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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Mar 01. 2023

이 글은 여자가(?) 축구를 하고 싶은 이야기

여자 축구, 진짜 하고 싶어 (feat.축구예찬론) 

이 글은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축구를 하고 싶은 이야기다. 

축구를 너무너무 하고 싶은데, 아직 못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아니 이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축구를 하고 있다는 축구 에세이도 아니고, 축구를 하고 싶은 이야기라니. 어이가 없다.  (나도 '축구를 합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너무 쓰고 싶었는데, 아직도 못 시작하고 결국은 '축구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게 된 사실이 슬프면서도 웃기기도 하고, 재밌다. 나는 결국, 이러고 있다.) 


어릴 적부터 축구는 왠지 모르게 멋져 보이는 스포츠였다. 

유럽 축구나 K리그까지 챙겨보는 축구마니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쩌다 축구 경기를 보게 되면 열을 내면서 누구보다 진심으로 보는 나는 '(자칭, 혼자) 축구팬' 이었다. 언젠가 시작한 '골 때리는 그녀들'이라는 프로그램이 나의 축구 관심에 방아쇠를 당겼다. 이제 시즌 3를 시작하는 골때녀는 여자 축구에 대한 나의 관심을 더욱 키워주었다. 축구하는 여자들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나는 정혜인과 경서, 그리고 최근엔 허경희의 팬이 되었는데, 그들의 경기와 플레이에 감정이입해서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렇게 축구를 주제로 글까지 쓰고 있는 30대 후반의 여자가 축구를 시작하지 못하고 왜 아직도 노트북 앞에만 앉아있나, 궁금하실텐데 나름의 변명은 이렇다. 꾸준히 매주 시간과 열정을 투입해야 하고,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야 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가 아주 망설여진다. 


한 때 정말 사랑했던 '플라멩코'는 꽤 긴 기간인 6-7년을 매주 토요일 오전, 오후까지 두 나절을 차지했었고, 같이 춤을 췄던 언니들과는 정말 절친하고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못 나간지 한참이라, 언니들을 지금은 자주 보지 못해 너무 아쉽지만). 플라멩코 공연을 하게 될 때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할애해야만 했는데,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즐거웠지만, 다시 또 그렇게 내가 할 수 있을까 싶다. 


작년에 즐거웠던 '합창단'도 매주 월요일 퇴근 후 시간을 고정적으로 차지했었는데, 공연 전엔 주 2-3회는 기본이고 거의 매일매일의 빈 시간을 투입해서 가사와 율동을 외워야만 했다. 작년의 가장 잘 한 일로 '합창단과 공연'을 꼽고 있지만, 하아, 올해 또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싱글 시절에는 이러한 도전들을 좀 더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결혼도 한 신분이다보니, 회사일 외의 무언가에 꾸준하고 진득한 열정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더더욱 의사결정이 쉽지가 않다. 나는 또 시작하면, 애정을 마구 쏟는 타입이라, 더더욱 쉽지가 않다. (자, 여기까지는 변명(?)이었다.) 


진짜 하고 싶은 축구는 쏙 빼고, 시간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다른 것들(글쓰기, 바둑 공부, 작사 공부 등)에 열정을 쏟고 있던 어느 날, 친구가 책을 한권 선물했다. 

"야, 너 이 책 알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이거 보고 딱 너 생각났잖아!" 

"당연히 알지, 근데 못 읽겠어서 안 읽었어. 축구가 너무 하고 싶어질까봐." 

"그러게, 나도 그 생각했는데, 아, 몰라. 그냥 읽어봐. 재밌어." 


그렇게 나는, 두번째 축구 뽐뿌를 만났다. 


그래, 이 글은 축구를 너무너무 하고 싶은 글이다. 

축구에 대한 나의 애정을 담다 보니 생각보다 아주 길어질 지도 모르는 글이다. 


축구를 이미 잘 하고 계신 (세상 부러운) 많은 여성 동지들께서는 이 글을 보며 '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뭐 이런 답답한 글을 쓰고 있지?' 하고 비웃을 수도 있다. (부럽다, 그렇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지속할 수 있는 열정) 그런데 내 딴에는 왜 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스스로를 탐구하며 내가 축구를 하고 싶은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축구를 하고 싶다고 하면 "넌 왜 그런것만(?) 좋아하냐" "하다하다 이제 축구를 하고 싶다고 하는구나" 하고 웃어버리고, 나 스스로도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음을 인정하다 보니 '내가 이걸 왜 하고싶어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만 했다. (누군가는 나의 MBTI에 'N'이 있어서 쓸데없이 생각만 많다고 했다, 'S'인 사람들은 그냥 하고싶으면 바로 시작한다고) 


누군가의 생각도 이젠 모르겠다, 내 마음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지금은 변명으로 똘똘 뭉쳐 바로 시작하긴 어렵기 때문에, 일단 축구에 대한 동경과 애정을 여기의 글과 마음 속에 한가득 담아 놓고, 언젠가 축구를 시작하는 그 날에 다시 읽어보며 말하고 싶다, "야, 나 드디어 시작한다!!!"


