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이니, 전 먼저 퇴근합니다! (feat. 너님이 알아서 하세요 이제)
아끼는 우리 팀 후배가 있었다.
그날, 그녀가 해야 했던 그 업무는
유관부서에 반드시 넘겨야 했던 일이었다.
후배는 정확히 6시 반에 나에게 채팅으로
파일을 보내고선, 다 못해서 죄송하다며,
집에 가서 마저 하겠다며 퇴근했다.
내가 파일을 열고 내용을 확인하니,
생각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산출물이었고,
결국 나는 처음부터 다시 작업을 하여,
9시 반에 유관부서에 산출물을 넘겼다.
물론, 후배의 잘못만은 아닐 수 있으므로,
후배의 상황을 좀 더 이해하자면...
(그녀의 사정)
1. 그녀는 내가 준 일을 하려고 했으나,
오전부터 다른 급한 업무들이 쏟아졌고,
그걸 대응하다 보니, 자꾸 시작이 늦어졌다.
2. 또, 그녀는 정말로, 업무 시간 내에
다 하지 못해서 집에 가서 마저 일을 하려고
노트북을 들고 집으로 갔다.
그때, 나의 대처에 대해
해명을 좀 하자면...
그녀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했음에도,
안타깝게도,
그렇다고 내가 그녀의 업무 마무리를 기다렸다가
밤 12시에 유관부서로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마무리만 되는 산출물이었다면
기다렸을지도 모르지만,
완전히 방향이 다른 산출물이라,
그냥 내가 수정을 하는 것이 빨랐다.
또한, 그날의 사태에 대해
팀장으로서의 내 변명을 좀 하자면...
팀장인 내가 오후 2-3시쯤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물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회사에서의 나의 시간은,
그렇게 업무 시간 중 모든 일을 하나하나
챙길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진 않았다.
또한, 왜 미리 업무의 방향을 주지 않았냐면,
나는 많은 업무에 대해 방향을 주기도 하지만,
초안을 만들어온 다음에 방향을 주는 일들도 있다.
업무의 경중에 따라, 중요성에 따라,
난이도에 따라, 다르다.
어제의 그 일은, 충분히 후배가 먼저 초안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일이었기에, 믿고 맡겼다.
이러한 내 팀 운영의 방향, 업무의 방향을
후배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그녀에게 바랐던 점은...
1. 그 업무의 Due가 '오늘'임을
몇 차례 서로 이야기했고,
그 상황에서 여러 가지 업무로
처리해야 하는 일의 순서가 밀리는 것을
감지했다면, 오후 2-3시쯤에라도,
한 번만 Communication 했어야 했다.
"팀장님, 제가 이 일을 지금 진행하고 있는데,
지금 다른 업무가 터져서,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팀장님이 얘기하신
내용 정리하는 일을 먼저 할지, A 일을 먼저 할지
의견 주세요."
그랬다면 나는,
"아, 그럼 시간이 급하니, 일단 현재본을 주면,
내가 먼저 보고 의견을 줄 테니 마무리를 하자"라거나
업무의 우선순위를 조금은 다르게 줬을 것이다.
2. 또한, 퇴근 시간이 되었는데, 본인이 일을 다 못 끝냈다면,
최소한 메일을 보낸 후, 전화로라도 어디까지 어떻게 진행했고,
왜 이렇게 작성했고... 등을 설명하고, 이후에 어떻게 작업할지를
상의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나는,
일단 퇴근 후 본인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약속이 있어 9시부터야 다시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냥 내가 하겠다고 했거나,
아니면 여기까지만 더 해주면, 이후엔 내가 하겠다고 했거나,
뭔가 다른 방향으로 업무를 마무리하자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아니, 요즘이 무슨 시댄데, 퇴근 후 일을 시키냐고?)
그렇다, 요즘은 더 이상 엉덩이 붙이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닌,
전문성의 시대이므로,
본인이 맡은 일은 어떤 식으로든 책임감 있게
끝을 내야 한다.
업무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으면서,
'나는 6시 되었으니 퇴근하겠다'는 자세는,
물론 그럴 수 있지만...
조직에서는 명백히, 이를 지적하거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다.
내가 너무 아꼈던 후배의 실수라,
나 역시 다음날 면담을 하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일을 잘 못한다'는 평가를 듣는 사람일수록,
이런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듣는 사람들은,
사실상 업무 시간 내에,
어느 정도 팀 리더와 합의된 quality로,
일을 "마무리"한다.
누가 더 이상 손을 댈 필요가 없도록,
또는 정말 리더가 조금만 손을 대도 되도록,
일을 마무리하는 사람이 "일잘러" 평가를 받는다.
나 역시도, 언젠가... 퇴근해야 한다면서,
그날 또는 내일 보고해야 하는 산출물에 대해
내 윗사람에게 쿨하게(?) 던지고
퇴근한 적은 없나 돌아보았다.
(그걸 받는 상사 입장은, 후배가 사실상
"너가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세요!" 하는..
'빅엿을 날린' 느낌을 받게 된다는...)
나는 정말 급해서 퇴근한 건데,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놓고 퇴근한 건데,
상사가 제대로 방향을 안 줬었는데...
아 몰라, 상사가 알아서 하겠지,
아님 연락을 하겠지...
이러한 생각은 나 스스로의 퍼포먼스를 깎아먹는
아쉬운 행동임을 꼭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커버 이미지) 제주, 종달리, "바다는 안 보여요" 카페.
"후배야, 우리 사이좋게 잘 지내보아요!" 일 잘하는 너와 내가 되어, 평화롭게 지내보아요-! (저도 아직 배우는 중이라, 누가 누굴 가르칠 군번은 안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