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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Oct 24. 2019

6. 세비야가 체질

세비야를 사랑하는 3가지 이유. 하늘, 사람, 플라멩코

친구 : “나 이번에 신혼여행 스페인 가려고. 너 세비야 잘 알지?”
나 : “좋은 데 추천해줄까?”
친구 : “응, 추천해줘. 근데, 넌 왜 그렇게 세비야만 자꾸 가?”


  지난 9월이 벌써 다섯 번째 세비야 행이었다.


  세비야는 나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2017년 10월 친구랑 같이 다녀오면서, '앞으로 여길 몇 번이나 더 오게 될까' 싶었는데, 딱 2년 만에 또다시 나는 세비야로 가는 렌페(Renfe, 스페인 최대 철도회사)를 타고 있었다.


  보통 나는 세비야를 가기 위해 스페인을 간다. 시간이 많지 않을 땐 1주일, 시간이 꽤 될 땐 약 10일에서 2주까지 세비야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 물론 Ronda, Cadiz 같은 근교 도시를 가기도 하고, 재작년엔 바르셀로나와 함께 묶어 가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세비야에서만 긴 시간을 보낸다고 하면, 놀란다.


  세비야가 뭐가 그렇게 좋아요?    

 

  내가 스페인을, 또 그 많은 도시들 중에서도 세비야를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1. 세상에서 가장 예쁜 하늘, 그리고 자전거  


  나는 요즘 한국 날씨처럼, 정말 맑.은.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파아란 하늘에 하아얀 구름을 보면, 나는 콩닥콩닥 설레고, 움직일 에너지가 솟는다. 세비야의 하늘은 그렇게 예쁘다. 파리, 로마, 베니스, 베를린 등 많은 나라들의 하늘도 예쁘지만, 특히 내가 세비야의 하늘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도가 아닌 근교 작은 도시 같은 느낌이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하늘이 예쁘면, 난 무조건 자전거 생각이 난다. 나는 세비야에 가면 무조건 ‘Sevici’라는 자전거 1주일권(약 13-14유로 정도)을 결제한다. 우리나라 ‘따릉이’ 같은 시스템인데, 세비야는 자전거 도로가 꽤 잘 되어있는 편이라 자전거 이동이 편리하다. 자전거를 타고 거의 매일 방문하는 코스가 바로 스페인 광장, 세비야 대성당, 그리고 과달키비르 강변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비야의 하늘 밑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일상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오면, 그야말로 나에겐 힐링이 된다.


과달키비르 강변, 스페인 광장, 석양 무렵 Sevici를 타고



  2. 따뜻한 사람들, 그리고 이름을 불러주는 문화  

  세비야 사람들은 따뜻하다. 기본적으로 스페인 사람들이 정이 많다고들 하지만, 수도인 마드리드나 세계인의 관광지 바르셀로나와는 달리, 세비야 사람들은 순박하고 친절하다.

  세비야에 갈 때면 한국에서 야심 차게 사놓고 잘 입지 못하는 옷을 들고 가기도 한다. 내가 너무 애정 하는 ‘형광 노랑 눈깔 옷’을 가져가서 ‘핫팬츠’와 함께 입으면 어김없이 ‘Guapa(구아빠, 예뻐요라는 뜻)!’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곳에선. 허리 부분이 뚫려있어 야하다거나, 바지가 너무 짧다거나, 그곳에서는 그런 핀잔을 듣지 않는다. 지나가는 아저씨나 할아버지들이 ‘Guapa!’라고 외치면, 이제는 익숙하게 ‘Gracias(그라시아스, 고마워요라는 뜻)!’한다. 혼자 연예인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세비야에서 식당에 들어가면 종종 메뉴 주문을 받은 후에 이름을 묻는다. 그리고 음식이 준비되면 ‘Celia(셀리아, 내 스페인 이름)!’ 하고 불러준다. 스타벅스에서 닉네임을 불러주듯이, 그런데 세비야에서는 스타벅스뿐만이 아니라, 대학가 앞에 카페에서도, 맥주와 타파스를 파는 술집에서도 이름을 부르는 것이 매우 익숙하다. 몇 차례 같은 장소에 가면, 심지어 종업원이 이름을 외우고 있기도 한다. 요즘 같이 시스템이 발달되어 일련번호로만도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아직도 그들은 시스템에 이름을 넣거나, 분필로 테이블에 적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나를 알아보지 않는 낯선 곳으로 이방인을 자처하며 여행을 간 것이지만, 낯선 곳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따뜻해진다.  또다시 그들이 그리워진다.   


내 이름(Celia)이 찍혀있는 영수증, 그리고 세비야 최고 맛집 Eslava
자주 갔던 슈퍼마켓에서 오렌지주스를 짜주셨던 아저씨,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형광 노랑 눈깔 옷



  3. 그리고 역시, 플라멩코

  세비야는 플라멩코의 본 고장이다. 그리고 나는 취미로 토요일에 플라멩코를 배운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출장이나 주말 출근이 있을 땐 많이 쉬기도 했고, 지금도 당분간 쉬고 있지만) 2014년엔 아예 단기 플라멩코 클래스를 등록하여 배우고 오기도 했고, 이번 여행에서도 공연만 다섯 번을 보고 왔으며, 거리 공연까지 하면 셀 수 없다. (가끔 ‘춤 아는 사람 없냐’고 물으면 한 곡 같이 추기도 한다.)  

  플라멩코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카리스마’ 때문이다. 무용수는 정말 온몸과 마음으로 춤을 추고,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무용수가 ‘Duende(두엔데, 최고의 황홀경이라는 뜻)’에 치닫는 그 순간에 나 역시 그의 세계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그 느낌을 좋아한다. 공연시간 동안 또 다른 여행을 다녀온 듯한 그 매력에 나는 늘 설레며 공연장에 간다.   

  공연 1시간 전에 도착해서 공연을 기다리는 순간이 제일 행복하다. 오늘은 어떤 무용수와 가수, 기타리스트가 나올까, 기대감과 긴장감, 폭발 전야. 생각하니 다시 설레어온다.


Peña Flamenca Torres Macarena, Museo Flamenco, 스페인 광장의 거리 플라멩코



  세비야에서의 기록들은 ‘여행기’라기보단 ‘일기’에 가깝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여행한다’라는 말보다는 ‘지내고 왔다’에 가깝다. 세비야의 하늘과 사람들과 플라멩코, 이 세 가지만 생각하면 내 입꼬리는 슬며시 위로 올라간다. 그리워하고, 좋아하고, 설레어하고, 혼자 다 한다.


  이쯤 되면, 세비야가 체질, 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기록들을 다시 꺼내어 보자니, 세비야의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느낌이 든다. 현실은 내방 구석인데. 그래도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세비야 맛집 : Eslava)

(플라멩코 추천 : Peña Flamenca Torres Macarena, 플라멩코 박물관, 스페인 광장의 거리 플라멩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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