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중학생 이야기 1

by 제이킴

근거리 중학교


초교도 그리 멀지 않았는데 뺑뺑이로 배정된 중학교는 초교보다 더 가까운 곳이었다.

학교 등교는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었기에 서둘러 나올 필요가 별로 없었다.

집이 가까운 아이들이 지각한다고 나는 거의 매일을 턱걸이 시간쯤 내 의자에 앉았는데 멀리서 다니는 친구들은 한시 간 이상을 통학하며 열심히 공부를 했다. 나는 그 멀리서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자전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어린 마음에 그게 부러웠다.


그때는 별게 다 부럽다.

중학생 시절 만난 친구들과 좋은 인연을 잘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기를 맞이하는 첫 관문인 중학교의 입학은 검은색으로 통일된 교복과 빡빡이 머리와 연결되는데 머리는 왜 빡빡 밀어 놓고 모자를 쓰라고 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 시대의 유물이다. 지금 아이들에게 공부가 잘 되고 정신집중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빡빡이를 만들어서 검은색 교복을 입힐 수 있을까?

아니다. 너무 억지스럽다.


교복과 빡빡이


지금 생각하면 당시 중고생들의 민들 머리와 검은색 유니폼 교복은 일제의 잔재로 보인다.

머리를 빡빡이로 깎고 교복을 입어서 공부에 더 집중이된다는 학설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근거일까? 국기 하강식, 국민교육헌장, 충효사상이 강조되는 시절이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역시 일제의 잔재와 반공의 영향으로 생각한다.


특히 국기 하강식은 전 국토에 애국가가 연주되면 가던 길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은 후 애국가가 들리는 방향을 응시했다. 차들도 우선 정차한 후 애국가가 끝나면 다시 출발하던 시절이었고 한 달에 한 번씩 민방공 훈련을 의무적으로 실시했다.

반공이 국시였던 당시에 중고생들은 유사시 전쟁에 투입될 수 있도록 교련교육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반공은 국가의 존망을 결정할 수 있는 주요 근간이 되어 우리 사회 전반에 다양한 영향을 끼쳤다.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


Bariquant바리깡


당시 빡빡이 머리도 길어지면 선도부 학생들이나 체육 선생님들이 바리깡을 준비해서 사정없이 밀어버렸다. 도로가 난 머리는 하교 후 이발소에 들러서 도로 낸 주변머리와 표시가 덜 나게 마무리를 해주던 이발소 아저씨들의 솜씨도 참 좋았다.

그렇게 두발 검사에 대한 후속 마무리를 하는데 그 과정도 그 시절에 가능한 일종의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바리깡이 일본어인 줄 알았다. 검색을 해 보니 어원이 프랑스어 차용이며 ‘바리캉 에 마르’ 회사의 제품인데 19세기 일본에 소개되면서 바리깡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인기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중/고 시절과 군대에서 바리깡에 대한 추억이 없는 남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바리깡에 대한 추억이 몇 개가 있다. 한번은 중학교 친구의 뒷머리를 바리깡으로 장난처럼 밀었는데 정도가 심해서 친구한테 미안했다. 얼마 후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 어머니가 내가 저지른 바리깡 사건에 대하여 말씀하셔서 죄송한 마음에 혼줄이 났었다.


다른 추억은 불친이 군대를 간다고 바리깡을 준비하여 머리를 깎다가 힘이 들어서 가위로 초벌 이발을 하던 중 귀에 상처를 냈었다. 정말로 미안했던 추억으로 더 큰 문제는 그 자리에 지금 그 친구의 부인이 된 여친이 보고 있었는데 내가 장난처럼 귀에 낸 상처는 아마도 그 여친의 가슴에도 상처로 남아 불편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이 그 부인과 지금도 연락하며 잘 지내고 있지만 당시의 미안했던 마음은 분명 미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바리깡을 쓰기는 하지만 전동 바리깡이 대세이기에 오랜 시간을 사랑을 받아온 수동 바리깡맨들은 어디서 자신들의 추억을 되새기고 있을까?

“바리깡이여 영원하라”

미션스쿨


모교는 천주교 재단에서 설립하여 여중/여고 2곳, 남중/남고 2곳 등 총 4곳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고 종교 시간에 수녀님이 선생님으로 활동하시면서 주기도문, 사도신경 등을 가르쳐 주셨다.

미션 스쿨의 특성상 주 1시간씩 교리 공부를 하며 수녀님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학교 뒤 편에는 천주교 성지가 있어서 천주교의 주요 기념일이 되면 일부 신자들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방문하여 순교자의 넋을 기렸다.

교가에도 종교적인 신념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거룩한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내용이 있다.

