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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Aug 16. 2021

회사인들의 유체이탈 화법에 대하여

일잘러들은 유체이탈 화법을 하지 않아요!


얼마 전 친한 지인이 나에게 이야기를 해왔다.


"내가 요즘 후배들하고 회의를 할 때,

좀 이상한 게 있는데...

자꾸 이 친구들이 본인이 한 일에 대해

제 3자인것처럼 얘기를 하는 거야."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인지를 물으니,


"왜 이 업무에 실수가 생겼는지…

엑셀에 본인이 수식을 잘못 넣은 것을

얘기하는데, '수식이 잘못 걸렸다'라고

계속 답을 하는 거야.

난 처음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어.

뭔가 엑셀의 기능에 문제가 생겼단건가,

하고 말이지.

그런데 이게 반복이 되니까,

아, 이게 그녀의 원래 말투구나, 싶더라고.

그냥 '제가 수식을 잘못 넣었어요! 고칠게요'

하면 이해가 빠를 텐데, 왜 표현을 그렇게 할까?

선배한테 혼날 것 같아서 그런 걸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며칠 되지 않아,

또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다.


시스템에 A 사원이 잘못 입력한 데이터에 대해

묻는 건데, 자꾸만 '잘못 입력되었다'라고 해서

'네가 잘못 입력한 걸 왜 시스템 탓하냐'며

나무랐다는 또 다른 친구의 이야기였다.


이쯤 되면,

이러한 현상은 최근 다른 사람들도 겪고 있는

현상 이리라.


나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가만히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성격이 업무적으로는 좀 직선적인 탓인지,

후배가 "앗, 왜 이렇게 쓰여졌지!" 또는

"이상하네, 왜 잘못 들어가 있지?" 하고 말하면,

'그냥 네가 잘못 넣었던 거지'하고 생각하고

넘어갔었어서 이를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일이 후배들에게만 생기나? 생각해보니,

뭐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상급자들의 가장 비판받는 행위 중 하나도

"유체이탈 화법"이다.


리더 본인이 분명 이 팀의 책임자고 결재도 해놓고,

우리 팀에서 잘못한 일에 대해,

"아니, 이거 누가 그랬어! 왜 아무도 못 본 거지?"

하면서 본인은 그 책임의 체인에서 쏙 빠지려고

한다든지.....      


그러고 보니, 참으로 많은 유체이탈 화법이,

회사엔 존재하고 있었다.


난 오늘은, 상사의 의도적(?) 유체이탈 화법보다는,

요즘 우리 또래 회사인들의

'나도 모르게 나오는' 유체이탈 화법에

좀 더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너무 신기해서,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니,

주로 정치인들의 이런 화법에 대하여

검색 결과들이 대거 나왔다.


"유체이탈" 화법의 뜻은 아래와 같단다.


자신이나 자신도 관련된 얘기를 마치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남 얘기하듯 하는 말하기 방식. 즉, 듣는 상대방을 유체이탈을 시키는 화법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인 양 자신과 관련된 얘기를 하는 화법이다.  (나무 위키)


정치인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현상이라 하는데,

아직 일반인들에 대해서는

딱히 많은 연구나 기사는 없었다.


흠,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나뿐인 건가.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유체이탈 화법을 쓰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많이 분석되진 않았다.

내가 무슨 스피치나 정신분석의 전문가는

아니다만...  


그냥 나도 요즘 회사인, 회사러, 직장러로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모두가 생각하는...

'1) 책임회피성'의 표현은 맞는 것 같다.

말을 한 사람의 의도가 있었던, 없었든 간에,

듣는 사람에게 '책임 회피'처럼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가끔은 우리 스스로도 완벽할 수 없기에,

의도적인 책임회피와,

나도 모르게 잠재의식 속에서부터 나온 책임회피,

(내가 한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는 구분하고 싶다.


물론 회사는 나에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 하지만,

나는 회사의 주인은 아니므로,

뭐 내가 책임을 백 프로 지는 듯한

말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또, 나뿐만 아니라,

모든 회사인들이 실수도 하면서

업무를 하기 때문에,

'아, 제가 잘못 업무를 처리했고,

이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까지

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둘째는, 2) 업무적 실수에 대해

'그렇게 큰 일은 아니다'는 생각도 있는 것 같다.