내가 축구를 하고 싶은 이유, 내가 축구를 동경하는 이유, 

이제부터 시작한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에세이, 민음사


#1. 건강하게 싸워서, 이기고 싶은 열망   


생각해보면 나는 경쟁하고, 한계를 넘어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어쩌면 흔히 말하는 성장스토리 같은 건데, 병아리에서 사춘기를 지나 닭이 되고, 그 닭이 점프까지 뛰는, 그런 서사를 좋아한다. 그래, 한번 사는 인생, 스토리가 있어야지! 스토리가 나오려면 무언가에 도전을 해야 하고, 그렇다 보니 내가 주로 좋아했던 취미나 활동들을 보면 '대회'에 나가거나 '공연'을 하거나 혹은 '자격증을 따는' 등 경쟁과 성취가 있는 것들이었다. 경쟁을 해서 이기거나, 이기지 못해도 열심히 참가한 나 자신을 칭찬하며 한 챕터를 접는 행위를 좋아한다. 언젠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대학교 때 공모전 결승에서 1위로 우리팀 이름이 불렸을 때, 국제 대회에서 내가 발표를 하던 순간 등을 꼽았던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경쟁성애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략을 짜는 것도 정말 좋아한다. 이 전략으로 우리가 과연 이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또 경우에 따라 실전에서는 임기응변으로 전략을 바꿔서 적용해야 하는, 즐거운 순간들! 특히 대회나 경기의 순간에 축구의 '월패스(wall pass)처럼 서로 사인, 패스의 강약,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춰야 하는 콤비 플레이'를 한다든지, '너와 나의 시계가 맞춰지면 제 3의 공간이 열리'는 순간의 희열은 몇 년간 술자리에서 우려먹을 수 있는 레전드 스토리가 되기 마련이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의 표현들을 인용해 쓰니, 마치 내가 축구를 했던 사람마냥 아~주 표현이 찰져서 기분이 이상하네.) 


또 특히 경쟁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내가 동경하기 마지않는 예술적인 순간인데, 대회를 준비하며 밤을 새운다거나, 없는 시간들을 쪼개서 리허설을 마쳤을 때, 또 그 긴 시간 동안의 노력을 모두 다 쏟아낸 무대를 하고 내려왔을 때의 '아름다움'이란! 아,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마음이 먹먹하다, 진짜 최고다. 


내가 축구를 볼 때도 그렇다. 골대에 머리를 박으면서까지 공을 막아내는 플레이어의 모습도, 몸싸움을 하다가 쥐가 올라오거나 살이 찢어졌지만 참고 계속 경기를 뛰는 플레이어의 모습도, 자신의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죽도록' 뛰다가 휘슬이 울리면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도, 아, 생각만 해도 아름답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눈물 나는 순간이 있을까! 


나는 아름답게 싸우고 싶다, 싸워서 이기고 싶다. 이기지 못해도 아름답게 전사하고 싶다 (죽고 싶단 얘긴 아니고), 다음에 또 도전해서 이기고 싶다. 미친 아드레날린의 순간을 이렇게까지 예찬하는 내가, 새삼 소오름이다. 


축구, 하고 싶다. 




#2. 함께 싸우고, 함께 이기는 팀플레이의 매력 (그리고 어쩌면, 사람 사는 이야기)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순간들에, 나 혼자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팀을 이뤄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더 미친 듯이 전율이 이는 일일 것인가! 김혼비작가는 '지독한 개인주의자'인 본인이 축구를 하게 되다니 새삼 놀랍다, 고 표현을 했지만, 나는 '지독한 팀 성애자'인 내가 아직도 축구를 못하고 이러고 혼자 앉아 있는 것이 새삼 새롭다.  


예로부터 인간은 3명 이상만 모이면 끊임없이 편을 먹고 편을 나누면서 전쟁을 해왔다며 '인간의 편먹음'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편을 먹고 서로 연대하는 행위는 정말 알흠다운 인간의 습성이다. 다른 편을 공격하고 못되게 하는 것을 제외하면, 동지가 생기는 것, 친구가 생기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 일인가!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서 김혼비작가의 팀(이하, 우리 팀)과 경쟁팀인 FC페니가 경기 도중 크게 싸우고서는, FC페니가 나중에 우리 팀이 '처발리는' 꼴을 보면서 흠씬 놀려주겠다며 경기에 구경을 갔는데, 막상 우리 팀이 지는 모습을 보면서 '승원! 너 정실 언니가 맨투맨 하러 자리 비우면 가서 메꿔 줘야지. 거기서 자꾸 뚫리잖아.' '으휴, 뭐야. 우리 앞에선 그렇게 잘난 처하더니. 뭐 저리 매가리들이 없어!' '아니! 너희 얄밉고 너무 싫거든! 근데 까도 우리가 까야지 다른 데서 까이고 있는 거 보니까 이건 또 짜증 나네?' 하면서 빅파이를 건네주는... 그런 은근한 '어제의 적이 오늘은 우리 편이 되는' 장면을 보면서는 어찌나 감동이었던지. 


