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과 야근 중 굳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feat. 직장인의 하루)
최근에는 후배들이 이런 질문도 많이 한다.
“일 없는 직장에 가서 워라밸을 지키며 사는 것이 좋을까요,
일 많은 직장에서 얼른 성장하는 것이 좋을까요?”
로펌, 컨설팅, 투자은행(IB) 등 돈은 많이 주지만 야근이 많기로 유명한 업계의 선배들이 말한다.
“후배가 우리 회사에 오고는 싶은데, 야근은 싫대. 그럼 어떻게 답을 해줘야 해?”
어느 날 꼭 가고 싶던 대기업에 취직한 후배가 고민 상담을 해온다.
“언니, 구매부서에 배치를 받았는데, 일이 진짜 없어요. 출근해서 커피 마시고, 인터넷 서칭을 해도 시간이 안 가요. 이러려고 이 회사 들어온 거 아닌데, 저 지금 좀 이상한 거죠?”
이번엔 모두가 부러워하는 공무원이 된 친구의 말이다.
“나 지난 주말에도 회사 나갔어. 야근은 일상이고. 이 월급 받으면서 야근하고, 내 저녁 시간도 다 뺏기고. 이렇게 살아야 하냐, 진짜?”
컨설팅 회사에서 일했던 나의 신입 시절 일과를 간단하게 소개해 보면...
오전 9시. 출근, 불꽃 리서치를 시작, 장표(PPT) 작성
오전 10시 반. 팀장과 자료 리뷰 회의
오전 11시. 고객과 미팅
오전 11시 반. 고객 미팅 결과를 가지고 다시 장표 수정
오후 12시~1시. 맛있는! 점심시간
오후 1시 반. 프로젝트 팀 내부 회의
오후 2시. 고객과 미팅
오후 3시. 고객과 미팅한 내용 정리
오후 3시 반. 고객과 미팅한 내용 정리한 걸로 회의
오후 5시부터. 또 리서치, 장표 작성
저녁 7시~8시. 맛있는! 저녁시간
저녁 8시부터. (2라운드 시작) 또 리서치, 장표 작성
저녁 9시 반. 상무님이 오셔서 회의
저녁 11시. 상무님 회의 결과에 대해 팀 추가 회의
밤 12시. 오늘 업무 정리하고 퇴근
(새벽 2시, 3시에 퇴근하는 날도 꽤 있었다. 아흑...)
내가 정리했지만, 하루 일과가 참, 징글징글하다. 하루 종일 회의의 연속이다. 회의를 준비하기 위한 자료 조사와 정리, 회의를 준비하기 위한 또 다른 회의, 진짜 회의, 회의 결과에 대한 또 다른 회의, 상무님이 오셔서 오늘 했던 회의를 브리핑하고 다시 회의, 상무님 회의 결과를 어떻게 반영할지 또 다른 회의...
내 일은 그럼 언제?
5분, 10분이 아쉬워서 틈 나는 대로 스스로의 장표(PPT 보고서를 얘기하는 업계 용어)를 수정 보완해야 한다.
컨설팅이 하고 싶어서 컨설팅 회사에 들어간 것이지,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싶어서, 또는 야근을 하기 위해서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던 것은 아니었다.
하루를 보내고 나면 녹초가 되어 택시 타고 집에 들어가고, 씻고 자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그럼...)
내가 좋아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고 가끔은 변태 같지만(?) 야근하며 즐겁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일은 정말 원 없이 했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 (야근 때문은 아니고)
커리어 상의 이유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새로 간 회사도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보통은 7-8시에 퇴근할 수 있었고,
더군다나 처음 이직했을 땐 내가 당장 할 수 없는 일이 없어서
나도 ‘일 없는 회사’ 체험(?)을 1달 정도 할 수 있었다.
오전 9시 반. 출근, 어제 보던 자료 보기
오전 11시. (이쯤 되면 졸림) 다시 아까 그 자료 보기
오후 12시~1시. 맛있는! 점심시간
오후 2시. (당시) 팀장에게 회의를 요청, 자료 초안을 보여줌
오후 3시. 별 소득 없는 피드백을 듣고, 자료를 끄적이며 수정
오후 4시. 다시 아까 그 자료 보기
오후 5시. 내일 할 일을 만들기 위해 리서치
오후 6시 반. 퇴근하고 싶은데 민망하여 자리를 지킴.
아까 보던 자료를 다시 보는데, 눈을 뜨고 있으나 잘 보이지 않음
오후 7시. (못 참겠다) 퇴근
위아래 시간표가 정말 대조적이다.
일이 없음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고수라 했건만,
나는 불행하게도(?) 그런 DNA가 없는 사람이어서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물론 두 번째 회사에서의 이러한 생활도 채 한 달을 못 가고 다시 바빠졌지만,
경력으로 이직한 초기 1개월은 ‘일 없는 생활’을 제대로 체험해봤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회사(국제개발협력; ODA)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 시작한 일이었는데,
세상에, 할 일이 없으니 미추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의 이 순수한 열정을 발휘할 곳이 아예 없다니!
결국 나는 스스로를 ‘(일이 적은 것보다는) 일이 많을 때 에너지가 폭발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게 되었다.
일이 많아야 꼭 좋고, 일이 없으면 안 좋다,라고 말할 수 없다.
또 반대로 일이 없어야 좋고, 일이 많은 직장은 별로다,라고도 말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일이 많았을 때 더 즐거웠는가, 일이 없었을 때 더 편안해 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그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이냐는 것이다.
아무리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도 하기 싫은 일이 많은 것은 싫다.
또 아무리 일을 싫어하는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일 많은 직장 vs. 일 없는 직장’을 비교하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를 고민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 고민의 답이 명쾌하게 나왔다면,
그다음에 일이 많고 적고에 대한 나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된다.
내 성향을 잘 모르겠다면?
일단 커리어를 시작해보면서 나의 ‘업무적 성향’을 알아가는 것도 가능하다.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 업무적 성향을 모두 알고 시작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겪어가며 나 스스로를 알아가면 된다.
그리고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너무 스트레스 받기 없기!
스트레스 받으면 방향을 바꾸면 그만이다.
(커버 이미지) 제주 플레이스캠프, 스피닝울프 펍에서
"당신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 저는 전 직장 회사 동료인 '꿈꾸는 신팀장' 님과 함께 비슷한 질문으로 각자 다른 이야기의 매거진을 펴내고 있어요! 저와는 완전히 다른 신팀장님의 '일 없는 직장 vs. 일 많은 직장' 편을 참고하려면,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https://brunch.co.kr/@mayceline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