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말리세르' 운동을 아시나요?
“오늘 만난 분들은 지금의 덴마크라면 모두 일어나 휠체어로 돌아다니고 있을 분들입니다. 덴마크에서는 입밖에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자립하고 있으니까요.”
덴마크의 각 도에는 장애인들을 위한 보조기구센터가 1개씩 있다. 1988년 한 센터의 소장이 일본의 몸져누운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고 나서 한 말이다.
“20년 전, 내가 작업요법사로 일하기 시작했던 무렵에는 우리나라에도 오늘 만나 본 몸져누운 노인들과 닮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중증의 심신장애가 있는 사람들로 ‘水平人’이라고 불리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보조기구가 적었고 가정도우미도 적었습니다. 자력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면 본인도 주변 사람들도 단념하고 말았습니다.”
저자는 1989년에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보조기구센터를 방문했다. 센터 운영은 덴마크보다 스웨덴이 선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은 “몸이 부자유한 어린이가 친구에게 자랑할 만큼 멋있는 보조기구, 지적 장애가 있는 어린이도 조작할 수 있는 보조기구,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의 의사소통을 도울 수 있는 초소형 컴퓨터를 내장한 장치, 그리고...”라는 말을 눈이 휘둥그레지며 들었다.
북유럽 복지 정책의 바탕에는 ‘노멀라이제이션(normalization)’이라는 사상이 깔려 있다. 그 뿌리는 덴마크의 ’노말리세르‘ 운동으로. “어떤 장애를 입고 있더라도 ’보통‘으로 살아가도록 환경을 개선하여 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쉬운 말이다. 보통 사람처럼 취향을 존중받고, 이동하고 교육받고 즐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이 쉬운 말을 현실에서 구현해냈다는 것, 그것이 그들이 가진 위대함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렵고 현란한 말과 분석이 아닌 것 같다. 30종의 전동휠체어를 포함한 100종의 휠체어와 100여 종의 지팡이, 불편한 손으로 식사나 요리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된 갖가지 자동기구들에는 ’노멀라이제이션‘이라는 사상이 깃들어있다.
이 사상의 아버지인 뱅크 밋켈센은 1946년 공무원이 되어 사회부로 들어갔다. 금방 옮겨주겠다는 말을 듣고, 지적 장애인 복지시설 담당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그가 담당하던 시설들은 당시 유럽에서 제일 인도적이며 우수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쩐지 석연찮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설은 대부분 교외에 있었고, 한 시설에 수백 명이 살았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었고, 노욕의 우려로 단종 수술을 받고, 선거권이 없었다. 전시에 자신이 구속돼 있었던 나치 강제수용소와 많이 닮아 있었다.
그는 ’어버이 모임‘이 만들어지고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활동의 결과로 1959년에 장애 관련 법이 만들어졌고, 이 법에 ’노말리세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는 스웨덴에 큰 영향을 미쳤고, 1968년에 이 사상을 명확히 내건 법이 만들어졌다.
스웨덴에서도 노멀라이제이션 이전 시기에는 서비스에 맞춰 노인을 옮겼다. 가정 도우미 수발 시간이 주당 3시간 정도일 때는 집에서 살다가, 5시간이 필요하면 서비스 주택으로 옮기고, 12시간 정도면 슈그헴(우리의 요양원), 16시간 넘어서면 장기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다.
이 사상은 ‘노멀라이제이션’으로 번역되어 영어권으로 퍼져나갔다. 이때 특히 강조된 것이 ’자기 결정의 중요함‘과 ’위험 도전의 존귀함‘이었다. 존중과 성찰을 잃어버린 ’보호‘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넓게 보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은 자칫 삶의 뿌리를 치명적으로 훼손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아파도 장애가 있어도 늙어도 ‘보통’의 삶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당연히 돈이 든다. 돈 앞에서 우리의 ‘보통’의 삶은 흔들린다. 이렇게 늙었는데 내 취향에 맞는 옷과 음식을 사기 위해 쇼핑을 하겠다고 말해도 되는지, 걸을 수 없는데도 길거리를 돌아다니겠다고 우겨도 되는지, 움직이기가 힘들지만 살던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주장해도 되는지.... 그렇게 우리의 취향과 이동과 주거는 ‘보통’이 아닌 상황으로 자연스럽게 내몰린다.
아주 예민한 현실의 문제, 그래서 우리의 바람을 서둘러 접게 만드는 돈 문제, 세금의 문제를 한 번 살펴보자. 조금 더 나은 세상, 조금 더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서두름’보다는 ‘면밀함’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당장 정답을 내놓기보다는 좋은 삶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IMF 시기에 이 책을 번역했던 역자들은 역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IMF의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경제불황 속에서 사회복지를 운운하는 것은 시의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국민소득이 세계 11위라고 자랑할 때, 우리의 사회 복지적 삶의 질은 세계 59위였음을 직시해야 한다.’
책을 쓸 당시의 덴마크 복지비용은 GNP의 20.7%였다. 이중 고령자 부문의 총지출은 GNP의 7.8% (연금 4.2 방문간호와 보조기구 1.1 프라이엠 1.8 가정도우미 0.7)이다. 연금 부분을 빼면, 덴마크는 GNP의 3.6%를 씀으로써 몸을 움직이기 힘든 혼자 사는 노인들도 긍지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싼가 비싼가?’라고 저자는 묻는다.
2025년 OECD 발표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복지비용은 GDP의 15.2%로, 코로나 때문에 이전보다 많이 증가했다. 같은 시기 OECD 평균 비율은 22.1%였다.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2011년부터 2021년까지 복지비용의 증가율은 OECD 평균의 약 2배 수준이라고 한다. 액수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이다. 허약해도 이 사회의 시민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데 그 돈이 잘 쓰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