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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Nov 17. 2020

#7. 야심한 밤의 까르보나라, in 세비야

여행 중 스트레스 받을 땐,

  여행의 기억은 대부분 즐겁지만, 가끔 깊은 생각에 잠기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다. 2019년 10월의 세비야에서, 나는 사람 간 관계에 대한 굉장히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는데, 바로 기대와 실망, 집착과 쿨병, 그 언저리에서 방황하게 된 것이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간에 관계가 가까울수록 상대방에게 기대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실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주자, 는 나의 모토는 때때로 무너진다. 아니, 생각보다 자주 무너진다. 기대하지 않기로 해놓고 나도 모르게 바라고 있고, 쿨하리라 생각해놓고는 상대방이 반응해주면 세상 행복해한다. 그러다가 상대방의 기분 변화에 또 혼자 서운해지고, 역시 다 필요 없다며 또 마음을 다잡는다 (마음은 다잡는다, 는 것은 서운함에 대한 외면이자, 상처 받은 마음에 대한 부정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인간 중독’이라는 글을 쓴 적도 있는데, 적당한 관계 맺음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 이런 고민과 감정들이 자연스러운 걸까. ‘쿨한 관계’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면, 가끔 밤에 느끼한 크림 파스타가 땡긴다. 마치 그 느끼함을 섭취하지 않고는 갈증이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아주 강한 식욕이 돋는다. 그리고, 그 시간은 아주 늦은 밤이어야만 한다. 


  세비야의 그 어느 늦은 밤에, 사람 간의 관계처럼 아주 찐득한 크림이 나를 불렀다. 마치 이걸 먹지 않으면 머리 아픈 생각들의 엉킴이 절대 풀리지 않을 것처럼 후루룩 하고 목구멍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스파게티여야 했다. 짧은 펜네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거기에 내 고민을 날려버릴 정도로 청량감 있으면서, 나를 기분 좋게 할 달달한 콜라가 필요했다. 이왕이면, 바람도 솔솔 부는 야외 테이블이면 좋겠지. 


  시계가 새벽을 가리키는 그 시간에, 츄리닝 바람에 숙소를 슬며시 빠져나온 한 한국 여자가 세비야 골목의 동네 파스타집으로 향했다. 흠... 생각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고, 그렇지만 의미는 있는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끝!  크림 파스타 한 그릇에 콜라를 곁들여, 맛있게 흡입하고, 그렇게 세상 무너질 것만 같던 고민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세비야 파스타 맛집, La Bamb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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