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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May 21. 2022

함께 아프다는 걸 인정하여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정보라 소설집, 저주토끼 - 책 리뷰


#1.

너무 무섭고 그로테스크하여 읽기가 망설여진다는 지인들을 위해  가지 인상 깊은 내용을 소개한다.


<저주 토끼> 편에서 할아버지는 말했다.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자본주의의 끝판왕이었던 양조장 기업에게 예쁜 토끼는 3대에 걸쳐 저주를 퍼부었고,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라는 일본 속담처럼 할아버지도 사그라져갔다. 이를 물려받아 저주토끼를 만드는 손자의 사업은 번창하고 있지만, 스스로도 역시 사그라질 것임을 그도 아주 ,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로테스크의 최고봉으로 꼽는 <머리> 편에서는 여자의 배설물들이 변기통에 사는 ‘머리 되고, 나중에는 그녀를 집어삼킨다. 지나가버린 일상에서의 수많은 습관과 나의 과거들은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니고, 일종의 ‘형태 되어 언젠가 나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는  새삼 생각해본다. 착하게,  살아야지.


특히 인상 깊었던 <재회> 편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한여름에  폴란드 광장에서  방향으로, 직선으로 계속 걷고 있는 노인을 본다. 노인은 계속해서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걷기만 한다, 천천히 가로지르고,  빠르게 다시 나타난다. 남자는 ‘전쟁  광장에서 총을 맞는 사람일 거야라고 했다. ‘길을 건너서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아마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길에서 죽었을 거야.’라고.  사람도 죽은 사람도 어째서 그런 불행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남자는 ‘트라우마라는 거겠지라고 하며 독일어로 노래를 부른다.


“… 소원을 빌 수 있다면

나는 아주 조금만 행복해지고 싶어

너무 많이 행복해지면

슬픔이 그리워질 테니까”


#2.

정보라 작가가 말했다. ‘원래 세상은 쓸쓸한 곳이고 모든 존재는 혼자이며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 혹은 복수는 경우에 따라 반드시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필요한 일을 완수한 후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로우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소설을 읽는 내내 무서웠다. 아침에 읽을 때도, 밤에 읽을 때도 찝찝하고 무서운 그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다시 또 책을 펼치고, 계속 읽었다.


 편의 단편 소설은 모두가 인간의 잔혹함과 잔인함에 대해 다룬다. 인간들은  잔혹함과 잔인함에 당하고, 그렇지만  계속 그렇게 살아간다. 씁쓸하지만 그러한 현실. 이에 대해 작가는 또다시 말한다, “그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을 통해서,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혼자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독자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조그만 희망이다라고.


꼭 좋은 어떤 것을 보여주지 않아도,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을 통해서도 위로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한참 생각하고 나니, 그녀만의 위로의 방식이, 마침내 통한 기분이었다.



*정보라 작가님의 2022 부커상 수상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저주토끼, 정보라 작가)



제주 중문 색달 해수욕장


(커버 이미지: 제주 중문 색달 해수욕장, 비 오는 날에. 아무리 밝게 보정해도 그날의 회색 바다는 바뀌지 않았다. 회색 바다는, 회색 바다 그대로 두는 것이 맞다고, 작가님이 이야기해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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