麦凉粉把萝卜水辛奇高汤倒入凉爽的汤里吃的话,会被认为是美味佳肴,但是小时候对孩子们的口味没有太大的吸引力,可能是因为苦涩的余味。

随着年龄的增长,甜味的诱惑仍然很强,但是小时候暂时停留过一段时间,会寻找舌头的记忆或淡淡的余韵,也许是因为体验了人生的苦味和甜味。

"您不是很清楚嘛。 我也尝到了人生的苦头和甜头。"


药贩子


在看点少的以前,如果伴随着巨大的鼓声喧哗,就是药贩子来的信号。

一个乐师用一根绳子把安装在鼓上的各种乐器挂在脚的一边来回走动,另一边连接的鼓槌就会演奏乐师背上的大鼓,另一只脚在鼓上。

虽然与符号乐队和铃鼓乐队相连,但作为一个人进行的演出来说,还是相当兴奋的。

有徒手砸石头的养生师,也有拿着蛇到处宣传,让人混淆是药贩子还是蛇贩子,但是孩子们免费享受的眼福感没有比这更好的了。

当时马戏团是收费的,药贩子演出是免费的,但是第一场演出结束后马上要准备第二部演出,开始卖药,我也多次占据前面,眼睛和耳朵都敞开了。

儿童多的话是驱虫剂,大人多的话是对皮肤病有好处的特效药在眼前来回穿梭。

现在也想起的不可思议的场面是,在现场给小区里的孩子喂驱虫剂,稍后把孩子抬起来剥屁股,肛门就会出现蛔虫的真人秀。

能想象到吗? 哪个孩子会以为有寄生虫,给他吃药,即使给他吃药,蛔虫也不会全部出来。 换句话说,当时孩子们的寄生虫感染率很高,所以随便喂孩子等的话,失败的概率很低。

就在我眼前,能有什么花招呢?

学校也制作了以消灭寄生虫为目的的启蒙电影,每年在礼堂展示1-2次。

春天和秋天,全家人要一起服用驱虫剂。


验大便


其实屎这个东西有点那样。 我吃完后,我包起来很便宜,但是因为味道很臭,内容物看起来也很臭,所以为了支撑我珍贵的身体,从吃的食物中摄取有用的营养成分,把剩下的或没用的杂物排出体外。 归根结底,这是值得感谢的人生痕迹。

虽然不知道现在还有没有,但是每年定期进行大便检查,把自己的粪便捞出来,放进采便袋里提交给学校,不久后就会用检查结果分发驱虫剂。

荒唐的家伙们把其他家伙的粪便或狗屎放进去提交后,发现了人没有的寄生虫,一定会被班主任或保健老师训。

普世式厕所的大小便成了农活所需的肥料,春季背着粪便给农田施肥的话,周围半径5公里左右的难闻气味会萦绕一个月左右。

如果说女子学校周围有很多旱田,那么女学生们在那个时期捂着鼻子上下学的样子是非常自然的情景。

据说,如果做的话,西方的高跟鞋为了不踩到散落在街上的粪球,需要高跟鞋,路易十四的凡尔赛宫廷里没有卫生间。

高老爷们用外面的庭院或韩式尿盆处理便便。

古今中外解决便便的问题,身份高则高,身份低则低,都有解决方法。

以前厕所都是抽粪式的,粪车把厕所里的粪便收走。 粪便也是农村重要的家庭资产,所以有奶奶在外面憋着屎或尿,回家解决。

"喂,你这家伙。 为什么往别人的厕所里撒珍贵的肥料。 一定要来家里看。"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추억 일기 : 초교 이야기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