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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Oct 04. 2020

10. 세상은 평등하다면서요?

바둑판 위, 승부는 평등하다 (feat.신의한수: 귀수편)

  추석 특집 영화인 ‘신의한수-귀수편’에서 장성무당으로 나오는 원현준 배우는 ‘고개 들지 마라, 길을 잃는다’라며 현혹수를 쓴다.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현혹수들에 우리는 흔들리는가.  


'신의 한수: 귀수편' 영화 포스터 (출처: 나무위키)
'신의 한수: 귀수편' 영화 중 권상우와 장성무당의 바둑 (출처: 동아닷컴)



  생각해보면, 나의 어린 시절, 바둑판을 통해 어른들의 세상을 배웠던 것 같다. 
  
 (그땐 그게 ‘세상’ 인지도 몰랐지만)      




  나는 6살 때부터 초등학교 6학년이 되기까지 꼬박 7년을 바둑을 배웠다. 바둑학원에는 어린 꼬마들이 모여, (지금은 아닐지도 모른다, 25년도 전인, 라떼의 이야기다.) 발이 저리도록 무릎을 꿇고 앉아 참을성을 배웠고, 부득탐승, 사소취대, 세고취화... 위기십결을 외우고, 정석을 외우고, 동료와 한 판을 펼친 후, 복기를 했다.     


  나를 딸처럼 예뻐해 주셨던 바둑 선생님이 늘 하셨던 말씀은 ‘바둑판 위에 세상은 평등하다’는 것이었다. 바둑판 위에서만큼은 겨우 열몇 살 먹은 꼬마 여자아이가 마흔이 넘으신 학교 선생님도, 엄청 돈 많은 아저씨도, 힘이 센 깡패 아저씨도 이길 수 있었다. 물론, 바둑대회에 나가서는 나보다 더 쪼꼬마한 동생에게 지고는 징징징 울고 돌아온 적도 많았다. 승부의 세계는 정말 냉정했고, 나는 그 매력에 풍덩 빠져버려, 초등학교 때 내 별명은 늘 ‘바둑소녀’였다. 


  네모난 바둑판 위에서 우리는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전술을 펴고, 내 전술을 끊임없이 변경하고, 많은 판단들을 하고, 현혹수를 두고는 상대를 살피고, 상대가 실수하기를 기다리고, 또 승부수를 날린다. 나와 상대의 미래의 수까지 예측하며 승부를 내 쪽으로 가져오기 위해 경우의 수를 만들어보자면, 한 판의 바둑인데도 정말 머리가 부서질 것처럼 집중을 해야만 했다. 


  영화에서는 ‘세상은 둘 중 하나야, 놀이터가 되던지, 생지옥이 되던지’라고 했는데, 이길 것 같으면 그 판은 나를 중심으로 한 놀이터가 되었고, 이미 밀려버린 판은 한 수 한 수가 마음이 찢어지는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어린 시절 선생님의 말씀이 역시나 정답이었다. 세상은 전혀 평등하지 않았고, 평등한 곳이라곤 정말이지 스포츠의 세계뿐이었다. 바둑판 위 세상은 내 어릴 적이나 성인이 된 지금이나 평. 등. 했고, 바둑 세계에 있는 모두는, 프로기사든 아마추어든 일반인이든, 이기고 지는 것에 승복해야만 한다. (이런 말 하면 내가 무슨 프로바둑기사나 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승부가 있는 스포츠에 빠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다시 한번 그동안 잊고 있던 바둑을 배워보기로 했다. 가장 기초부터, 요즘 방식인 유튜브를 통해, 하나씩 하나씩. 오늘 배운 ‘단수의 기술’ 중에는 ‘내 돌이 상대보다 약할 땐 ’연결(수비)‘하고, 상대보다 강할 땐 ’끊어라‘(공격)’고 했다. 아... 이는 조직생활에서든 사람 관계에서든 정치에서든 가히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역시 바둑엔 인생이 있다는 말을 다시 실감하며, 어릴 적엔 마음 깊이는 몰랐던 삶의 교훈을 하나하나 다시 곱씹어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의 명언! 

  이창호 9단: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이세돌 9단: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는 건 최고가 되기 위한 방법 가운데 가장 힘든 길이다”  


  캬~  (내가 실천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역시 인생의 진리다!        


팬심에서 우러나와... 이창호 9단&이세돌 9단 사진 (출처: 사이버오로, 201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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