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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Nov 29. 2019

오해가 있었어

왜 우리는 그동안 말하지 못했을까


친했던 친구와 깊은 오해가 있었다.

오해에서 시작된 서운함은 눈덩이처럼 커져서, 설산이 되었고,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볼 수 없었다.




그녀와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3명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패밀리’라고 부르며 공부에 대한 고민, 가족에 대한 고민, 연애에 대한 고민을 나눴고,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던 열일곱부터 열아홉까지의 그 시절을 함께 이겨냈다. 대학에 가서도 우리는 가까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유를 알 수 없게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긴 했다.  


친구가 결혼하던 날, 그래도 의미 있는 날인데 마음 깊이 축하하기 위해 같이 친했던 몇몇 친구들과 함께 축의금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금액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다고 했다. 얼마가 왜 누락되었는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그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친구는 우리에게 섭섭했고, 우리는 그런 친구에게 서운했다.


이상했던 그 날의 일을 다시 수면 위로 꺼내지 않았지만, 그 순간부터 정말 우리는 얼굴을 보지 않았다.


4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는 만나지 않았고,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아주 형식적이었고, 한번 보자, 그래 봐야지, 하면서 미루고 미뤘다.


그러다가 드디어, 어떤 이유로 오늘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잘 지내? 애는? 잘 크고? 회사는 어때? 어떤 일 하고 있는 거야? 어색해서인지 서로 사는 이야기들만 한참을 늘어놓으며 시간이 잘도 흘러갔다. 우리 엄마 진짜 웃긴다? 최근에 내가 배가 아팠는데... 정말 쓸데없는(?) 사소한 이야기들도 나눴다.


‘그 날’에 대해서는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 이제 가야겠다.” 집이 먼 친구는 일어나려 했다.

“근데, 있잖아...” 나는 굳이 그 날의 일을 꺼냈다.


그 날의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 서로 불편하지 않을까? 뭐, 이제 가정도 있고 서로 딱히 엮일 일도 없을 수도 있는데, 지난 얘기를 한들 뭐가 달라질까? 수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얘기를 꺼낸 그 순간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본능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그동안 나는 미안했다. 친구에게 무척이나 서운했던 경험이지만, 그녀에게도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인데, 나는 그것을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에도 그녀가 그 이야기를 꺼내기를 기다렸지, 내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그만큼 친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나를 의심했다고 나 혼자 결론을 내렸다. 그게, 그렇게 미안했다. 그리고 오늘, 그 말을 꼭 그녀에게 하고 싶었다.


그녀는 나에게 내내 미안했다고 했다. 그때 본인이 왜 그랬었는지 지나고 나서 정말 후회를 많이 했지만, 또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내기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정말 많이, 미안해했다.


몇 년을 묵었던 이야기를 막상 나누고 나니, 참 별 게 없었다. 친한 친구에게 엄청나게 배신당한 사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 혼자 드라마를 찍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렸고, 결혼이라는 큰 행사를 겪으면서 상대를 덜 배려한, 있는 그대로의 말을 했을 뿐이고, 그러고서는 둘 다 마음이 상했고, 몇 년을 서로 망설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서운해서 안 보게 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힘든 세상 살면서 굳이 나랑 안 맞는 사람까지 맞추고 살 필요 있어? 싶기도 했고. 애매한 서운한 감정이 생기고, 말하지 않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안 보는 사람이 된다.


살면서 겪는 서운한 일들이 어디 이런 것만 있을까. ‘미친 거 아니야?’ 하면서 황당할 정도로 이해가 안 되는 누군가의 행동들도, 그 당시 어떤 사정에 따라 실수로 나온 행동일 수도 있고, 미처 나를 배려하지 못한 있는 그대로의 행동일 수도 있고, 또 그 모든 것들은 어쩌면 시간이 흐르고 잊히기 마련일 수도 있다. 일일이 상처 받고, 일일이 세상 큰 일 난 것처럼 반응하기엔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하고, 상대방을 100% 배려할 수도 없으며,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서운함’이라는 것이 하나의 단일한 감정이라면, 우리는 모두 그 서운함을 누군가한테 받고, 다른 누군가에게 또 주고, 서로 돌림 막기를 하며 모두가 누군가에게 서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사람이니 ‘아무에게도 서운해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난 보살이 아니니까.

다만, 서운한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용기 내어 솔직히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당신을 좋아해서, 그렇게 서운했다고. 혹시 무슨 일이 있었냐고. 그리고는 가족의, 친구의, 연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당신도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내가 왜? 굳이 먼저?’하며 괜한 자존심 세우지 않고, 오해가 눈덩이가 되기 전에,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지, 하고 다짐해본다. 적어도 오해의 눈덩이가 설산이 되어, 그를 보지 못하는 일은 없어지겠지.


(커버 이미지 : 성수동 맛집, 누메로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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