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들의 일 잘하는 방법
3년 전부터 팀장을 맡으면서 리뷰(검토) 할 일들이 많아졌다.
한때 내가 제일 싫어했던 순간이 컨설팅 보고서(산출물)에 대해 상사에게, 또는 고객에게 리뷰를 받는 순간이었는데, ‘리뷰만 없으면 참 즐겁게 일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리뷰를 받는 어떤 땐 정말 공포감까지 느껴졌었다. 언제나 마음 무겁게 후덜덜하며 리뷰를 받기 시작했는데, 마무리될 때 아주 큰 수정사항만 나오지 않으면, ‘아, 한 고비를 넘는구나’ 싶어서 뿌듯하기도 했다.
리뷰라는 것은, 자료나 업무가 제대로 되었는지 점검하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 상사의 피드백을 받거나 서로 토론하며 합의점을 찾아 일을 잘 마무리하게 하는 단계이다. 그런데 항상 그 시간은 마치 지적당하거나, 지적하는 순간처럼 되어 버려, 리뷰를 받는 사람에게도 리뷰를 하는 사람에게도 편치 않은 시간이다.
리뷰를 하는 사람이 아무리 좋게 말하려 노력해도, ‘이건 수정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이 상대방에게 듣기 좋을 리는 만무하다. 또한, 리뷰하는 사람, 리뷰받는 사람 등 서로의 위치와 입장도, 어찌 보면 원활한 토론을 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상사가 피드백을 하고, 후배는 그 내용을 듣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팀장을 맡은 순간부터는 임원 보고만큼 후배들의 작업이나 결과물을 리뷰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나는 리뷰하면서 항상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거나, 다른 생각 있으면 얘기해요.’라고 말을 하지만, 리뷰받는 상대방은 “아, 네네, 그렇게 수정할게요.” 하지, 내 의견에 이견을 말하는 경우는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새로 들어온 한 후배가 리뷰를 받던 날이었다. 우리 회사에 온 지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역시나(?) 자료가 논리가 맞지 않았다. “이렇게 만들어야 좀 더 논리적으로 위아래가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A가 맞아야, B가 달성된다는 느낌도 잘 줄 수 있고.” 나는 항상처럼 피드백을 했다.
네, 네, 하던 팀원이 조용히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팀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은데요. 사실 제가 자료를 이렇게 만든 이유는, 정량적인 지표들을 넣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아차! 싶었다.
첫째는, 내 말대로 논리를 챙기다 보니, 정량화된 지표를 넣는 것을 나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고. 둘째는, 이 팀원이 정말 다각도로 고민을 많이 했구나 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00님 말도 맞네요. 그럼 큰 그림은 내가 말한 대로 수정하되, 00님이 얘기한 정량 지표를 신경 써서 넣어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훨씬 좋은 그림이 나오겠네요. 고민 많이 했네. 수고했어요.” 칭찬이 절로 나오는 리뷰였다. 그리고, 내 생각과 팀원의 생각이 합쳐진 아주 좋은 결과물이었다.
나에게 상담해오는 후배들 역시 “리뷰는 진짜 스트레스 받아요. 리뷰하면서 자기 맘대로만 수정할 거면 처음부터 그렇게 얘길 하지 왜 저보고 초안을 잡아오라는 거예요? 진짜 짜증 나요.” 하면서 리뷰의 순간과 상사에 대한 욕을 쏟아낸다.
언젠가부터 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리뷰를 받을 때 꼭 본인이 왜 그렇게 작업을 했는지, 어떤 생각과 고민으로 이런 자료를 만들었는지, 꼭 상사에게 설명하기를 바란다. 상사는 완벽히 그 일의 큰 그림과 디테일을 모두 그려줄 수 없고, 그 일을 가장 많이 고민한 사람은 바로 본인이다. 나쁜 피드백을 듣더라도, 너무 명확히 내가 수정해야 하더라도, 반드시 ‘말대답(?), 아니 변명(?), 아니 설명’ 해야 한다. 설명을 잘할수록, 그 설명이 설득력 있을수록 일 잘러가 되는 지름길이 된다.
당연히 처음엔 그 설명조차 틀릴 때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본인의 의견을 제시하고, 또다시 상사의 의견을 듣는 티키타카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하다 보면 저 바빠 보이는 상사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절실한데, 리뷰가 바로 그 시간이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리뷰가 세상에서 가장 싫으면서도, 리뷰가 끝나고 나면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느껴졌던 것도 그 이유였던 것 같다.
상사마다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화법을 단계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좋다.
“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 방향으로 수정할게요. 그런데 이 부분은 제가 이러이러한 생각으로 작업했었는데, 이 관점을 좀 더 고려할 필요는 없을까요? 혹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방식의 화법을 썼을 때, 말대답한다거나, 불필요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상사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정말 고민을 많이 했던 본인의 업무 스타일에 감동을 받거나, 조용히 본인의 노력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혼난다고 주눅 들지 말고, 짜증 난다고 대충 회피하지 말고, 상사에게 무조건 네네- 하지 말자. 상사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하되, 적절한 말대답(?)과 변명 (?), 그리고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직장생활에서 필수적이고, 나를 위한 행동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리뷰 전에는 상사가 피드백 줄 것 같은 내용을 미리 예상해보는 것도 아주 좋다. 또 상사의 피드백을 잘 못 알아들었다면, “그대로 수정할게요. 그런데 이렇게 수정해야 하는 이유가, A 때문일까요? 아니면 B 때문에 더 가까울까요? 제가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하고 싶어서요.” 하고 물어보는 것도 좋다. 몇 번 상사와 이런 식의 대화와 토론을 하다 보면, 상사가 원하는 방향을 점점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내 경험에도, 리뷰를 할 때 조용히 내 말대로 수정만 하는 사람보다는, 활발하게 본인 의견을 얘기해가면서 나와 방향을 맞춰가는 팀원이 훨씬 빨리 퍼포먼스가 좋아진다. 또 짧은 시간에 나와 합이 잘 맞아진다.
바람직한 말대답으로, 일잘러가 되어보자!
(커버 이미지) 동네 커피빈에서, 박준 작가님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책을 읽으며...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항상 오늘보단 조금만이라도 좋아진 내일을 살려고 하면, 회사 생활도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