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노인 복지 정책을 변화시킨 책, <노인복지혁명>
그녀는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연금으로 생활한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왼쪽 손발이 부자유스럽고, 기저귀를 사용한다. 이런 사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잠옷 비슷한 옷을 입고 누워있고, 무표정한 얼굴에 눈은 주로 감고 있거나 뜨고 있어도 특별히 무엇을 바라보는 일 없이 멍하다. 우리의 상상력에 딱 들어맞는 익숙한 노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책의 사진에 있는 여성의 모습은 우리의 상상의 범위 안에 있지 않다. 그녀는 덴마크의 데이센터(노인들이 주간에 다니는 곳)를 이용하고 있으며, 연분홍 바탕의 꽃잎 무늬 드레스를 입고 있고, 잘 다듬어진 은발 머리에 귀고리를 하고 립스틱을 바르고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다. 오래전에 출판된 책이어선지 흑백의 작은 사진인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 우아함과 기품이 읽는 나에게 충분히 전해져왔다.
저자는 1970년 동료 기자인 자신의 남편을 정신병원에 알코올 중독자로 위장 잠입시켰다. 그리고는 폐쇄된 정신병원의 내막을 고발하는 ‘정신병원 르포’를 연재하여, 오늘날 정신병원 개방의 기수 역할을 했다.
1990년 초판이 발행된 후 21판까지 나온 (한국어판이 나온 1998년의 이야기니 그 이후 더 출판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노인복지혁명』은 ‘일본의 노인 복지 정책을 변화시킨 책’이라고 불린다. 이 책의 한국어판 판권 교섭에서 그녀는 “저자의 염원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번역된 이 책을 읽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한국이 일본이 거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복지국가가 된다면, 저는 충분히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라며 판권을 사양하였다. 참, 여러모로 평범하지가 않다~!
그녀에게 우리는 충분히 보상했을까? 확실히 아닌 것 같다. 지금 우리의 노인 복지 제도는 일본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는커녕 그보다 한참 뒤처져 있고, 일본이 너무 부러울 지경이다. 그래서 좀 더 인간적인 노년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연구를 위해 일본을 찾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안,타,깝,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그 어느 나라도 원래 그렇게 인간적이고 풍요로운 나라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노력, 많은 이들의 합의와 참여를 통해 그 인간다움과 풍요가 현실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위안을 얻고 희망을 품는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2000년 전후였고, 그 이후에 절판되었다. 꽤 오래됐는데도 ‘사람을 보는 눈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구나~!’라며 읽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우리 책 모임에서도 같이 읽게 되었다. 지금 읽어도 40년 전 북유럽의 ‘사람을 보는 눈’은 여전히 나를 놀라게 했다.
우리 사회의 복지 역시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진 것 같은데, 나는 책 속에 등장하는 노인들의 당당함에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하며 마음을 졸이곤 했다. 그들의 당당함은 갑질이 아니었고, 그냥 보통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한 필요와 욕구를 눈치 보지 않고 당연히 누릴 뿐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이런 사회야말로 진정으로 ‘풍요로운’ 사회로구나 하는 감탄이 이어졌다.
저자는 84년에 <아사히신문> 최초의 여성 논설위원이 된 기자이다. 주로 과학‧기술‧의학 등 과학부의 일을 하다가, 복지와 연금에 관한 부분까지 담당 분야가 넓어졌다. 그녀는 넋 잃은 표정으로 몸져누운 노인들, 삶의 즐거움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그들의 모습이 특히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가 일본보다 고령화가 훨씬 더 진행된 유럽 나라들을 방문해 보면, 무언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나올 당시 일본은 인구의 11%가 65세 이상이었고, 덴마크는 16%였다. 1985년 그녀는 헝가리, 오스트리아, 서독, 스웨덴, 덴마크를 여행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논설을 썼다. ‘정말 이렇게 단정해 버려도 괜찮을까?’라는 의문을 품은 채로. 저자는 논설을 쓰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몸져누운 노인’은 만국 공통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래는 논설의 일부이다.
< 일찍이 고령사회에 들어선 국가에는 ‘네다키리 노인’(몸져누운 노인)에 대응하는 낱말이 없다. 일본에서는 침상에 누워 있어야 할 만한 사람들도 그곳에선 휠체어에 타거나 보행기를 이용해 ‘걷고’ 있었다. >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저자가 꼼꼼히 보지 않았거나, 그쪽에서 좋은 곳만 보여줬을 것이라고. 저자 역시 ‘어딘가에 몸져누운 노인의 집단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버리지 못한 채로, 87년 의과대학 그룹과 함께 덴마크를 다시 방문했다.
그러나 ‘몸져누운 노인’을 발견하는 데는 실패했다. 죽음이 임박한 사람, ‘오늘은 누워있고 싶어서’, 의식불명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사람 외에는 누워있는 사람이 없었다. 복지 수준이 덴마크 지자체 중 ‘중하’ 정도인 지역의 요양원 4곳을 방문하는 동안 누워있는 사람은 4명이었다.
지난해 우리 사회는 초고령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 왜 휠체어를 탄 노인을 길거리에서, 마트에서, 백화점에서 거의 볼 수가 없는가? 우리 사회에서는 스스로 걷기가 힘들어지면 집에서 못 나오는 게 당연하고, 그렇게 살다가 요양병원이든 요양원이든 시설로 가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수순이다. 압축 성장의 시간을 달려온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가 고작 이런 막다른 골목이라면, 너무 비참하고 초라하지 않은가? 우리는 이렇게 막다른 골목을 목표로 전력 질주해온 것인가? 도,대,체, 왜?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휠체어를 탄 노인들을 길거리, 식당, 상점가 등에서 종종 보게 되는데, 그것은 왜 그런가? 유럽은 우리가 선망하는, 원래 훌륭한 나라들이라서 그 역시 당연한가?
이제 우리는 원치 않더라도 이런 질문 앞에 서도록 떠밀려지고 있다. 이 책은 몸져누운 노인들의 넋 잃은 표정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저자가 써 내려간 열정 어린 ‘혁명서’이다. 이 혁명서가 우리의 지난했던 삶을 되돌아보고, 지금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를 멈추어 생각해보고, 앞으로 어디를 향해 어떤 속도로 우리네 삶을 꾸려가야 할지를 궁리하는 데 매력적인 교과서가 되어주리라 확신한다. 안타깝게 절판이 되었지만, 중고 구입은 가능하니 일독을 권한다. 놀라운 사례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