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좀 가만히 내버려 둬 주세요!
[후배의 고민]
저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상사들의 스타일이 다 너무 다른 거예요. 어떤 이슈가 생겼을 때, 팀장님은 빨리 다양한 경우의 수를 파악해서 해결책까지 정리해오길 바라는 것 같고. 제 바로 윗 선배는 ‘야, 이 정도까지만 하면 돼, 뭘 그렇게까지 해’ 하면서 어느 정도 적당한 선까지 확인해서 보고하기를 바라고. 저는 그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팀장님 말을 듣자니, 윗선임이 싫어하고. 윗선임 말을 듣자니 매번 팀장님한테 깨지고. 맨날 저만 욕먹는 느낌을 받아요. 그리고 누구 말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전 누구 스타일을 배워야 하는 거예요?
조직생활을 처음 할 때 겪을 수 있는 갈등이다. 회사에는 정말 다양한 스타일의 상사가 있다. 라떼는... 어느 정도 일하는 방식이 일률화 되어 있었는데, 요즘은 각자의 스타일을 존중하는 문화이다 보니, 일을 정말 빨리 하는 사람, 느리게 하는 사람, 깊은 수준까지 파고 들어가는 사람, 얇고 넓게 하는 사람, 문제가 생기면 일단 싸우는 사람, 잘 대화하여 푸는 사람 등등... 모두가 각자의 스타일대로 일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좋은 기업 문화가 된 것 같지만, 신입사원 입장에서는 또는 팀을 갓 옮긴 막내의 입장에서는 ‘이거 어느 장단에 맞춰서 행동해야 하나’에 대해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빠른 선배를 본받자니, 느린 선배가 ‘야 뭐 그렇게까지 해~’ 하고, 다른 부서와 갈등이 생겼을 때 달래고 있었더니 ‘그럴 땐 싸워야지! 자꾸 좋게만 말하면 우리 팀을 호구로 본다고!’하는 선배의 잔소리를 들었다.
아니, 나보고 도대체 어쩌라고!!! 니들이야말로 나를 호구로 보냐!!!
최근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후배는 2년 차 신입사원이었다.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친구인데, 얘기를 들어보니 프로젝트에서 모든 업무가 그 친구한테 가고 있었다. A 선배가 “이거 진짜 간단한 건데, 이것 좀 해 줄래요?” 하고, B 선배가 “이거 진짜 급한 거라 빨리 조사 좀 해줘요.” 하고, 또 C 선배가 나타나 “이거 팀장님이 시키신 건데, 내가 한 거 한 번만 검토해줄래요? 오타 체크도 좀 해주고.” 일이 소복소복 쌓여 후배는 주말에까지 일을 해야만 했고, 조금조금씩 도와주다 보니 그 노력이나 성과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후배가 폭발했던 이유는 바로 그 선배들의 각기 다른 잔소리 때문이었다. A선배는 ‘빨리 시킨 일을 빨리 처리해서 넘겨줘야지, 왜 그렇게 느리냐’고 기껏 일해서 보내줬더니 짜증을 냈고, B선배는 ‘내 일은 그냥 시간 되면 해달라는 말이었지, 그렇게까지 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는데.’ 하며 얄밉게 발을 뺐다. C선배는 심지어 팀장한테 ‘얘는 간단한 거 시켰는데도 못하더라’며 직접 안 좋은 평가를 전달했다. 열심히 일했던 후배는, 순식간에 ‘일 못하고 느린 직원’으로 낙인찍혔다.
이 상황에서 내 조언은 2가지였다.
첫째, 내 스타일로 중심을 잡아라!
선배들이 모두 제각각이듯, 나도 내 스타일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내가 일을 느리게 하는 사람인지, 빠르게 하는 사람인지, 내가 잘하는 종류의 일이 뭔지, 못하는 종류의 일은 뭔지, 일할 때 나의 루틴이 뭔지. 내가 나를 잘 알아야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기도 편해진다.
