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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May 29. 2022

다시,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매트 헤이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리뷰

#1.

만약 삶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 여러가지 삶을 살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할까. 


글로벌 인재가 되겠다며 한국을 박차고 나가 파리의 어느 회사에 다니며 한 손엔 커피를 들고, 또각또각 출근하고 있을지도. 남자 친구를 찾으며 그 아름다운 파리에서, 늦은 나이까지 조금은 외로운 밤을 즐기고 있을지도.


어릴 적 좋아했던 바둑에 계속 집중해서 선수반에 들어갔는데 특출나진 않은 탓에 적당한 선수가 되어 끊임없이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지도.


사춘기였던 고등학교 시절 공부는 그만하겠다며 때려치우고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활동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자본주의와 이상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은이가 되었을지도.


빈곤을 해결하겠다며 아프리카로 가서, 새로운 소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고 인터넷에 치면 나오는 ‘용감한 청년 사업가’가 되어있을지도. 아, 그 사이에 풍토병에 심하게 앓아 어딘가가 심하게 아플지도.


상상 속의 삶들은 저마다의 고민이 있고, 저마다의 성공이 있다. 어떤 삶을 택했어도 완벽하지 않았을 거고, 어떤 삶도 불행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나만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 여러 삶들을 상상해보며, 그래, 지금의 삶도 충분해, 하고 생각해본다.




#2.

친구가 말했다. 지금 이렇게 회사나 다니고 애나 키우며 살 줄 알았다면, 우리 뭐하러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을까.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어릴 땐 내가 삼십 대가 되면, 사십 대가 되면 진짜 큰 집에서 멋진 차를 몰면서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어. 근데 이게 뭐야, 별거 없네.


나 역시 미래를 알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나에게 닥쳐올 사건이나 불행을 미리 안다면, 그렇게 큰 기대와 꿈을 갖고 살지는 않았을 텐데. 그리고 실망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노라가 애완견 볼츠가 죽은 삶으로 갔다 온 후, 엘름 부인에게 물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가  가요. 어차피 츠가 죽을  아셨으면서   거기로 보내신 거죠?”


“왜냐하면 노라, 때로는 살아봐야만 배울 수 있으니까.”


그래, 살아봐야만 하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늘 현재를 살아야만 한다.




#3.

우리는 삶에 얼마나 감사하며 치열하게 느끼며 살고 있을까. 가끔, 아니, 생각보다 자주 느껴져 오는 삶에 대한 권태로움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는 건가… 삶이라는 게, 너무나도 별 거 없구나.


삶에 감사할 줄 모르는 순간의 감정에 대해, 엘름 부인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무너지는 순간, 테이블 밑에서 소리치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포기하지 마라! 감히 포기할 생각은 하지도 마, 노라 시드!”


책 밖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너무나도 생생하고, 크고, 강력하게.

‘살아라, 치열하게 감사하며, 살아라’ 하고,

정말이지,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


네, 다시,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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