아 뭐, 회사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도

그 실수 하나에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꼭 들어야 하나.


그냥 수정하면 될 걸,

뭐 그렇게 말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할까.


그렇게 큰 일도 아닌데,

그냥 좀 넘어가자- 하는 생각도 있는 것 같다.




또한, 3) 현대인들의 자존감이 높아진 것, 

그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자신을 믿고,

나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한다.

(그게 남들의 기준엔 '최선'이 아닐지라도,

알게 뭐냐- 나에겐 최선이다!)


나는 분명 노력한다고 했는데,

실수가 나온 것이다!

아, 이건 내가 한 게 아닐 거야...

왜 이렇게 된 거지...  

싶은 생각에,

"잘못 입력된 것 같아요"와 같은

유체이탈 화법이 나온 것이다.


요즘은 특히 '잘못했어요'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마치 금기어처럼.

무슨 잘못했다고 빌어야 할 것만 같은 표현이라,

지금도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잘못했다'는 표현은

뭔가 꼰대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 보니, 정말로 내가 실수한 행동에 대해

딱히 어떻게 설명할 표현이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자연스럽게 수동태형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유체이탈 화법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유체이탈 화법이 만드는
회사 커뮤니케이션 오류에 대하여


유체이탈 화법이 나타나는 이유를

열심히 생각해보니,

나 역시 유체이탈 화법을

간간이 쓰는 것 같기도 하여,

이를 옹호하고 싶지만...


회사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유체이탈 화법을 자제하고

조금은 표현을 바꿔보는 것을 추천한다.


생각해보면, "일잘러" 선배들은

유체이탈 화법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이다.


상사가 볼 땐, 후배의 유체이탈 화법은

1) 책임 회피와 같이 들리며,

2) 정확한 문제 파악을 어렵게 한다.

그래서 빠른 의사결정을 어렵게 한다.


리더나 선배들은 후배가 '잘못했다'는 반성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1) 후배가 정확히 문제를 인지했고,

다음부터 실수의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의지를 듣고 싶은 것이며,

2) 정확한 문제 파악이 상호 되었으니,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을

빨리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체이탈 화법을
안 쓸 수가 있나
 

아, 진짜 그러기 싫은데...

"잘못했다"라고 머리를 조아려야 할까.


절대 아니다.

"본인 업무에 실수가 있었으니, 수정하겠습니다"

하면 된다.


실수가 있었음을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그냥 "수정하겠습니다." 하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또한, 꼭 내가 실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평소에도 유체이탈 화법은

조금만 신경 써서 줄이는 것이 좋다.


“김대리, 어때. 오늘 회의 좋았나?”

하는 상사의 질문에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보다는

“네 좋았습니다, 특히 xx 측면에서 좋았습니다”

하고 좀 더 명확하게 말해보자.


“최 과장, 해당 업무는 확인했나?” 하고

상사가 물을 땐,

“확인했던 것 같습니다”가 아니라,

“네, 확인했습니다.

다만, 가격적 측면이 조금 마음에 걸리니,

다시 한번만 전화하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해보자.

 



업무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다.

물론 엄청난 회사의 딜을 망가뜨린 실수나

크나큰 금전적 손실을 만든 실수는

여기서는 예외로 하겠다.  ^^;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책임자들이 위로 줄줄이 있는 것이다.

선배도 있고, 팀장도 있고, 그 위에 본부장도 있고.

그 사람들은 책임지라고 있는 사람들이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업무를

최선을 다해서 하면 된다.


그래도 우리는 프로페셔널 회사인이니,

실수가 있으면 재빨리 인지하고 수정하고,

다음부터는 그 실수 다시 발생하지 않게

노오력을 하면 된다.

실수가 또 발생하면?  

다음엔 진짜로 또 발생하지 않게

노오오력을 하면 된다.


그러면 되는 거다.



(커버 이미지: 양평 힐하우스, 정원 컷.

가까이서 보면 세상 큰 일 같은데,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여러 가지 회사 라이프 중 작은 장면일 뿐이다. 너무 하나하나의 사건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뭐! 난 내 나름대로 노오력 중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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