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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May 15. 2022

시선으로부터, 다만 그녀를 그리워하며

정세랑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


#1.
책은 심시선 할머니로부터 시작하여 그녀의 이야기가 전체를 장악하고, 잠시 그 가족들에게 빠졌다가, 다시 또 결국 그녀에게로 돌아온다. 그 예전 시대에 파격적인 여성 예술가로, 천재 예술가의 뮤즈로, 각종 세간의 이슈들의 중심에 서기도 하면서... 곡절 있는 삶에도 변함없이 중심을 잡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생각을 나누면서, 다만 살아가는 그녀가 존경스럽다.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자유롭게 위해 늘 노력하는 그녀를, 나도 만나고 싶다.


그녀의 삶을 엿보고 있자니, 마치 현시대에는 내가 좋아하는 '밀라논나'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녀에 대한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여성 멘토'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지 않았던가. 잘 살아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너무 답답하고 숨이 안 쉬어지면서,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헷갈릴 때, 그녀들이 내 곁에 계셔준다면, 진짜로 내 이름을 불러주며 '괜찮다, 괜찮다' 말해준다면, 참 좋겠다.
나는 그녀들이, 고프다.   


#2.

그녀의 딸, 아들, 손녀, 손자, 며느리...  가족들의 삶은, 심시선 할머니의 삶과 아주 진하게 이어져 있어서, 어쩌면 '시선으로부터' 뿌리 내려진 느낌도 들 정도다. 방방 뛰며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지수를 보며 엄마 명혜가 '심시선 여사 닮았으면 어떻게든 살아남겠지.' 하고 말하는 장면이라든지, 너무 갑작스럽게 죽은 심시선에 대해 가족들이 '죽음의 방식도 정말 시선다웠다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며 이상하게도 부러웠다. 나도 누군가의 뿌리이고 싶은가 보다, 그게 혈연이든, 가까운 누군가이든, 누군가를 닮고 싶다.
그 누군가가 고프다.

#3.  
시선의 큰 딸 명혜가 말했다. "기일 저녁 여덟 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렇게 심시선여사의 기일 제사가 시작된다. 큰 딸 명혜는 하와이 훌라춤을 추고, 며느리 난정은 서점에서 사 온 하와이 배경 소설을 준비하고, 손자 우윤은 절대 파도를 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드디어 하와이 비치에서 서핑에 성공했던 멋진 파도 거품을 담아왔다.
 
드디어 기일 당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심시선 여사의 살아생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가족들의 마음과 정신 속에 여전히 함께 하는 '시선'을.  
시선으로부터, 나는 그리워한다, 그녀를.

그녀는 나에게 책에서처럼 이렇게 말해줄 것만 같다.
"그래도 좋은 성격이네... 나는 세상에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생각해. 남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이랑 자신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 후자 쪽이 훨씬 낫지."

 


책리뷰 : 정세랑 작가, 시선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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