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토끼 Oct 22. 2019

4. 사려니숲길에서, 내려다보다

내려다보면, 삶이 느껴진다

  비 온 뒤 사려니 숲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왼쪽 위를 보니 하늘에 닿을 듯 솟아 있는 나무들이 있고, 고개를 조금 오른쪽으로 돌리니 안개가 자욱한 하늘이 있다. 시선을 아래쪽으로 조금 내리니 수많은 종류의 풀들이 보이고, 더 아래로 내리니 흙바닥이 있다. 생각해보니, 땅을 내려다본 적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여행에서.


  흙 가까이 자라 있는 풀과 이끼, 그리고 바위, 그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작은 곤충들. 아래의 세상에는 그들이 옹기종기 어울려 살고 있었다. 하늘을 보면 숨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드는 반면, 땅을 내려다보는 것은 무언가 모를 경외감이 느껴졌다. 올려다보는 것이 탈출하는 듯한 느낌이라면, 내려다보는 것은, 나와 같은 높이에서 지내고 있는 생명체들이라 그런 걸까, (조금 거창하지만) 무언가 모를 삶이 느껴졌다.    


  고개의 각도를 아래쪽으로 두고 흠- 하고 크게 그리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면, 나무의 피톤치드향과 함께 흙내음이 코를 지나, 머리를 한 바퀴 돌고, 다시 폐로 내려갔다가, 손 끝과 발 끝까지 쭉 퍼지는 느낌이다. 나도 초록이 될 것 같다.  


  나는 이때 이후로 여행을 가면, 습관적으로 내가 발 디디고 있는 땅을 본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질 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3. 갈치조림과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