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것의 색깔 (feat. 우정)
한동안 넷플릭스의 중국 드라마인,
“겨우 서른”에 푸욱- 빠져있었다.
40화가 넘는 분량인데,
꾸준히 챙겨 보다 보니, 벌써 끝이다.
상하이에서 서른의 현실을 살고 있는,
가정생활도 일도 완벽한 구자,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왕만니,
소소하지만 당차게 살아가는 중샤오친,
이 세 사람의 이야기다.
상하이의 빡빡하고 경쟁적인 삶이
서울의 우리 젊은이들의 삶과
꽤나 닮아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가족과 같이 슬픔과 기쁨을 모두 함께 하는
“친구”라는 이름이었다.
완벽했던 구자의 삶이
남편의 외도로 산산조각 났을 때,
그녀의 모든 아픔을 함께 짊어지며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눈물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되려 너무너무 부러웠고, 조금은 얄밉기까지 했다.
예전의 나에게 친구란 이름은
“끓어오르는 빨간색” 같은 느낌이었다.
열여덟.. 그리고 아마 이십 대 초반까지도...
우정, 의리, 가족...
이 모든 것의 주인공은 가족보다 친구였던 것 같다.
자, 이제 라떼 나오신다.
나 때는 말이지...
내가 한참 놀던 대학생 땐 말이지, 진짜로..
집에 일주일에 세번 들어가던 때가 있었다니깐...
나 진짜 남자고 여자고 친구 많았지...
모임을 하루에 두세 탕 뛰기도 하고 말이지...
친구가 진짜 힘든 일이 있지?
진짜 두 팔 걷어붙이는 의리녀였지 내가.
바람피운 남친한테 커피 끼얹으러 간다는 친구랑
목적 달성 후 유유히(?) 빠져나오기도 하고...
성적표 슬쩍해서 부모님이 보기 전에
점수 고치는 친구랑 함께 있어주기도 하고...
나이트에서 남자들하고 싸움 붙었는데
내가 친구를 구하러 가기도 했지...
함께라면, 두려운 게 없었던...
정말이지, 친구는 나에게
또 하나의 가족 같은 의미였다.
평생, 변치 말자는... 굳은 약속과 함께.
지금은 벌써 서른하고 여섯이 더 되었는데...
그 스무 살 때의 피를 나눴던 듯한 친구들은
이제 누군가의 와이프가 되고, 엄마가 되어
저마다의 바쁜 삶을 살고 있다.
나에게 “친구”라는 말은
아주 옅어져 버린, 아련한 핑크빛이 되었다.
카카오톡이며 화상통화며...
그 예전보다 연락이 너무나도 쉬워진 오늘날인데...
내 핸드폰은 전처럼 울리지 않는다.
가끔은 외로울 때도 있고,
연락 없는 친구들에게 서운해하면서도
막상 나조차도 시시콜콜한 일로
친구에게 쉽게 연락하지 못하지만...
“그래, 원래 다 그런 거야. 친구 다 필요 없다” 는
어떤 어른들의 말을 아직도 믿고 싶지 않다.
내가 기다리면,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친구들아, 나 여기서 기다릴게.
그리고 가끔은 그냥, 한 번씩 연락할게.
절대 부담 갖지 말고,
다섯 번에 한 번은 보려고 노력해보자!!!
늦은 밤이지만... 친구 몇에게 카톡을 보내본다.
“보고 싶어, 우리 만나자!!!”
유월 어느 날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파란 하늘 아래서 스무 살 그 언젠가처럼
거리를 활보하며 걸어봐야지.
선글라스 딱 끼고, 드리마 속 주인공 친구들처럼.
시간이 흘러 우리가 마흔이 되고 쉰이 되면,
그때 나에게 “친구” 는 왠지...
아주 선명한 초록이나 파랑의 느낌이
되어 있을 것만 같다.
(커버 이미지: 삼청동 카페 ‘달’. 달이 기울지만 다시 차오르듯이, 우리들의 관계도 기울 때도 차오를 때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