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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Oct 21. 2019

3. 갈치조림과 엄마

제주에서, 엄마 생각

  엄마도, 여행 가면 내 생각해?

  4월에 또다시 제주로 도망을 쳤다. 1월의 제주를 봤으니, 이제 날씨 좋은 제주를 볼 차례! 이번엔 더 길게, 3박 4일 일정으로 갔다. 그런데 내가 도착한 그 날, 제주에는 폭풍우가 불었다. 캐리어에서 손을 놓으면 캐리어는 저 멀리 굴러가 있고, 우산은 펴자마자 뒤집혔다. 혼자 여행을 가면 늘 소형차를 렌트하는데, 공항부터 숙소가 있는 성산까지 차가 뒤집힐 뻔 한 위기를 겪었다. 이쯤 되면, 난 제주 바람의 요정인 건가. 두 번 연속으로 비바람을 몰고 오다니, 대단하다 나도.


  오늘은 밖에 나갔다간 정말, 1월에 날아가 버릴 뻔했던 그 경험을 평지에서 다시 한번 느낄 것 같았다. 그래, 안전이 최고지.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옆에 있는 맛집을 또 기가 막히게 찾아서 이동한다. 최근에 누군가 ‘아직도 제주에 가서 갈치조림을 먹는 사람이 있더라, 아재같이.’라고 하던데, 그 아재, 여기 있다. 갈치조림은 내 최애 메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에 뽀얀 고둥 미역국, 그리고 갈치와 무가 환상 조합을 이룬 갈치조림. 거기에 밑반찬들은 또 어찌나 맛있는지. 음식의 맛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눈을 감고 씹는다. 음~ 이 맛이지, 제주의 맛.


  




  옆 테이블엔 모녀가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재잘재잘 떠들며 사진도 찍고, 가끔씩 손도 잡았다. 우리 엄마도 갈치조림 좋아하는데, 같이 왔으면 정말 맛있게 먹었을 텐데. 엄마도 나랑 여행 가면 정말 행복해하는데. 


  3년 전엔가 엄마랑 둘이 일본 여행을 간 것이 둘이 갔던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다. 몇 차례 더 같이 가고 싶었지만, 유치원 교사인 엄마의 방학과 내 회사 휴가를 딱 맞추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핑계임). 2박 3일 일본 온천 여행에서 엄마는 이틀 밤 내내 싱긋 싱긋 웃었다. “좋다~ 너랑 오니 좋다.” 어떤 온천을 봤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에는 하나도 집중 못하면서 그저 나랑 온 게 좋다며, 둘이만 호텔에서 자는 게 너무 좋았다며, 엄마는 그렇게 주변 풍경은 기억도 하지 않고 ‘함께인 시간’만을 너무 행복해했다.


  혼자 여행을 가면 ‘잘 왔어, 잘 지내고 있어, 걱정 말어.’ 등의 매우 무뚝뚝하게 생존신고만 하던 딸이 처음으로 갈치조림 인증샷을 보내며 오그라드는 멘트를 했다.


나 : “엄마, 갈치조림 맛있다. 엄마랑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 생각나네. 엄마도 친구들하고 여행 가면, 내 생각한 적 있어?”
엄마 : “당연하지, 어딜 가든 항상 너랑 같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엄마의 즉답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들이랑 여행을 잘 다니는 엄마라서, 당신의 시간을 마음껏 즐기는 줄 알았는데, 엄마는 내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인증샷이라도 보내지, 엄마. 딸, 여기 너무 좋다, 같이 오고 싶었다고 얘기를 좀 하지. 엄마는 표현도 못하고 항상 내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처음으로 여행 중에 엄마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너무 미안했다. 미안해, 엄마, 무뚝뚝한 딸이었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갈치조림과 창밖에 내리치는 차가운 비바람 사이에서, 나는 몇 번이나 눈물을 훔치며 밥을 먹었다. 엄마가 정말 많이 보고 싶었다.





(커버 이미지 : 제주 세화해변)

(제주 추천 맛집 (성산 부근) : 부촌, 갈치조림과 고둥미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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