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퇴사 후 유럽 여행을 계획할 때 자유로움을 가장 먼저 상상했다. 내가 살던 곳과의 완전한 분리는 요즘엔 스마트폰 때문에 어렵긴 하다. 그래도 먼 곳으로의 여행은 전화도 안 받고 카톡도 매우 느릴 수 있는 합당한 사유가 됐다.
혼자 여행을 하는 동안 하루에 1만 보는 애교가 될 정도로 아주 많이 걸었다. 걷다보니 다양한 길거리 예술가들이 보였다. 지하철이나 관광지 앞 또는 광장들을 지나갈때면 의도하지 않아도 보였다. 조그마한 인형극, 바닥에 그림 그리기, 동상 인척 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거리 공연 중에서도 특히나 내 귀를 사로잡았던 건 "음악"이었다. 클래식, 재즈, 팝송.. 장르의 구분 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은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기분을 즐겁게 해 줬다.
리스본에서
1.5번의 파두
파두는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민요로, 우리나라로 치면 아리랑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나는 리스본에서는 파두를 총 1.5번 접했다. 왜 1.5번이냐면, 첫 번째로 식당에서 감상한 공연 외 오늘은 건물 밖에서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파두를 간접적으로만 들었기 때문이다.
이날은 파두를 들을 수 있는 식당에 도착했는데, 이미 공연 중이었다. 밖에서 기다리는데여성 가수의 우렁찬 노랫소리가 창문을 뚫고 나왔다. 그렇게 가게 밖에서 한 15분 정도공연을 들었다. 이전에 고급 레스토랑에서 들었던 파두가 클래식 같이 고상했다면, 바(Bar)에서의 파두는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격정적이었다.
창문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멈출 즈음, 가게 안에 들어갔다. 그런데 가게 안이 너무 좁아서 옴싹 달싹도 못할 지경이었다. 덥고, 정신없고 음료를 시키려면 거대한 서양인들의 벽을 뚫고 가야 했다. 결국 같이 간 일행이 이렇게 말했다.
여기 사람이 너무 많아요.. 나갈까요?
리스본에서
댄싱어롱♬
결국 파두 공연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방황하며 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런데 어디선가 북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진정한 리스본의 힙 쟁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건 그전까지 참여해 본 적이 없었던 길거리 공연이었다.
처음엔 노래에 맞춰 박수만 한 두 번씩 치는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새 다 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다 같이 노래도 부르면서 춤도 췄으니까, 댄싱어롱이라고 내마음대로 이름을 붙여본다. 급기야는 인간 철도를 만들어서 광장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인종이나 성별, 정말 아무것도 관계없이 그저 다 함께 즐기는 시간이었다. 끝나는 게 아쉬웠던 이 공연이 끝나자, 다들 기타 케이스에 동전을 촤라락 던지며 기쁨을 표했다.
JTBC의 비긴 어게인의 여파일까, 이번 겨울에 포르투갈 여행에서는 정말 많은 한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비록 나는 버스킹 출연자들처럼 직접 연주는 못했지만 공연에 일부분 참여한다는 느낌 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다. 난 눈치를 매우 많이 보는 편이다. 사실 한국이었으면 눈치 보느라 공연에 참여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공연이 끝났을 수도 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의 나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게, 역시 여행의 묘미란 생각이 든다.
+번외
사실 오늘은 원래 크루즈를 탈 예정이었다. 이틀 전 타임아웃 마켓 앞의 노을을 보고 충동적으로 구매했는데, 슬프게도 오전에 취소 연락을 받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아쉽다. 나는 못 갔지만, 누군가 리스본을 갈 계획이 있다면 한 번 해보라고 알려주고 싶은 선셋 크루즈 투어. 썸네일부터 너무 낭만적이다. (광고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