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이러고 있겠습니다
한 달 전인가..
문득 떠올렸다.
'나는 어쩌면 생존자일지도 몰라.
그 파란에서 살아남았으니까 생존자야.'
이럴수가..
그런 불순한 말을 입에 담다니...
누가 들으면 어떡하려고....
재빨리 나 자신을 꾸짖었다.
꾸짖고, 재판하고, 검증했다.
요즘은 지난 상반기처럼 최악으로 참담하지 않다.
오히려 살만할 때가 더 많다.
좋은 날은 꽤나 많았고, 소소한 행운도 연달아 있었다.
그래서 더 떠올리게 된다.
'요즘 진짜 살만하다.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평온할 수도 있구나. 사실 예전에 나는 엄청 불행했던 거 아닌가? 그땐 그게 기본인줄 알았는데, 꽤나 힘들었던 거구나.'
이 깨달음은
'어쩌면 나는 불행의 생존자였을지도 몰라'
기어코 여기까지 나아간다.
나는 우울증이 없다.
가족관계도 좋고, 가족들이 다 살아있다.
성폭행을 당한 적도 없다.
전쟁 피해를 입지도 않았고, 홍수로 집이 떠내려가지도 않았으며, 화상 피해를 겪지도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크든 작든 사연이 있다.
나만큼, 혹은 나보다 불우해본 사람들은 지천에 깔렸다.
슬프고도 감동적인 세상이다.
그러니까 나 자신의 실낱같은 절망만 바라보지 말고,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용도로 사용할 것.
그게 올바른 사용법이다.
그렇게 해야 했는데...
나는 왜 이리 사소한 것들이 슬픈지 모르겠다.
1.
내 또래 애들이 여행을 몇 번이고 다녀왔을 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우리 가족 가난하니까, 부모님 아프실까봐 돈을 모았다.
잘벌지 못했지만 일할 때마다 돈을 모았다.
요령도 딱히 없었다. 돈을 안쓰는 게 모으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을, 2년이나 찰거머리처럼 붙은 '왜 안만나줘 스토커' 때문에 왕창 날렸다. 내 피 같은 돈... 얼마나 비참했는지 모른다.
왜 또래들은 그렇게 자주 도쿄니 대만이니 여행을 갈 수 있었을까?
나는 왜 가지 못했을까?
이렇게 허무하게 날릴 돈이라면 진작에 여행을 갔어야 할까, 아니면 어차피 비극이 왔을테니 모은 게 답이었을까.
얼마 전에 친구가 숙소비를 내줘서 난생 처음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나한테는 제주도 가는 것도 머나먼 미래에나 얻게 될 자유일줄 알았다. 근데 생각보다 쉽게 다녀와서 감동이었다.
세월호 세대라서 수학여행 때도 못갔던 곳이다.
사실 당시에도, 집안형편을 생각해서 빠질까 고민했었다. 우리 부모님은 당연히 나를 보내주려고 했겠지만, 그냥 혼자 그렇게 앙큼하게 생각했다.
2.
왜 어른들은 이렇게나 한심하고 아픈 걸까?
10월 쯤인가.. 작은아버지 댁에 갔다. 다행히 모두 나를 잘 맞아주어서 편히 쉬고 왔다.
작은아버지는 한창 현업으로 일하시면서 자녀들과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게 좀 부러웠다. 의지가 되는 아버지라니...
우리 아버지는...
11월인가 12월 쯤인가... 아버지가 나랑 통화하다가 쓰러졌다.
동생과 통화를 할 때, 동생이 아버지 오래 못사실 거 같다고 걱정스러워 했다.
나는 '에이 뭔 그런 소리를 해'라고 응수했지만,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때도 지금도 나한테는 우리 남매가 제일 걱정이다.
우리들이 아직 다 젊은데. 이제 다들 시작하는 단계인데. 아직 자리잡지 못했는데.
장례비용은 어쩔거고 심리적 타격은 어떻게 할 건가.
스토커 건 때 나를 도와준 어머니 지인분이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 분 역시 나랑 통화하다가 몇 번이나 쓰러지셨다.
무슨 일이냐 하면... 이 분 또한... 데이트폭력을 당해서 몸이 많이 상했다.
