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최고의 빌런은 누가 될 것인가?
삼일 후에 공개합니다.
길고 긴 추석 연휴다.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날까지 합치면 무려 6일. 그 중 절반이 지났다. 추석은 끝났고 시댁과 친정을 오가는 2박 3일의 코스도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큰 사건사고와 이벤트 없이 지나간 모처럼의 명절이었는데 왜 마음 한구석이 허한지 모르겠다. 이건 아마도 내가 결혼 10년차를 맞이하면서, 어느 정도 철이 났기에 드는 생각일 것이다.
우리 친정은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사실 명절에 뭔가 특정 음식을 꼭 해야 된다거나, 어떤 규칙을 꼭 해내야 하는 것이 없다. 그저 원하는 음식을 해서 먹고, 오랜만에 만났으니 술잔이나 즐겁게 기울이면 그만이다. 그런데 나와 오빠가 남매이다보니, 나는 시댁에 다녀와야하고 오빠는 여기가 본가다. 한마디로 우리는 명절날 만나면 안 되는 사이인 것이다. 며느리인 내가 시댁에서 명절 전날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친정에 왔다면, 이 집 며느리도 그 시간에는 당연히 자기 친정으로 향했어야 이치가 맞다. 내 딸이 친정에 도착했다면 남의 딸도 자연스럽게 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처음 몇 년 동안 그 사실을 꽤나 못마땅해했다. 당신도 누군가의 딸이었지만, 그 사실은 시어머니가 되면 자연스레 잊혀지는 모양이다. 평소에 자주 못 만나니, 엄마는 내가 도착할 때까지 새언니에게 집에 가지 말고 기다렸다가 인사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당연히 전날부터 우리집에 있었던 새언니에게는 그 소리가 달가울 리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서둘러 온다고 해도, 시댁에서 아침을 차려 먹고 치우고 다시 준비해서 친정에 오면 점심때가 넘었다. 엄마의 성화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도착해보면 새언니는 이미 입이 한 사발은 나와 있었고 오빠는 새언니 등쌀을 견디느라 함께 튀어나온 입으로 인사를 했다. 아니, 대체 이렇게 인사를 나누어 무엇 한단 말인가! 나는 이 상황이 서로가 불편하다는 것을 엄마에게 수차례 얘기했지만 엄마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아빠가 나서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오빠내외에게 설날에는 관례대로 시댁에 먼저 오고 다음날 가고, 추석에는 친정에 먼저 다녀와서 명절날 오라고 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설날에는 안 만나고, 추석에는 우리와 1박 2일을 만나는 일정을 만든 것이다. 우리 친정부모님은 테라스가 있는 복층빌라에 사신다. 큰 기상이변이 없는 한 추석때쯤이면 날씨가 무척 좋아 테라스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캠핑 기분을 내기에 그만이다. 양쪽 집에는 미취학 남자아이만 3명,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도 추운 겨울보다는 상쾌한 가을날이 백번 낫기에 그렇게 내려진 결정이었다.
사실 나는, 아빠의 이 결정이 처음에 무척 내키지 않았다. "아니, 내가 내내 시댁에서 고생하고 와서 친정에 와서도 또 눈치를 봐야 하는거야?" 요새 시누이 시집살이니 눈치니 하는것은 진짜 옛말이다. 요새 새언니들은 결혼해서 이미 출가한 시누이의 존재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눈치는 내가 봐야 할 판이다. 친정에 왔으니 다리도 좀 펴고 싶고, 좀 드러눕고 싶은데 내가 소파에 앉는 순간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던 그릇 소리가 어쩐지 방금보다 좀 더 커진 듯한 착각이 든다. 어디선가 따끔한 시선이 느껴져서 보면, 그때까지 눈치 못차리던 새언니 남편은 날랜 걸음으로 주방으로 뛰어가 고무장갑을 넘겨받는 시늉을 한다. 그 모습을 보는 엄마는 애꿏은 나를 째려본다. 이상하게도 친정에 오면 최종 빌런은 내가 된다. 결국 나는 친정에 오면 강제로 센스있는 시누이가 되어 바지런히 주방을 오가고 눈치껏 일을 돕는다. 그래야 내 남편이 처가에 와서 덩달아 눈총받는 불상사를 피할 수가 있다. 여러모로 상황이 눈치게임이다.
