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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Oct 17. 2019

가족이라는 위로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


  옛날에 (또는 요즘에도) 재벌들은 서로서로 뒤통수 때리는 이 세상에서 그나마 믿을 놈은 가족뿐 이니까, 또는 설사 믿었다 배신당해도 그나마 가족이면 덜 억울하니까 가족을 확장했었다 한다. 결혼을 하고, 또 하고, 자식을 낳고, 입양을 하고 하면서...


  참 내, 가족이 뭐길래.

  나이가 들면서 점점 가족들에게도 하지 못할 말이 생긴다. 가족들에게 왠지 미안한 일들이 생긴다, 내 뜻 같지만은 않은 일상. 또 어른들이 규정해둔 ‘평범’ 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하루하루. 그 안에서 부유하는 나. 엄마는 내가 행복하기를 바랐지만, 나는 마냥 해맑게 행복할 수 없다. 어쩌다 의도하지 않은 일에 마주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한다. 미안해, 엄마.


  “나 힘들어, 안아줘”

  최근 뒤늦게 푹 빠져있던 <멜로가 체질> 드라마에서 은정(전여빈 분)은 남자 친구가 죽은 뒤 이별을 받아들이는 기나긴 시간 끝에, 같이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힘듦을 고백하며 그들의 품에 안긴다. 남자 친구가 세상을 떠난 후, 이별과 상실의 상처 때문에 은정은 꽤 오랫동안 그를 보고 그와 대화해왔다. 허공을 바라보며 말하는 은정을 진주(천우희 분)와 한주(한지은 분), 그리고 동생 효봉(윤지온 분)은 말없이 기다려준다. 은정은 정말 긴 시간을 이별하지 못했고, 드디어(?) 본인이 이별을 받아들이며 무너지는 그 순간에 친구들은 그녀를 말없이 따스하게 안아줬다.  


  힘든 일을 함께 견디고,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함께 견디며, 어떤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 가족이라고, 그렇게 배우며 컸던 것 같다. 그런데 정작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힘들지 않은 척을 해야 하는 상황은 생각보다 많았다. 괜찮은 척, 잘 지내는 척, 기분 좋은 척. 그렇다면, 가족은 내가 배웠던 것과는 다른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참견하고 강요하고 상처 준다면 더더욱 가족이 꼭 필요한 걸까, 싶기도 하다. 가족들 사이에서 더 외로워지기도 한다.


  드라마 속의 진주, 한주, 은정, 효봉과 같은 관계라면, 내 찌질한 모습도 멋지지 않은 모습도 편하게 보여줄 수 있고, ‘아, 망했다’ 싶은 순간에도 함께 할 수 있고, 힘들 때 말없이 기다려줄 수 있고, 나에게 실망하지 않고 나를 판단하지 않는 그런 관계라면, 그것이 내가 배운 ‘가족’의 의미에 가까울 것만 같다. 그래, 함부로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말자.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라는 것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과거 사회의 모습은 이제는 용납될 수 없다. 삼십이 넘은 우리들은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렇지, 이런 건 엄마한테 말하지 못하지.’ ‘남편한텐 못할 말이야’ 하며 씁쓸해한다. 그들을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나의 아픔을 숨긴다. 어떤 경우 부모는 나를 수십 년 간 키워왔다는 이유로, 엄마라는 아빠라는 자격으로 우리의 삶에 마구 침범한다. ‘엄마/아빠 때문에 미치겠어, 정말’ 상속과 증여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육아 노동을 분담하기도 하면서, 또는 그냥 그저 부모라는 이유로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상처 받는다. 가족이라는 이름만으로 어떠한 폭력도 허용될 수 없다.


  민족문화대백과는 가족을 ‘혈연·인연·입양으로 연결된 일정 범위의 사람들(친족원)로 구성된 집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인연으로 연결된 사람들, 이라니. 어느새 확장된 현대사회의 가족의 범주가 새삼 반갑다.  


  손석구는 은정(전여빈 분)에게 묻는다.


  석구: “안아줄까요?”
  은정: “당신이 뭔데 날 안아?”
  석구: “힘드니까. 안으면 포근해”


드라마 <멜로가 체질>


  그 대사의 따뜻함은 유독 오래갔다. 내가 가족들에게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힘들면 안아주겠다고, 안으면 포근하니까. 이유를 묻지 않고 안아줄 수 있는, 그런 게 가족인 것은 아닐까, 하고 ‘가족’이라는 무거운 이름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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