나는 스토커랑 사귄 적조차 없기 때문에 기껏 해야 사칭당하기, 욕설당하기, 이상한 우편받기 정도로만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그 분은 상대방과 동거까지 했었기 때문에(중반부터는 협박으로 이어진 동거) 더 후유증이 크다. 다행히 죽기 전에 탈출할 수 있었고, 또한 당연하게도 탈출 후에 욕설 메세지를 계속 받았고, 협박도 당했다.
뭐 그랬던 것도 이제 1년이 지났다. 그런데 여전히 후유증에 갇혀 살고 계시다.
1년 내내 밥도 제대로 못드시고, 가끔은 환각을 보고, 픽픽 쓰러지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우리끼리 곧 돌아가실 거 같다는 걱정을 나누어야 하고.
하... 그 분 손목에 있던 그 끔찍한 흉터를 기억한다.
한심한 어른들. 알아서들 멀쩡히 살아주면 안될까.
우리 발목 붙잡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빨리 자리잡아서 돈이 많았으면 좋겠지만, 그랬으면 두 분 다 내가 뭐라도 해드렸겠지만.
애초에 남들처럼 안정적으로 잘 살아왔으면 우리 형편도 일찍이 폈을텐데.
그러지 못한 한심하고 무능하고 질 떨어지는 내가 역시 죄인인가?
아니다. 나는 이제 어른들을 탓하기로 했다.
내가 그동안 기를 못 편 건 사주팔자의 영향이다.
어느 사주 집을 가든, 어떤 인터넷 사주든 늘 똑같은 말을 했다. 지금까지의 대운은 겨울이라고. 뭘 하려고 해도 잘 안되었던 거라고. 이제부터 열심히 하면 되는 대기만성형 사주라고.
이걸 믿으면 더이상 죄인이 아니게 된다. 그러니 믿고 싶었고, 믿었고, 이제는 안다. 내가 중죄범이 아닐 수 있다는 걸.
그렇다.
느리게 피는 꽃을 기다려주지 않은 어른들의 탓이다.
알아서 살아주지 못한 그들의 죄!
나에게 부담을 준 죄!
나를 초조하게 만든 죄!
아픈 주제에, 정말 기가 차게도, 가당치 않게도, 밥조차 잘 먹지 않고 있는 무지막지한 중죄!
뭐 말은 이렇게 해도 나는 또 약속을 해버린다.
내년에 돈 많이 벌어서 제주도 보내드릴게요.
그러니까 밥 좀 잘 드시라고요.
슬슬 인정해야 할 수도 있다.
내가 기질적으로 섬세한 사람이란 걸.
물론 나는 우울증이 없다.
그렇긴 한데 생각을 줄이는 약을 처방받은지 몇 달이 되었다.
가족관계도 좋고, 가족들이 다 살아있다.
그렇긴 한데 아버지가 아프시다. 이빨이 안좋아서 제대로 밥도 못 드신다고 한다. 아파서 은퇴했으므로 일도 못하신다. 다행히 치료는 잘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골골대신다. 그러면... 몇백만원 안남은 내 헐겁고 가볍고 초라한 통장 잔고를 탈탈 털어서 이빨 해드리지 않은 나는 불효자인가? 그 꼴랑 몇백만원이라도 지키자고 아버지 이빨 방치하는 게 맞느냐고. 나는 뭣하러 돈을 모았는가, 나는 돈을 지키고 싶은 것인가? 그런데 나는 속물이라서 내 통장 잔고가 줄어들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왜 내 통장 잔고는 늘지 않는가. 뭔가 한계에 막힌 거 같아서 괴롭다. 언제 나는 가난을 탈출할 수 있는가?
성폭행을 당한 적도 없다.
그런데 뭐, 나도 평범하게 이런저런 일은 있었다.
어릴 적에 가출했다가 어떤 아저씨한테 닭볶음탕 얻어먹고 모텔 방 앞까지 끌려간 일.
브라끈 만져진 일 등.
이 정돈 너무 흔해... 흔한 일이다.
전쟁 피해를 입지도 않았고, 홍수로 집이 떠내려가지도 않았으며, 화상 피해를 겪지도 않았다.
