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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Oct 11. 2019

행복거부증

행복해지고 싶어서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모순

  행복을 느끼고 더 기대하면, 분명 실망할 일이 생길 거고,
그러면 난 너무나 상처 받을 거야.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으면, 뭐든 더 좋게 느껴질 테니,
그러고 나면 난 행복해질 거야.


  내가 이러한 생각의 메커니즘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10만큼 행복했다가 1의 실망감이 찾아왔을 때, 인간은 그것을 1보다 큰 5로 느끼게 마련이고, 사라진 5만큼의 상실에 상처 받고, 그러면 남은 5만큼의 행복에 대한 감정도 희미해질 것이라는 논리. 오래 산 것도 아니면서, 고작 삼십하고도 사년 살면서 스스로 만들어낸, 나도 모르게 체화된 법칙 같은 것.


  기대하지 않고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뭐든 기대 이상일 테니 나도 모르게 행복해질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 행복해지고 싶어서,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단한 모순.




  고등학생 땐 대학생이 되는 것에 대한 환상이 전혀 없었다. 와, 대학생 멋지겠다, 캠퍼스 라이프 멋지겠다, 스무 살이 되면 술 먹어야지, 연애해야지, 행복하겠다 등의 생각을 1도 한 적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스무 살이 되었고, 대학생이 되었고, 연애도 하고, 힘든 적도 있었지만, 나름 괜찮고 재미있는 시간들을 보냈다.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훨씬 좋았다.


  대학교 졸업할 때쯤엔 취업에 대한 기대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은 있었지만, 그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무엇이 더 좋아질지, 어떤 멋진 생활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야, 너무 기대돼~ 취업하면 이건 꼭 해야지! 진짜 행복해지겠다’ 류의 대화를 친구와 나눠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취업을 했고, 졸업을 했고, 30대가 되었다. 역시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취업 후의 삶은 나름 괜찮았다.


  친구들은 나보고 항상 침착하게 자신들의 고민을 잘 들어준다고 했다. 넌 참 어른스러워, 너랑 얘기하면 마음이 편해져, 넌 참 덤덤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여, 어떻게 그럴 수 있니, 하고 말했었다. 나도 나의 행복거부증에 대해 알지 못했을 때엔 내가 그렇게 성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잖아. 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는 거잖아. 푸릇푸릇하게 기대하지 않고 항상 모든 걸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다는 물이 잔뜩 빠진 초록 같은 색깔을 하고 있으니, 그런 거잖아.  


  요즘은 정말 비타민 같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마냥 부럽다. ‘꺄, 난 이거 하고 싶어.’ ‘우와, 나 너무너무 기대돼.’ ‘매일 그런 상상을 하면서 하루를 행복하게 살아.’ 하이톤의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 순간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난 다시 무표정에, 물 빠진 초록으로 돌아온다.




  나도, 너처럼 행복하고 싶다.

  지금은 약 10년 가까이 되어 가는 경력을 잠시 중단하고 집에서 쉬고 있다. 다만, 지금은 하던 일을 더 하고 싶지 않고 쉬고 싶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고, 지금 아니면 쉬기 어려워질 수도 있을 거라는 서른넷 여성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덜컥 나답지 않게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접어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스페인에 여행도 다녀왔다.


  ‘꺄, 여행 어땠어? 꼭 이야기 들려줘!’ ‘쉬니까 어때? 좋지?’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쉽사리 잘 지낸다고 말하지 못한다. 왜일까를 고민하다 보니, 내가 ‘행복거부증’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달했다. 행복하기 위해 온 몸으로 행복을 거부하는, 이 무슨 비정상적인 상황인가.  


  나는 출생의 비밀, 성장배경의 비밀(?) 때문에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혹자는 현재에 불만족하는 성향이 ‘맏이의 특징’이라 했다. 맏이는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고. 그 결과가 나타나서 부모가 행복한 것을 봐야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고. 내가 첫째이고, 동생이 있어서 그런 걸까. 어릴 적부터 엄마아빠의 기대를 충족시켜드리려 노력해 와서, 내 감정 따위 모르고 무작정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때까지 달렸던 것은 아닐까.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이제 ‘인정받는’ 그 기준이 없어져서 이렇게 행복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어떤 심리학 책에서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고 한다고 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나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다 보면, 정작 자신은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추어 살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나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살다 보니, 나 스스로는 행복이 무엇인지 정작 느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일까.


  도저히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행복한 감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도 잊어버린 것만 같다. 아니, 내가 느껴본 적은 있었던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 이거, 병일까? 병원에 가 봐야 하나?

  가까운 친구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어, 세상에 누구도 내 편이 없는 느낌. 돌리고 돌려서 말하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도 동의를 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는 느낌, 얜 왜 이리 나이 먹어도 철없는 얘기만 하고 별난 거야? 하고 판단하는 듯한 느낌. 이런 느낌 때문에 더 안 행복하고, 더 우울해져. 조용히 듣고 있던 친구는 ‘나도 그랬던 거 알지? 시간이 해결해줄 수도 있지만, 너라면 너 스스로 멋진 방법을 찾아낼 거야’하고 덤덤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녀의 위로에 왜 난 또 기운이 나는 걸까. 꼭꼭 숨겨두고 있던 못난 내 모습을 말하고 나니 시원해서일까. 그냥 ‘너 이상한 거 아니야. 할 수 있어’라는 진심 어린 위로를 들어서일까. 아니, 지구 상에 누군가 1명 이상은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덜 외로워진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 나는 여전히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을 찾는 방법을 지금은 아주 잠시 잃어버렸을 뿐.

  행복해질 수 있을까. 여전히 기대가 되지는 않지만, 어떻게 기대해야 하는지 방법을 잘 모르지만, 내가 행복해지게 된다면 지금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우스울까, 이때의 내 모습이 그리울까, 아니면 기억조차 못하게 될까.


  그리고 말이지, 누군가가 나처럼 행복을 느끼지 못하거나, 온몸으로 행복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그렇다고, 이해한다고, 그런 사람이 당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있으니 외롭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해주는 그런 순간이 오면 좋겠다. 앗, 내가 기대를 하게 되다니!  음, 인정, 조금은 기대가 되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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