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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Jun 05. 2022

그렇게, 그녀들의 삶이 전해져왔다

최은영 소설 <밝은 밤> 책 리뷰

#1.

증조모, 할머니, 엄마를 거쳐 나에게  이야기. 주로 (지연) 할머니의 대화로 4대에 걸친 여자들의 이야기가 전달된다. 엄마에게 엄마의 엄마(할머니) 있듯이, 할머니에게도 엄마(증조모) 있었을 텐데. 나는  번도 엄마나 할머니의 엄마 이야기를 자세히 물어본 적이 없었던  같다.

나에게 할머니, 특히 외할머니는 특별한 존재다. 엄마는 요즘 사람들처럼 '니꺼 챙기며 살아' 하면서  편을 들어주지만, 할머니는 '니가   참아라, 니가   이해해라' 하면서, 옛날 사람들처럼(?) 베풀고 이해하며 사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나는  옛날스러운 가르침이 좋았다. 나는 누구보다 독립적인 여성으로 컸지만,  배경에는 같은 여성인 엄마와 외할머니의  마디  마디가  있었고, 그녀들의 삶과 마음이 섞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최은영의 소설 <밝은 >에는 , 엄마, 할머니, 증조모,  그녀들의 친구이자 동료들의 이야기까지도 가득했다. 백정 딸이었지만 도망치듯 결혼하였던 증조모, 아픈 엄마를 두고 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의 엄마는 '기래, 가라. 내레 다음 생에선  딸로 태어날 테니. 그때 만나자. 그때 다시 만나자.' 하며 그녀를 보내주었다. 그녀의 친구 새비 아주머니, 그리고 그녀의  희자. 그녀들과 함께였던 할머니의 삶과,  엄마의 . 한동안 서로 보지 않고 살다가 다시 만나게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


 권이 책이 부족할 정도로 그들의 이야기는 세밀하게   있었고, 서로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서로 얽히고설켜 때로는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얽히고설켰기에 함께 했던 나날들이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모르는 우리 엄마, 할머니의 삶은 어떤 이야기로 가득  있을까. 각자 사는 삶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우리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연대해왔고, 서로 기대어왔을 것이다. 엄마의 엄마와 딸이라는,  엄마와 딸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아무리 서로 멀어지려 해도, 멀어지는 때가 있어도, 우리의 삶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져 있다.  시간들을 거쳐오면서도, 그렇게 우리는 한결같이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용서하고,  그렇게 함께  왔을 것이다.     

* 추신 1 : 엄마와 딸의 관계는 정말 신기하다. 소설  주인공(지연) 할머니에게 "엄마한테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하고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 나랑 달라.  애의 딸이잖아. 엄마가 딸을 용서하는  쉬운 일이야."  사실을 알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엄마! 내가 그동안 잘못했던 일들   미안해, 오키? 하고, 쿨하게(?) 용서를 빌어야지, 싶었다.

** 추신 2 : 가끔은 엄마나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짧을까  슬퍼질 때가 있었다. 인생은 짧으니까.  그녀들과 겹치는 인생은 더더욱 짧으니까. 그렇지만,  속의  비아 주머니와 증조모의 대화를 통해, 그저 그냥,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새비야"

"응"

"내레 아까워."

"뭐가."

"새비 너랑 있는 이 시간이 아깝다."

새비 아주머니는 한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깝다고 생각하면 마음 아프게 되지 않갔어. 기냥 충분하다구. 충분하다구 생각하구 살면 안 되갔어? 기냥 너랑 내가 서로 동무가 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주면 안되갔어?"  



#2.
증조모와 할머니의 이야기 속엔, 당시 전쟁과 가난과,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들이 무수히 삼켜왔던 사회적 폭력과 억압이 나타난다.  어두운 시대 속에서 그녀들은 '함께', '살았다'.

남편이 중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참아야 했고, 아빠가 딸에게 폭언을 했을 때도 참아야 했고, 남성 가장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는 기다려야 했고, 그래서 돈이 없었을 때는 일을 해가며 돈을 벌었어야 했다. 전쟁통에  다른 남자들이 여자들을 강간이라도 할까 항상 두려워하며 살았어야 했고, 긴긴 날들을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친구를 찾아, 친척을 찾아 피난길에 오르며 버텨내야 했다. 그렇게 만난 친구와 친척과 또다시 이별해야만 했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았어야 했다.

 길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밤이었다면, 그녀들은  어두움을 마냥 어둡게 보내지만은 않았다. 함께 나누고 버티고, 기다리고 힘이 되어주면서  안에서 나름의 '밝은 ' 만들어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나의 지나왔던 힘들었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조차, 지금은 희미하게 남아있는 것은 아마도  밤이 이미 ‘밝은 ' 되었기 때문은 아닐지, 우리 엄마가 있었기에.  우리 할머니가 있기에,  우리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었기에.

앞으로  살면서 어두운 시간들을 만날지 모른다. 모든 것이 내뜻대로 되지 않고,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라도 불행이 찾아올 때도 있겠지. 언젠가  밤을 보낼 때에, 이제는 그때의 내가 알았으면 좋겠다,  시간들도 지나고 나면 '밝은 '  것이라고.  


추신 ( 속의 ):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들고 바람이  통하는 곳이 넣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최은영 소설, <밝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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