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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Mar 24. 2024

(이별편) 너라는 계절

BGM. 김나영, 봄내음보다 너를

그거 봤어?

당신이 늘 데리러 오던 그 자리, 아파트 단지 앞에 개나리가 필 것만 같아. 연두색 싹이 돋았는데, 그 초록빛이 너무 앙증맞고 예뻐서, 곧 노란색 봉우리를 금방이라도 터뜨릴 것처럼 에너지가 가득해 보여서, 그래서 또 당신 생각을 해버렸어. 길기만 했던 겨울이 언제 다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햇살이 가끔은 따스하고, 바람도 훈훈해지고 있어. 봄내음이 조금씩 느껴져. 이제 정말, 봄이 오나 봐. 그러고 보니 우린 늘 계절을 이야기했었던 것 같아.


5년 전 우리가 만났던 그 봄날에는, 그때가 봄인지도 모르고 당신을 다시 만났었지.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서 막 문을 열고 나오던 찰나에 우린 정말 우연히 문 앞에서 마주쳤어. “와 이게 얼마만이야, 민하야, 잘 지냈어?” 당신의 밝은 인사에, 낯을 가리는 나는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을 했었지. “아, 네...선배. 졸업하곤 처음이네요.“

우리는 약국 옆 커피빈으로 자리를 옮겼어. 당신은 예전에도 그때도 늘 나를 편한 동생처럼 잘 대해줬지. 어디가 아파서 약국에 왔냐고 묻기도 하고, 으이구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니 장염이 생기지, 하기도 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시간이 무색하게, 그렇게, 우리의 만남이 시작되었어.


답답한데

바람이나 쐬러 가자-


따스한 봄햇살을 맞으며, 그저 같이 차를 타고 몇 시간씩 달렸었지, 우리.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 운전하는 당신의 오른쪽 얼굴을 보기 시작한 게.

행여나 내가 부담 갖진 않을까, 혹시나 위험하진 않을까, 내 쪽은 잘 쳐다보지 못하고 앞만 보며 운전하던 당신 모습이, 가끔은 생각나.

운전대 옆에 살짝 내려놓은 오른손을 보면서, 그 손을 조금은 잡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 그냥, 내 옆에서 늘 약간은 긴장한 느낌이 나는 당신 모습이 느껴져서 그랬었나 봐. 조금은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고, 딱 그런 마음이었어.

그리고 언젠가 내 왼손이 당신의 오른손에 닿았던 날에,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지만 편안하게 올라간 당신의 그 입꼬리가 좋아서, 왠지 따스해진 우리 사이의 공기가 좋아서, 난 그래서 그 순간을 기억해.

어쩌면 내가 가장 많이 기억하는 당신의 모습은, 민망한 듯 살짝만 웃는, 그런데 그 안에 행복이 가득해 보이는, 바로 그 표정일 거야. 그 표정을 보면, 늘 마음이 놓였어, 세상에 아무 걱정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평안했어.


그날의 불꽃놀이,

기억나?  


정말 갑자기 양평으로 차를 타고 달렸다가 돌아오던 어느 토요일이었지. 그 한강 다리 위에서, 갑자기 불꽃이 터졌었잖아. 어디선가 경기장에서 행사를 하는 불꽃놀이였을 텐데, 왜 그 장면을 보면서 그렇게까지 마음이 뻥 뚫렸었는지. 난 사실 ‘도대체 불꽃놀이는 뭐가 좋다고 보는 거야’ 하면서 딱히 좋아하지 않았던 ‘반 불꽃놀이파’였었는데 말이야.

봄날의 까만 하늘에, 그 끝없이 넓은 하늘에 붉게 노랗게 파랗게 수놓아지는 불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물 같았어. 유난히 힘들었던 그 한 주간을 말끔히 보상받는 기분이었어. 온몸이 따뜻하고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면서 그냥 모든 게 그 순간 안에 멈춰버리더라, 그냥, 그날은 그 순간이 내 세상이었어. 어쩌면 내 인생을 통틀어서도,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일 거야. 불꽃 때문이었을까, 그 봄밤의 분위기였을까, 아니면 당신 때문이었을까. 아직도 궁금해.


