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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Oct 23. 2019

5. 제주 사려니숲의 비밀

비밀의 숲에서 상상하기

  “앗, 여기가 어디죠?”

  만화나 드라마 주인공들은 순간이동을 많이 한다. 중고등학생 때 최애 만화였던 ‘하늘은 붉은 강가’에서 주인공이 물에 닿는 순간 고대의 어느 시대로 순간 이동하여 왕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예전에 즐겨봤던 W라는 드라마에서도 주인공 한효주는 순간 이동하여 웹툰 속 세계로 들어가 그 주인공인 이종석과 사랑을 한다.


  참 드라마스럽다.


  비 온 뒤 사려니 숲은 안개가 정말 짙었다. 끝이 보이지 않고 높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뿌연 안개가 굵은 띠를 두르고 있고, 그 사이로 흐린 하늘이 보일 듯 말 듯했다. ‘마치 태초의 어떤 공간 같았다’는 친구의 말처럼 왠지 성스럽고 신비로운, 마치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엔 삶은 늘 신기하고 알 수 없는 동화 같았다. 동화책이나 소설책, 만화책에 빠져 그 장면이 꿈에 나오기도 하고,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하는 만약의 경우를 생각했다. 정말 내가 어떤 특별한 물에 손이 닿는 순간 지하세계로 끌려 내려가거나, 웹툰 주인공이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다든지, 죽은 사람이 갑자기 눈에 보인다든지, 내가 초능력을 갖게 된다든지. 일반적인 삶이 아닌,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면?  


  하아, 이런 상상에서 손 뗀 게 벌써 몇 년이더라.    


  언제부턴가 삶은 마치 결말이 뻔한 재미없는 드라마를 보듯 매일매일이 똑같고 평범해졌고, 지루함마저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냥 이렇게 살아지는 걸까.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 가고 퇴근하고 주말을 기다렸다가 주말이 오고. 남자 친구를 사귀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애를 키우다 보니 앗 내가 50대가 되어있고, 노후를 준비하고. 딱히 기대가 되지는 않는, 비슷하고 뻔한 인생.



  사려니 숲의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만화영화처럼 내가 어떤 특별한 존재가 되는 꿈을 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말에 김새게 ‘뭐야, 꿈이잖아!’ 하고 깨더라도, 한 번쯤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게 생생한 그 어떤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사려니 숲 속 깊이 들어가면, 그런 마법의 공간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   



비 온 뒤 사려니숲은 신비롭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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