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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Oct 28. 2019

당신이 궁금하지 않아

사랑이 식는 바로 그 순간

  관계는 유리알 같다.

  내 오랜 친구 E와의 관계는 올해로 18살이 되었고, 10살이 되었을 땐 ‘10년 우정 기념 파티’ 비슷한 것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30살도 넘어 이제 더 이상 세지 않는 엄마, 아빠, 동생과의 관계도 있다. 또 생후 142개월 된 연인과의 관계 (feat.11년 10개월)도 있다. 마지막으로, 생후 402개월 된 나와의 관계도 있다. 때로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우정이란 이름으로, 또 의리라는 이름으로 긴 시간을 함께 해 왔지만, 이 관계가 깨지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초기에 서로가 가까워지는 순간은 설렌다. 엄마와 아빠가 아기를 처음 만났을 때, 아기가 어린이가 되어 ‘엄마, 아빠’를 끊임없이 부르며 부모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 처음 만난 사람과 생각보다 죽이 잘 맞아 매일매일 연락하고 취미를 나누며 절친이 될 때, 사랑이 시작되면서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해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할 때. 우리는 서로를 궁금해하고, 탐색하고, 알아가는 기쁨을 맞이한다. 서로의 사랑스러운 면을 알아가는 것은, 행복이다. 


  그리고 곧, 서로의 꼴 보기 싫은 면들을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 ‘쟤는 왜 저러지?’ ‘아, 은근히 짜증 나네.’ 말하지 않고 참지만, 이런 생각이 머리를 때리면, 그를 향해 엄청나게 달려가던 마음의 속도가 주춤한다.    


  예전엔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 그 사람 때문에 설렜었는데, 갑자기 서운해진다. 예쁘게 말하는 친구의 말투가 좋았었는데, 이내 짜증이 난다, ‘얜 왜 이렇게 의견이 없어’ 하고. 나만 바라보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았지만, 이제 귀찮아진다. ‘왜 이렇게 자꾸 말을 걸어’ 하면서. ‘정말 맛있게 밥을 잘 먹는다’고 생각했던 밥을 쩝쩝거리며 먹는다거나, 밥그릇을 싹싹 긁어먹는 습관이 미워 보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당신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게 된다. 궁금하지 않게 되는 순간은, 사랑이 식는 시작점 일지 모른다. (연인이든, 친구이든, 가족이든 모두 비슷한 것 같다.) 궁금하지 않게 되면, 그렇게 단단했던 긴 시간들에 틈이 생기고, 그 틈이 깨지면 유리알처럼 깨진다, 한 번에. 와장창, 하고.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어반자카파의 가사가 마음을 파고든다. 무관심의 순간은 상대에게 너무나도 잘 전해지기 때문이다.  


  관계에 있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슬플 때가 있다. 나는 쿨한 관계를 주장하는 사람이지만, 모순적이게도 가끔은 그 무소식의 관계들에 서운하기도 하다. 당신이 ‘잘 지내? 어떤 일이 있었어? 그때 너는 어떤 생각을 했어?’ 하고 물어봐주면, 나는 초록의 살이 돋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도 묻지 못하면서, 이런 것을 당신에게 바라고 있다.)


  당신이 궁금하지 않게 되는 건, 어쩌면 내가 당신을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하면서 정작 가장 사랑하는 그 사람을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서로의 새로운 일상과 새로운 생각과 변해가는 모습을 알아가며, 그 사람을 계속 발견해간다면 ‘관계의 지루함’이 조금은 더뎌지지 않을까.   


  다시 한번 당신이 먹는 된장찌개를 바라본다. 당신이 된장찌개를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당신은 된장찌개의 쓴 맛을 좋아하는 건지 뜨끈한 맛을 좋아하는 건지, 어떨 때 특히 된장찌개가 생각나는지, 진한 국물을 좋아하는지 연한 된장 맛이 나는 국물을 좋아하는지, 가장 뜨거울 때 먹는 것을 좋아하는지 좀 식혀먹는지, 밑반찬을 많이 먹는지 아닌지. 궁금해본 적이 없었던 많은 것들이 궁금하다.


  당신을 다시, 사랑하게 된다.  



(커버 이미지 : 성수동 맛집, 누메로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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