무릎에,

흉터가 남았으면 했어-


그 봄 어느 날엔, 내가 당신과 함께 갔던 공원에서 기분이 좋아져버린 내가 혼자 달리다 넘어지기도 했지. 왜 그렇게 당신과 있을땐 기분이 좋아졌을까 몰라. 그저 아이처럼 달리면, 그걸 사랑스럽게 봐주는 당신의 그 눈빛이 좋아서였을거야. 사실 어른이 되고 나선 그렇게까지 넘어질 일이 많이 없었는데, 스타킹이 다 찢어지고 피도 나고 하니, 왠지 모르게 서러웠던 것 같아. 한동안 다리를 절뚝이며 다녔었는데, 그래도 당신에게 그 상처랑 흉터에 대해 재잘대기만 하면 그 아팠던 건 금세 아무렇지도 않아졌어. 요즘 가끔 아무렇지도 않은 무릎을 멍하니 바라봐, 봄이 오니 다시 넘어질 것만 같아서, 아니 그 흉터가 어느새 사라져 버린 게 아쉽고 그리워서. 흉터가 없어지지 않았었으면 좋았겠다고, 그렇게 가끔은 생각을 하기도 해.


당신, 혹시

지금 하늘을 보고 있어?


당신은 먼 타지에서 하늘을 보고 있겠지, 우리 언젠가 같이 가기로 했던 스위스의 예쁜 하늘을. 거긴 어때? 자연이 정말 그렇게 그림 같이 아름다워? 이웃들은 어때? 사람들은 서로에게 참견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자유롭게 즐기고 있어? 그곳에선 여기 서울처럼 하루하루 빡빡하게 사는 게 아니라, 정말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는 거야? 역할과 의무와, 알 수 없는 비교 같은 것에 숨 막히는 일 없이, 거기선,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잘, 지내고 있는거지?


오늘은, 나도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걷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외출을 하고 있어. 날이 좋아져서 새로 산 짧은 치마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었더니 발걸음이 절로 경쾌해지는 거 있지. 내가 얌전해 보이지만, 속에 또 흥이 많은 거 당신은 알잖아. 이런 날은 봄노래를 들어줘야지! 이어폰을 꽂고 봄노래를 켰어. 봄노래 특유의 살랑이는 멜로디를 들으니 기분이 참 좋아진다. 근데 있지, 바쁘게, 기분 좋게 걷다가, 그만 숨이 턱 하고 막혀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어. 늦어서 얼른 가야 하는데, 왜 이러지 갑자기.


‘우리 다시 다시 만나는 날,

그땐 내가 먼저 달려갈게

표현하지 못했던 온 맘을 담아

너를 더 사랑할게 너를‘


생각해 보니 꿈에서 한 번만 만났으면 하면서 잠들기도 했어. 내가 자주 가는 카페에 당신이 와있진 않을까 늘 돌아보곤 했어. 함께 걷던 길을 지날 땐 어쩔 줄 모르는 감정에 이상해져서 오히려 빨리 걷곤 했어. 같이 듣던 노래가 나올 땐 마음이 쿵 하고 떨어졌어. ’ 우리 다시 만나는 날‘ 같은 노랫말 가사를 들을 땐,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를, 그런 감정이 들기도 했어.



나 말야, 아직은 당신하고 헤어지지 못한 것 같아.

어쩌면 매번 계절이 다시 돌아와도, 꽤 오랫동안, 헤어지지 못할 것 같아.

우리 다시 만났던, 우리 이별했던 그 봄날의 내음보다 여운이 더 길게 갈 것만 같아. 



봄이 오면, 꼭 당신과 다시 이별할 것 같아서,

아니 또다시 당신과 만나게 될 것만 같아서,

조금은 설레고, 또 조금은 무서워져.



image: unsplash Aubrey Odom





BGM. 김나영, <봄내음보다 너를>


너의 이름을 부르면

뒤돌아 꼭 안아주던

따뜻했던 너의 향기

어떤 봄 내음보다 여운이 길었던 너였어


아직 너를 너를 그리워해

여전히 넌 내 맘 깊은 곳에

너와 걷던 길목을 지나갈 때면

나는 고개를 떨구곤 해


비 오던 그 어느 날도

나보다 먼저 서있던

오래 기다렸다고 날 다그치지도

오히려 날 안아줬던 너


아직 너를 너를 그리워해

여전히 넌 내 맘 깊은 곳에

너와 걷던 길목을 지나갈 때면

나는 고개를 떨구곤 해


나의 모든 날에 넌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오래오래 간직할 거야

우리 함께했던 날 전부


우리 다시 다시 만나는 날

그땐 내가 먼저 달려갈게

표현하지 못했던 온 맘을 담아

너를 더 사랑할게 너를


https://youtu.be/RaTCjhIS4AY?si=-Cs0o6v3Cgxw_X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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