나는 싸움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앞서 '싸우고 싶다'라고 해 놓고, 바로 또 싸움을 싫어한다니 이 작가가 정신이 나갔나 싶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싸우고 싶은' 이유는 (싸움이 좋아서가 아니라) '아름답게 함께 이기고 싶어서'다. 경쟁자가 있든, 우리 스스로의 한계를 넘으며 우리 팀 혼자 경쟁해서 이겼든 간에, '함께 노력하고 함께 이기는' 순간은 언제나 행복하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가끔은 싸울 뻔도 하다가 다시 화해를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가 무너질 것 같을 때 도움을 받기도 하고, 내가 돕기도 하면서 '함께 하는 것'은 최고의 기쁨이다. 


내가 태어난 이유는 어쩌면, '서로 돕고 도움받고 감동받으며 함께 하기 위함'인 건 아닐까!  


아, 나도 '같이' 축구하고 싶다. 




#3. 선 넘어가고 싶은 욕구의 발현 


세상이 말하는 '선'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나는 항상 조금은 적대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늘 저항하며 살기보다는 적당히 순응하는 편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내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땐, 그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가는 것에 희열을 느껴왔다. 


어릴 적 명절 때마다 남자 밥상, 여자 밥상이 나눠져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5촌 당숙 아저씨 등이 앉은 밥상에 떡 하니 앉아서는 뭔 말인지도 모르는 '부동산 얘기, 땅 얘기, 상속 얘기'를 듣던 어린 여자 꼬마, 그게 나였다. 여자라고 자꾸 주변에서 핑크색 아이템을 사주는 게 싫어서 '나는 핑크를 진짜 죽도록 싫어한다'라고 단언하면서 어른들에게 눈 동그랗게 치켜뜨고 보이콧을 하던 것도 나였다 (물론 지금은 핑크색이 예쁜 색깔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자=핑크색이라는 고정관념이 어릴 땐 싫었다). 


대학시절엔 SKY가 아니면 컨설팅 회사에 들어갈 수 없다며 컨설턴트를 준비하는 나를 무시하던 선배들의 말들이 싫어서 남의 학교를 기웃거리며 취준을 했었고 결국 성공했다. 회사생활 초반에는 남자들끼리만의 '담배 토크'에 소외되는 것이 싫어서 담배도 안 피우면서 담배스팟에 함께 나가서 담배 토크에 끼어보기도 했다. 


너는 여자라서, 어려서, 어느 대학을 나와서, 금수저가 아니라서...라고 하는 다양한 '선'은 늘 나를 도전하게 만들었다. 물론 넘을 수 없는 선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지금 넘을 수 없으면 단계적으로 접근하여 언젠가 넘으면 된다. 그래, 죽기 전엔 넘을 수 있겠지, 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이런 나에게 '축구' 역시 어쩌면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은 욕구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축구를 하고 싶다고 하면 '왜? 진짜?' 하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겠지. 요즘은 남녀의 경계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선이 그어진' 영역이 있음을 책에서도 이야기한다. 김혼비작가는 주변에 축구한다고 말을 하면, '축구하는 여자들은 좀 세지 않아?'라고 묻는다든지, '거기엔 어떤 여자들이 모여있어?' 하는 질문을 듣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또 책에서 '맨스플레인(man과 explain의 합성어)'이라는 용어를 인용했는데, 주로 사회 통념상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곳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여자니까 이건 모르겠지, 이건 내가 알려줄게!' 하며 축구하는 법에 대해 자꾸만 설명하려고 하는 한 남자 축구팀에 대하여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는 '로빙슛'을 날려버리는 순간은 정말 멋졌다. 바로 이거지!  김혼비작가는 '맨스플레인에 대한 우리들의 답은 느리고 우아하지'라고 소제목을 붙였는데, 내가 이 책의 제목과 소제목 중 제일 좋아하는 2개 제목 중 하나다.  


최근 <대행사>라는 드라마에서 최초의 광고업계 여성 임원이 된 이보영(고아인) 이 어려운 상황에 힘들어하다가 활로를 찾고는 '비 그쳤다, 이제 선 넘어가자' 하고 말하는 모습은 '선 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아주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어쩌면 나도 죽을 때까지 어떨 땐 당당하게, 또 어떨 땐 소심하게 선을 넘어가면서 살 것 같다. 아마 우리 모두도 그럴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선,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선, 그 선을 가끔은 넘어가고 가끔은 선 자체를 바꿔 그리기도 하면서 우리는 '개썅 마이웨이'를 찾아가면서 살겠지. 그게 인생이겠지. 



어쨌든 거창하게 졸라 긴 글을 썼지만 '선 넘어가는 것'은 재밌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선을 넘고 축구를 하고 싶다. 

하고 싶은데 못해서 '꿈(?)'이 되었다. 


패스패스패스, 내 꿈은 축구왕, 세계에서 제일가는(?) 스트라이커 ♪

내 꿈은 축구왕 슛돌이, 

축구, 너무너무 하고 싶다. 




축구를 하고 싶은 이야기, 끝. 


JTBC 드라마, <대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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