“… 순교의 피로 다진 거룩한 이 곳…”


목숨보다 더 값어치 있는 희생이 무엇이 있겠으며 아무나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고 본다. 숲정이에 묻히신 순교자들의 거룩한 희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미션스쿨이라고 해서 종교적인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았고 교리 공부를 통한 깨달음의 기회를 주려는 측면이 더 강했다. 수녀님의 맑은 음성과 형형한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배운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기도문이 아직도 기억이 나고 내 인생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선한 삶의 기준은 부모님의 가르침과 모교의 천주교 사상에서 형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부디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近地中学


离小学也不远,但被分配到转盘的中学比小学更近。

因为离上学不到10分钟,所以没有必要着急出门。

因为离家近的孩子们迟到,我几乎每天都在引体向上坐在椅子上,远处的朋友们通勤学习了一个多小时。 我羡慕那些远道而来的朋友们。 骑自行车或坐公交车,小时候很羡慕这一点。

那时候什么都很羡慕。

和初中时认识的朋友们保持着很好的缘分。 中学的入学是迎接青少年时期的第一道关口,与统一成黑色的校服和光头相连接,但为什么剃光头后让学生戴帽子呢?

突然开始好奇了。 怎么想都是旧时代的遗物。 现在给孩子解释学习好,有助于集中精神,还能回到从前吗?

我能做光头穿黑色校服吗?

不对。太牵强了。


校服和光头


现在回想起来,当时初高中生的秃头和黑色制服都是日本帝国主义的残余。

剃光头穿校服,更容易集中学习的学说到底是从哪里来的根据呢? 当时是强调国旗下降仪式、国民教育宪章、忠孝思想的时期,在我看来,还是受到了日本帝国主义的残余和反共的影响。

特别是国旗下降仪式,如果全国国土上演奏爱国歌,就会停下脚步,把手放在胸前,凝视着能听到爱国歌的方向。 当时车辆也都是先停车,国歌结束后再出发,每个月都要义务性地进行一次防空训练。

在反共为国时,初高中生正在接受训练教育,以便在发生战争时投入战争。

因此,反共成为决定国家存亡的主要基础,对整个韩国社会产生了多种影响。

"打败共产党,打败金日成"


剪发刀


当时光头也变长的话,学生指导部学生和体育老师们会准备剃光头,毫不留情地剃掉。 道路修好的头发,放学后去理发店修整周边的头发和没有标记的理发店大叔的手艺也非常好。

就这样结束头发检查的后续工作,这个过程也可以说是那个时期可能的一种喜剧。

我还以为"bargang"是日语呢。 搜索后发现,词源是法语借用的,是"巴里康埃马尔"公司的产品,19世纪被介绍到日本后被称为巴里康。

虽然不知道在法国是否有人气,但我认为在初中/高中时期和军队中,没有男人没有关于巴里康的回忆。 我个人也有几个关于巴里康的回忆。 有一次,他用推子把初中朋友的后面头发推得像开玩笑一样,但程度太严重了,对不起朋友。 不久后去朋友家玩的时候,朋友的母亲说了我做的车匪事件,感到很抱歉,所以被训了一顿。

其他回忆是,准备去服兵役的驮子,剃头时太累了,用剪刀初剪时耳朵受了伤。 作为非常抱歉的回忆,更大的问题是,现在成为那位朋友妻子的女朋友在看着,我开玩笑似的耳朵上留下的伤痕,也许在女朋友的心里也会留下伤痕,成为不便的回忆。 当然,虽然现在也和夫人保持联系,相处得很好,但当时的愧疚之情分明是愧疚的。

虽然最近使用的是"bargange",但由于电动bargange是大势所趋,所以长时间受到喜爱的手动bargange man们在哪里回味着自己的回忆呢?

"巴里康啊 永远吧"


教会学校


母校由天主教财团设立,运营着女子中学/女子高中2所、南中学/男高中2所等共4所学校,在宗教课上修女作为老师活动时,教会了主祷文、使徒神经等。

任务学校的特性是每周学习1个小时的教理,倾听修女们的话。

学校后面是天主教圣地,每到天主教的主要纪念日,部分信徒就会不远万里前来祭奠殉教者的灵魂。

校歌中也有铭记以宗教信仰迎接死亡的神圣殉教者的内容。

“… 用殉教的鲜血铸就的圣洁之地…”

没有比生命更有价值的牺牲,我认为这不是任何人都能做到的领域。 让我们再次回顾一下埋在树林里的殉教者的神圣牺牲。

任务学校并没有强迫宗教性的选择,而是想通过学习教理给予领悟的机会。 我还记得修女清脆的声音和炯炯有神的眼神。

当时学到的主祈祷文和使徒神经祈祷文至今还记得,我人生中流淌的善良生活标准是不是在父母的教导和母校的天主教思想中形成的。

"敬请俯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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