예를 들어, 내 후배와 내가 직접 일해보니, 이 후배는 리서치를 할 때 다양한 의견과 관점으로 리서치를 할 줄 알아서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많은 장점이 있었다. 영어, 일본어 리서치까지 가능해서 더 좋은 정보들이 많이 나왔다. 다만, 아직 이 결과들을 보기 좋게 정리하는 스킬은 많이 부족했다. 내가 후배의 스타일을 봤을 때, 정리를 하기 전에 1안, 2안 등을 만들어 가서 상사와 정리의 방향을 논의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조언했다.
신입사원이나 주니어 때에는 선배들의 업무 스타일을 잘 관찰하고, 배울 것들을 배우면서 내 스타일을 얼른 파악하고 잡아나가는 것이 좋다. 그렇게 되면 누가 업무를 주든, 내 페이스대로 처리할 수 있어지고, 내 페이스를 중심에 놓고 상대방의 스타일을 맞출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너무 빠르고 성격 급한 A 선배에게는 “이 업무를 하려면 3시간 정도 걸릴 것 같은데요. 제가 지금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만 하고 바로 시작하면 5시경에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도 될까요?”하고 사전에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B선배에게는 “제가 지금 이 업무를 하고 있는데, 지금 시키신 일을 보니 그래도 3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많이 급하신 거면 제가 팀장님께 말씀드려 우선순위를 조율해볼까요?” 하고 물어볼 수도 있게 된다. 당연히 B선배는 “아, 그런 거면 됐어. 난 지금 일이 없는 줄 알았지. 그냥 내가 할게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업무를 받고, 보고하는 라인을 가급적 통일한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회사 분위기나 팀 구조에 따라 누구에게도 말하기 애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일들을 조금씩 도와줘서는 남 좋은 일만 하고, 정작 내 노력과 성과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가급적 팀장이든, 다른 사수든 내 전체 업무량과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컨설팅의 경우, 프로젝트 매니저가 될 수 있고, 또는 프로젝트 내의 각 팀 팀장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업무를 주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 업무의 경우 팀장에게 보고하고, 업무를 조정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속도도 조절이 되고, 전체적으로 내가 어떤 일들을 하고 있고 추가로 뭘 하고 있는지를 상사가 알 수 있다. 또 불필요한 업무는 윗 선에서 잘라주기도 한다.
후배 이야기로 돌아가면, 후배는 A, B, C 선배에게 각각 일을 받아서는 안 되고, 그런 식으로 일이 올 땐 프로젝트 매니저(팀장)에게 보고를 했어야 했다. 프로젝트 매니저 차원에서 업무들이 조정되어야 하고, 업무량이 너무 많은 것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어야 한다. (참고로 이 후배는 다음 프로젝트에 들어가서는 이 방법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윗사람들이 많으면, 내 스타일대로 중심을 잡고 일하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임원들이 가득한 TF에서는 위의 2가지 모두 맘처럼 되지 않아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내 스타일을 잡아 나가고, 나는 이런 식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보고라인을 잡아 나가고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조금씩 일하는 구도가 안정화되어 갔다.
돌아보니, 조직에서 중심을 잡아가는 과정을 "적응"이라고 부르는데, 그게 이 '내 스타일, 내 중심을 잡아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직을 하고 나니, 새로운 조직에서 내 스타일을 잡아가는 과정이 필요했고, 그제야 '아, 사람들이 말하는 적응기간이라는 것이 이거구나!' 싶었다. 신입사원이든, 새로 팀을 배정받은 사람이든, 이직을 한 사람이든, 모두에게 조직에서 내 스타일을 잡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 어떤 상황에서든 내 스타일대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내 중심 없이는 계속 다른 사람들의 닦달과 짜증에 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내가 중심을 잡아야, 나를 둘러싼 모두가 편안해질 수 있고, 누구보다 내가 가장 편안해질 수 있다. 중심을 잡는 과정은,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좀 필요하다. 아주 짧게는 한 달, 세 달, 또는 길게는 여섯 달.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어느 정도는 인내하면서, 중심을 잡아 나가 보자.
(커버 이미지) 이태원 맛집, 한남동 맛집 "교양식사"
"뭔가 균형 잡혀 보이는 조명들과 장식들처럼, 내 스타일대로 중심을 잡고 나면,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그 어떤 순간이 올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