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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Feb 13. 2023

장염과 인내심


뱃속이 온통 전쟁터다.

우르릉쾅쾅 조용한 순간이 없고,

계속 속이 요동치면서 불안정하다.


지난주 한딱까리 하고 좀 나아지는 듯 하더니,

다시 도졌다, 이놈의 장염.


병원에 두번째 갔더니,

의사가 ‘왜 또 이러지?’ 하면서

혹시 술드셨냐며 물어봤다.

아뇨, 제가 술은 진짜진짜 꾹 참았어요,

아, 참다가 맥주 딱 한캔 마신거 말고는.

근데 진짜 진짜 그게 다예요.

아, 참, 사실 커피는 계속 마셨는데요,

그래도 디카페인으로 마셨거든요.


의사는 장염에 걸리면 제일 안 좋은 음식이

술, 커피, 그리고 유제품이라 했다.

지금 죽을것 같은 상태는 아니니

매일 죽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제발 저 3가지는 한동안 피하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괴롭고 불편한 상태가

아주 오래갈수도 있다고.




그런데 두둥,

진짜 3주만인가 한달만엔가,

내가 젤 좋아하는 주말 아침 카페 타임이 왔다!

주말 이른 아침에 카페에 가서

혼자 책도 읽고 수첩 정리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나만의 온전한 시간이다.

손님 없는 카페의 문을 여는 기분이 아주! 좋다!

그동안 이래저래 주말마다 일이 많아서

통 주말 아침에 시간을 내기 어려웠는데,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이다!


아침에 장염약을 털어넣고

모닝 운동까지 마치면서

카페님을 영접할 준비를 마쳤다.

오픈 시간인 8시가 땡 되자마자

집 앞 커피빈에 왔는데… (안타깝게도)

인생 고민을 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했다.


내가 젤 좋아하는 커피와 베이글&크림치즈.

안타깝게도 의사가 모두 피하라고 했던 음식이네.

다 포기하자니 오랜만에 온 ‘주말아침카페타임’의

행복지수가 급격히 감소할 것만 같다.

열심히 생각한 결과,

둘 중 하나만 취하고 하나는 포기하기로 한다.


그런데 커피 성애자인 내가

이런 고요한 주말아침에 커피를 안마실수 있을까!  아니면, 입안 가득 퍼지는 따뜻한 베이글에

듬뿍 얹어지는 크림치즈를 포기할 수 있을까!

정말 어려운 고민이었다,

의자에 앉아 한동안 멍을 때렸다.


두둥, 결정!

베이글과 크림치즈를 먹고,

커피라고 생각하며 따뜻한 티를 마시기로 한다!

그리고는 완충된 행복까진 아니지만,

10프로 정도 부족한 행복을 만끽한다.




어쩌면 장염은 인내심이 필요한 병인 것 같다.

인간의 3대 기본욕구인 식욕과,

+ 기본권인 (먹는) 행복권 vs.

병을 나아야 한다는 이성의 끊임없는 투쟁.


과연, 나의 장염은 나을 수 있는 걸까…



(정말 심한 장염을 앓으시는 분들은 음식을 아예 먹지조차 못하신다 들었는데, 애매모호한 장염으로 이딴(?) 인생 고민이나 하고 있는 초보 장염 환자의 미숙함을 용서해주세요.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실 세상 모든 심한 장염 환자 분들께 죄송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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