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항상 상사들은 정확히 업무 방향성(업무 지시)을 주지 않을까?
내가 주니어였을 때는
'왜 상사들은 정확한 업무 방향을 주지 않을까'에 대해
늘 궁금했다.
(나는 컨설팅을 했었어서,
주로 '보고서의 방향', 'PPT 장표의 방향'이었으나,
'업무 방향'이란 것은 보고서 작성 외에도
계약서 검토, 시스템 개발, 기획안 작성 등
많은 '직무'와 본질은 유사하다.)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좀 설명해주면,
훨씬 일이 빠르고 쉬워질 텐데...
때론 원망스럽기도 했다.
방향성을 크게 받지 않은 상태로,
내가 상사나 팀장의
수많은 방향성과 가능성을 상상해가며
초안을 잡는 것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소위 컨설팅회사에서 말하는
'슈퍼 주니어'로 성장(?) 했다.
많이 배울 수 있었지만,
늘 '방향성'이라는 것에 목말랐고,
아쉬웠다.
그래서였을까,
매니저가 되어 후배와 일하게 되었을 때,
나는 정말 자세한 가이드라인을 줬다.
어쩌면, 아주 강박적으로,
정확한 방향을 제시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내 머릿속을 그림으로 다 그려주니)
내가 원하는 산출물은 아주 빠르게 나왔고,
후배들도 나름 만족했고,
나는 마치 아주 유능한 선배가 된 것만 같았다.
그러다 봉착한 고민 상황!
이런 나의 방향을 아주 빠르게 캐치하고
본인의 것으로 만드는 후배들은
나와 함께 일하며 정말 빠르게 성장했지만,
다수의 또 다른 후배들은 내 방식에 익숙해져서
먼저 산출물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차피 니 머릿속 그림을 다 꺼내 줄 거잖아...
얼른 내놔!' 하고
입 벌리고 기다리는 아기새들처럼...
나는 방식을 바꿔서,
나와 처음 합을 맞추는 후배들에게는
자세한 가이드라인과 설명을 주고,
몇 차례 일을 해 본 후배들에게는
정말 큰 그림과 컨셉 정도만 설명하고,
초안을 먼저 맡기기 시작했다.
팀장을 맡고 나서는,
정말 아주 급한 업무를 제외하고는
내 머릿속 그림의 구체화는,
후배의 초안을 보고 나서 시작된다.
최근에 한 후배가 고민을 이야기했다.
"가끔 하루 종일 고민을 하고 일을 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듯한 날이 있어요.
한창 삽질을 하다가 늦게 방향을 잡아서 그런 건데,
이런 날엔 그냥 두고 집에 갈 수가 없어서
야근을 하게 돼요.
저는 이런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아쉬워요."
후배에게 나는,
이렇게 조언했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혼자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에요.
그런데, 일을 잘하는 방법 중 하나는,
상사의 머릿속 그림을 빨리 찾는 것이예요.
빨리 찾을수록 본인의 업무 속도가 좌우될 거예요."
물론 상사 바이 상사다.
머릿속 그림이 아예 없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인,
아주 천하의 못된 상사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정도의 차이이지,
상사의 머릿속에는
어느 정도의 방향이나 그림은 항상 있다.
상사의 머릿속 그림을 찾기 위해서는,
무조건 초안을 빨리 잡아서 가야 한다.
여기서 "빨리"의 정도는
상사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다.
처음부터 꽤 상세하게 그림을 말하는 상사에게는
그 그림을 최대한 구현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1안, 2안 정도로
초안을 만들어서 가는 것이 좋다.
상사의 머릿속이 구체적인 만큼,
초안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때, "빨리"는 2일까지는 괜찮다.
(물론 업무의 시급성에 따라 다르다)
사실상 컨셉만 얘기하는 상사의 경우에는,
초안을 정말 러프(rough)하게 만들어서
정말 빨리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좋다.
상사는 아마, 당신의 초안을 보면서,
그때부터 생각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때, "빨리"는 하루 안이 가장 좋고,
그게 어렵다면, 1.5일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내가 상사가 원하는 산출물을
거의 정확히 만들 수 있는 자신이 있다면,
시간을 갖고 다 완성해서 가면 된다)
초안을 그렇게 빨리 잡기 어렵다고?
당연히 쉽지 않다.
초안을 그렇게까지 빨리 만들려면,
정말 머리를 쥐어짜야만 가능할똥 말똥 하다.
그렇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초안이 나오지 않았다면,
그 고민의 과정에서의 질문이라도
하는 것이 좋다, 가급적 "빨리".
상사는 당신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그때 또 본인 머릿속을 구체화할 것이다.
상사의 머릿속을 최대한 빨리 노크하고,
상사가 '생각할 수 있도록' 하자.
그게 하나의 꿀팁이다!
아니, 그렇다면,
왜 상사들은 초안을 보고 나서야
생각이 구체화될까?
처음부터 좀 구체화해놓으면 안 되나?
상사, 아니 팀장, 아니 임원들은
당신과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한때,
'저 임원은 대체 뭐하지 종일?' 싶었던
임원의 하루 스케줄을 듣고
정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상사들은 정말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물론, 거듭 말하지만,
정말 일 안 하는 나쁜 사람도 있다, 간혹.
그건 인정!)
상사는 큰 그림을 잡고 나면,
얼른 또 다른 업무의 큰 그림을 잡으러
가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조직의 자원(Resource)을 효율적으로 쓰이고,
팀장의 자원을 더 많은 사람들의 업무를 위해
분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민 상담을 했던 후배는
본인이 업무에 대해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그래도 한 번은 나에게 본인의 생각을
퇴근 전에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초안을 보여줄 때도 있고,
고민되는 부분을 이야기할 때도 있다.
팀장이 바빠 보여서 평소 같으면
그녀가 얘기를 못 걸 것 같았을 때도,
이제는 양해를 구하기 시작했다.
'저 이거 5분만 봐주실 수 있으세요?"
그래도 그렇게라도 이야기를 한번 하고 나면,
방향을 찾든, 방향의 실마리라도 찾든, 하게 될 테니,
적어도 길만 헤매다가 집에 못 가거나,
찝찝하게 집에 돌아가는 일을 좀 적어진 것 같다.
모두,
찝찝하지 않은, 나름 상쾌한 기분으로 퇴근하기 위해!
상사의 구름 같은 머릿속의 실마리를
조금씩 찾아가 보자!
(커버 이미지 : 제주, 카페 "마노르블랑" 수국과 핑크뮬리가 너무 예쁜 카페예요!
사진 속 한폭의 그림처럼, 상사의 '머릿속 그림(?)' 을 잘 꺼내어 보자구요!)
* 회사마다, 직무마다 특성이 다양해서
제 이야기가 반드시 답은 아닐 수도 있어요.
그래도 참고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