다만 두번이나 스토킹 당하고, 가난한 집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음에도 과한 책임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고, 뭔가 자꾸 일이 안풀리고, 나는 내가 게으른 멍청이인줄 알았고(adhd였을 뿐), 스토커 건으로 나를 도와주신 지인 분께서 나랑 비슷한 사건으로 비슷하게 스토커한테 괴롭힘 당해서 목숨의 위협을 겪고(그 분이 돌아가실까봐 불안했고), 아버지가 내내 아프신 바람에 우리끼리 아빠 돌아가실까봐 걱정하고, 지난 회사에서 임금체불과 가스라이팅을 겪고(물론 나도 잘못했다), 그 외 지난한 억까와 소소한 갈등, 돈도 없는데 모니터 얻어왔더니 실수로 고장내버리고, 노트북도, ....
그냥 나는 이 모든 소소한 비운들이 버겁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자기연민 기제는 즐겁게 지내는 시기에도
때때로 얼굴을 들이밀고 유세를 했다.
'봐봐, 사실 이게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이라니까? 우린 과거에 불행했던 거라고!'
자기연민은 개최악 행동!
내 정신머리는 자기연민을 탄압하는 정책을 한평생 내내 펴왔기 때문에
이제와서 징징이를 인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한평생 '나는 살만 하고, 감사해야 하며, 더 가엾 사람을 위해 사는 게 옳지,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이제 와서 징징이의 말에도 일리가 있음을 인정해주려니 쉽지가 않다.
그래서 징징이가 반항하는 건가?
탄압하면 더 저항하는 원리인가?
급기야 그 단어를 끄집어냈다.
"생존자"라고.
하하, 나 따위가 생존자?
내가 생각해도 기가 찬다.
해도 될 말이 있고 안될 말이 있는 거다.
나보단 어머니가, 어머니 지인분이, 그리고 어쩌면 아버지가 더 불쌍하다.
나는 그래도 어른들의 비호 아래 안전하게 자랐지 않은가.
스스로도 알잖은가!
책에서, 신문에서, 세상에서 읽은 온갖 추연한 신세를!
어떤 여인은 원치 않게 시집을 가서 달동네에서 온 가정을 책임지느라 매일 고생한다고 했고,
어떤 여인은 젊은 나이에 납치당해 강제로 성매매 일을 하고,
어떤 아저씨는 공장에서 손가락 잘리는 사고를 당하고 쪽방에서 외롭게 살고,
어떤 노인은, 어떤 아이는, 어떤 외국인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이상 징징거리는 건 옳지 못하다.
청승 좀 그만 떨어!!
그러면 이런 질문이 생긴다.
나는, 나만큼 처절한 사람은 동정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다.... 나는 그를 동정한다.
그는 불쌍하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잘 알겠다.
그러면 왜 나 자신은 동정하지 않는 것인가?
적당선의 자기연민은 정신건강에 필요하다.
자기비판과 자기연민은 적당한 균형이 중요한 법이다.
게다가 비극을 비교하는 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내가 하는 건,
비극에 경중을 두고
나의 기준에서
얄팍한 비극 주제에 약한 소리 하는 사람들을
혐오하며
용서하지 못하며
사지로 내모는
추악한 짓일 수도 있다.
그 '약한 소리 하는 사람'에 나를 넣은 거고.
남들한테 하는 것보다 더 매서운 기준을 넣어서.
뭐 그정도까진 아니겠지만, 잘못하면 그런 모순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맞아.
안다... 안다만..
자기연민 괴물은... 역시 되고 싶지 않다.
나를 괴롭힌 두 스토커는 자기연민 괴물이었다..
그런 괴물이 될 바엔 죽는 게 나아...
아니 사실, 고민이 많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런 고민을 할 바에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해주는 게
정신건강으로나 시간활용 차원에서나 뭐로든간에 효율적이고 이득인 걸 알고 있다.
아 그런데 내 안의 비판자가 괜한 소리를 하는 건지
남의 반응을 똑똑하게 잘 예상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계속 뭔가 누군가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누굴지는 모른다.
나는 이런 반응을 상상하곤 한다:
"생각이 과하네"
'징징거리더니 겪은 일 보면 별 거 아니네'
'그냥 예민한 사람인가봐'
그게 미미한 반응일지라도 두려워서...
그래서 빌어보건데...
감히 나 따위가
불행 생존자라고 자칭하는 불순함을
용서해주세요
제가 역겨운 자기연민을 하더라도 이해해주었으면 합니다.
슬퍼하는 제게, 그따위가 뭐가 슬프냐고, 그런 말은 하지 말아주었음 합니다.
잠시만 이러고 있겠습니다.
2025.12.20 새벽