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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Mar 01. 2022

흰머리를 찾는 기분

엄마에게 쓰는 편지

나도 서른일곱이나 나이를 먹었고,

남들보단 덜한 편이지만

가끔 긴 흰머리를 한 번씩 만나게 된다.


숨어있던 이 친구를 발견하는 순간은

혼자 거울을 보다가 ‘헉, 이게 뭐지?’ 하기도 하고,

남편이 옆에서 보고 있다가 ‘어, 여기 흰머리다!’

하기도 한다.


흰머리를 마주한 순간은,

왠지 마음이 허하다.

그래, 나도 이제 그럴 나이지, 싶다가도.

그 하얀 실 같은 물체가 미워져서

입을 삐죽이게 된다.

안 본 척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함께 살긴  싫다.




흰머리를 볼 때마다 언제나 엄마 생각이 난다.


한창 사춘기이던 학생 시절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말했었다.

“나 흰머리 좀 뽑아줄래?

이제 내 손이 안 닿는 곳에 나거든.”


엄마는 왠지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민망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또 미안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이 먹으면 흰머리 나는 게 당연한 거지!

그리고  바빠!!!”

나는 마치 세상을  아는  설교(?)를 하고는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왠지 엄마의 흰머리를 뽑는 시간이 나는 싫었다.

엄마 흰머리는 너무 많았고,

감상에 젖은 듯한 엄마를 보는 게 싫었던 것 같다.

또 긴 시간 엄마 역할을 하느라 희어져 버린

엄마의 머리카락에 내 지분도 있었던 것 같아

그 느낌도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번번이 엄마의 요청을 해 도망갔다.

서운해했던 엄마 얼굴을 뒤로하고…


그게 또 다른 죄책감이 되어 

흰머리를  때마다 자꾸만 엄마가 생각난다.




흰머리는 

누구한테 뽑아달라고 부탁할 데가 다.

나 혼자는 손이 안 닿는 부분이 많고,

남편한테 부탁하긴 왠지 싫다.

미용실에서 돈 받고 흰머리를 뽑아준다면,

냉큼 가서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것만 같다.

 나이가 어서 흰머리가 많아지게 되면,

당장 나는 누구한테 부탁을 해야 할까.


그런데 참,

내가 매번 거절해서…

엄마는 그동안 어떻게 흰머리를 뽑았던 거야? 

내가 매번 잘 안 들어줘서…

이렇게 허전한 마음을 누구한테 얘기했던 거야?


내가 나이 들면서 보니,

그때 엄마의 나이 듦을 함께 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했어.

그리고 이제야 그걸 알게 되어서, 너무 미안해.




(앙리 마티스 전시. 오른쪽 위의 ‘이카루스’라는 그림은 이카루스가 태양에 닿은 후 추락하는 장면을 슬프지 않고 찬란하게 표현한 것이다. 내 어린 시절 수많은 추락들은, 항상 내 편인 엄마가 있었기에, 찬란하게 빛날 수 있었지 않았을까. 나에게 앙리 마티스는 우리 엄마였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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