그래도 올해 모여보니 아이들이 조금씩 크면서 우리의 문화도 자리를 조금 잡아가는 듯 하다. 처음에는 사소한 부분까지 어렵고 불편했었다. 이미 각자의 친정과 시댁에서 술 한잔 거나하게 하고 모인 후이다 보니, 이틀 연속 술을 마시고 기름진 음식을 먹기가 편치 않았다. 게다가 전날 쌓인 숙취도 피곤함에 한몫하곤 했다. 연휴 첫 날을 쓸쓸하게 둘이 보내다가 식구들이 당일에 모두 모였으니 부모님은 텐션이 잔뜩 오른 상황이지만, 자식들이 그 마음을 알아주기가 힘에 부쳤다. 음식도 문제였다. 당일날 모이려니 명절음식을 그때부터 만들기도 애매하고, 아이들이 뛰는 통에 프라이팬 한번 들었다 놓기가 쉽지가 않았다. 결국 늙은 부모는 추석 하루라도 자식들이 모여 편히 밥 먹었으면 하는 바람에, 전날 명절음식을 본인들이 모두 만들기 시작했다. 몇년 전부터 추석날 도착해보면 엄마는 으레 음식장만을 하다가 몸살이 나 있고 아빠는 덩달아 엄마 시중을 들다가 지쳐있곤 한다. 그래도 자식들이 양손가득 선물도 사 오고, 고기도 굽고 손자들도 뛰놀고 하면 어른들은 그 맛에 피로를 또 잊는 것 같다. 내내 기침을 해대던 엄마도 손자들의 뽀뽀세례에 점차 기력을 회복하더니 놀라운 회복력으로 부엌을 지휘하여 아홉명 분의 황태국을 끓여냈다. 칠십대 중반의 아빠는 삼사십대들과 호흡맞춰 술 한잔 하느라 얼굴이 벌겋지만 그래도 내내 즐거워보였다. 우리집 말썽쟁이 두 녀석도, 오빠네 외동아들도 한데 모아놓으니 싸우고 놀면서 자기들끼리의 질서를 잡아갔다. 한 박스 가득 준비한 맥주는 금세 동이 났다. 어른들이 먼저 자리를 물러났고, 남은 우리 두 부부는 각자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하룻밤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이들이 자야 하는 시간이 있으니, 자리는 자정 즈음에 자연스럽게 파했다. 각자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흐름이었다.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역량껏 행동하지 않으면 절대로 좋을 수 없는 것이 가족관계라고 생각한다.
명절이 되면 브런치도, 단체톡방도, 라디오 게시판들도 곳곳이 시끄러워진다. 명절 빌런들은 어디에나 있고 '아직도 이런 소리를 한다고?'싶은 발언들도 넘치듯 쏟아져 나온다. 화려하다못해 부러질듯 차려진 제삿상 사진은 정말이지 '당장 도망쳐!'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아직도 우리나라 명절 문화는 허례허식도 많고, 갈등도 많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나도 어느새 결혼생활 십 년, 아이 둘을 키우며 명절을 벌써 스무 번째 치르고 있지만 매번 연휴를 시작하기 전 마음을 새로이 다잡는다. 어차피 명절은 내가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형식을 바꾼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다. 어른들은 아무리 간소화하자고 이야기해도 전을 굽고 잡채와 떡, 갈비찜 따위가 올라와야 명절 상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고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친척들도 마찬가지다. 매일 보는 사람들도 아닌데 대화가 끊기지 않고 매끄럽게 흘러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대화랍시고 건넬 수 있는 이야기는 잔소리이거나 꼰대같은 소리밖에는 없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그저 최종 빌런으로 선정되지 않도록 할 도리는 하고, 취할 태도는 취하고, 즐길 부분은 즐길 수 있는 너그러움이 필요한 72시간을 잘 보내면 된다. 질문은 할 수 있지만 '대답을 강요하면' 꼰대가 된다는 말처럼, 우리도 명절이라는 문화에 질문은 던지되 대답을 강요하지 않으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이 시간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기껏 소중한 내 삶의 72시간이나 써 놓고 '이번 명절 최고의 빌런은 너였어!'라고 선정되면 여러모로 맘 상하지 않겠는가.
추석은 끝났지만 설은 생각보다 금방 온다. 나는 다음 설까지 또 즐거이 명절을 잊고 살고, 설이 다가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72시간을 내어줄 준비를 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